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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골프계를 뒤흔든 ‘빌런’들 ① 존 댈리

무언가에 집착하거나 평범한 사람과 다른 행동을 하는 괴짜들을 우리는 빌런이라 부른다. 히어로 만화나 영화에서 각종 과한 집착이나 기괴한 계기로 빌런이 되는 것을 패러디한 것이다.

 

원래대로 ‘악당’을 뜻하기도 하지만 인터넷 은어로 사용될 때는 의미가 좀 더 넓다. 때로는 악(惡) 과는 무관하되 그저 기괴스러울 뿐인 행동을 일컬을 때도 쓰이기도 한다. 

즉 이들의 실상을 요약하자면 진짜 현실적인 위법행위, 범죄를 저지르는 빌런이라기보다는 괴인(怪人)이나, 기인(奇人)에 가까운 존재들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세상에는 수많은 ‘빌런’들이 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우리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수많은 빌런들과 조우하며 살아간다.


수많은 선수들이 역사를 써내려간 PGA 투어에도 많은 빌런들이 있었다. 신사의 스포츠인 골프는

 

매너를 정말 중시하는 스포츠지만, 역설적으로 그만큼 비매너 플레이로 득을 볼 수 있는 방법도 많기 때문이다. 여기 지금부터 우리가 만나볼 선수들은 PGA 투어에서 빌런으로 불리거나 불렸던 선수들이다. 사실, 이 기사에 만나볼 이들은  빌런이라기보단 ‘빌런’에 가까운 선수들이다. 

 

PGA 투어를 풍미한 대표 빌런을 만나보자.

 

EDITOR 방제일

 

'그린 위의 풍운아' 존댈리

 

존 댈리는 분명 엄청난 재능을 가진 골퍼다. 그의 커리어가 그것을 증명한다. 1966년생인 그는 대학을 마치고 스물한 살에 프로로 전향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은 1991년에 메이저 대회인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했다. 이 우승 과정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다. 그는 ‘PGA 챔피언십’ 출전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8시간이나 운전을 해 대회장 근처에서 기다린다.

그러다 그에게 출전 기회가 주어진다. 그  기회를  존 댈리는 낚아챘다. 당연히 그 날 ‘라베’를 기록했다던가 억수로 운이 좋았다 이런 것이 아니었다. 실력이었던 것이다. 4년 뒤인 1995년에는 ‘디 오픈 챔피언십’도 우승한다. 이는 결코 우연만으로는 할 수 없다. 오직 선택받은 이들만이 달성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 뿐 아니다.

 

존댈리의 재능이 빛난 순간은 또 있다. 댈리는1997년PGA투어최초로시즌평균드라이버거리300 야드를 넘겼다. 이어 1999년부터 2008년까지 다시 10년 연속 시즌 평균 드라이버 거리 300야드 이상을 기록했다. 2003년까지 시즌 평균 드라이버 거리 300야드를 넘긴 선 수는 존 댈리가 유일했다.

 

작은 키 탓에 ‘땅콩’이라고 불렸던 LPGA 선수 김미현은 거리를 늘리기 위해 존 댈의  스윙을 참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대단한 재능과 실력을 가진 존. 댈리는 생각보다 많은 우승을 하지 못했다. 그가 PGA 투어에서 거둔 승수는 고작 5승이다.

 

5승이라는 숫자를 평가절하하는 것이 아니다. 존 댈리가 투어 데뷔 후 보여줬던 강력한 모습에 비해 아쉽다는 뜻이다. 특히 우승보다 그의 행보가 더 아쉽다. 존 댈리는 그 어떤 선수보다 많은 부침을겪은 선수다.

 

그는 골프를 사랑했지만 골프 자체에 집중하지 못했다. 댈리는 젊은 시절부터 알코올에 심각하게 의존했다. 알코올 중독자란 뜻이다.

 

대회 때도 종이 봉지에 술을 담아가지고 다니며 몰래 홀짝거리거나 혹은 대놓고 마시며 경기를 치른 경우가 많았다. 그를 무명에서 영웅으로 만들어 준 1991년 PGA 챔피언십때도 나흘내내 술을 마시며 경 했다.

 

여기에 도박 중독까지 심각했다. 대회장 근처에 카지노가 있으면 밤새 도박을 한 후 대회를 치르기도 했다.

 

술과 도박에 빠져 있었으니 성적이 들쑥날쑥한 건 당연했다. 성격까지 괴팍했다. ‘풍운아’라는 별명처럼 사건, 그린 안팎으로 사고를 몰고 다녔다. 경기 중. 갤러리와 말다툼을 하기도했고, 경기가 뜻대로 안 풀리면 라운드 중에 클럽을내던지는 일도 잦았다.

 

갑자기 기권하고 대회장을 떠나기도 했다. 오늘날 소위 말하는 ‘분노조절장애’가 존 댈리에게는 있었다.  그린 밖에서도 그의 사생활은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네 번 결혼했고 네번 다 이혼했다.

 

결국 존 댈리는 자기 관리에 실패했다.

 

'악마의 재능' 말은 그래서 역설적이다. 주어진 재능을 갈고 닦아 ‘신의 축복’으로 만들지 일종의 조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안타까움이 더 많이 묻어 있는 말이다. 존 댈리는 2004년 뷰익 인비테이셔널에서 마지막으로 우승한 뒤 투어에 이렇다할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2007년부터 PGA 시드권조차 얻지 못하고있다. 그럼에도 존 댈리의 기행을 여전히 우리는그린 위에서 만날 수 있다. 이슈몰이가 되기 때문에 초청선수로 투어에서 그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