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룰(규칙)은 모든 스포츠의 기본이다. 룰이 없는 스포츠는 스포츠라고 할 수 없다. 특히 골프는 어떤 스포츠보다 룰이 많고 복잡하다. 흔히 골프를 ‘심판이 없는 운동’이라고 하는 데 그런 면에서 보면 골프는 룰을 더 잘 알고 또 잘 지켜야 한다. 그래야 의미가 있다. 룰도 모르고 제 맘대로 치고 싶은 대로 치면 그건 골프가 아니다.
물론 프로 골프대회에는 엄연히 심판이 있다. 경기위원장이 있고, 경기위원도 있다. 프로 선수들은 대부분 골프 룰을 잘 알고 있는 편이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경기위원의 결정(판정)을 받아야 할 때도 있다. 그래야 혹시 모를 시비(是非)를 미연에 방지할 수가 있다.
그런데 그 경기위원의 판정이 문제가 된다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판정으로 해당 선수가 피해를 입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판의 신뢰 추락에 대회 자체에도 먹칠을 하게 된다. 더구나 잘못된 판정이 우승자를 가리는 연장전 승부 참가 자격 여부와 직접 관련된다면 그건 정말 치명적이다. 그래서 경기위원의 판정은 룰에 입각해 늘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한 치의 시비거리도 있어선 안된다.
그런데 실제 그런 어이 없는 일이 일어났다. 지난 5월 3일 끝난 ‘제45회 GS 칼텍스 매경오픈 골프선수권대회’에서다.
결과적으로 이 대회를 주관한 대한골프협회(KGA)의 신뢰는 실추되고, 대회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으며 국내 골프대회 역사에도 오점을 남기게 됐다.
아마추어 골퍼는 룰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다. 특별히 룰을 배울 기회도 거의 없을 뿐더러 또 배우고자 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골프를 오래 치고, 잘 치는 아마추어 골퍼라고 해도 기본적인 룰은 대강 알지만 세세한 것까지는 알기 어렵다.
초보자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스윙 자세를 배우고, 볼을 제대로 맞추기에도 바쁘다 보니 룰을 알고자 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초보자든 또 웬만큼 골프를 치는 골퍼든 룰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골프에선 룰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 4명이 한 조가 되어 5시간 안팎 경기를 하는 동안 어느 누구든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그날 골프는 그야말로 고역이다.
필자가 최근 겪은 경험을 소개한다. 이른 아침 4명이 라운드를 시작했다. 첫 홀(파4)은 ‘일파만파’라고 캐디가 모두 파(Par)로 기록했다. 두 번째 홀은 파3였다. 결과는 들쭉날쭉이었다. 세 번째 홀(파5)로 이동하면서 캐디가 카트에 달린 스마트 스코어 모니터에 스코어를 기록하는 걸 보니 아주 정확했다. 필자는 ‘이 캐디가 보통이 아니구나’란 것을 직감했다. 스코어 기록에 관한 한 캐디가 하는 걸 100% 믿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달은 일곱 번째 홀(파5. 527m)이 끝나고 터졌다. 동반자인 친구가 스코어 문제로 캐디에게 큰 소리를 치며 버럭 화를 냈다. “보기(Bogey)를 했는데 왜 트리플 보기(Triple Bogey)로 적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캐디가 “보기 아니예요. 트리플 맞아요”라고 했다. 이에 그 친구는 “왜 보기가 아니냐, 내가 보기를 했잖아...”라면서 더 큰소리를 냈다. 이에 필자와 다른 친구도 “보기 아니야”라고 하자 그 친구는 득달같이 “왜 보기가 아니냐”고 씩씩거리며 언성을 더 높였다.
팩트는 이랬다. 이의를 제기한 그 친구가 두 번째 샷한 공은 홀 중간 왼편에 자리잡은 큰 워터 해저드 중앙에 빠졌다. 캐디는 빠른 경기 진행을 위해 워터 해저드 건너편에 공을 놓고 치라고 했다.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해저드 바로 건너편에 공을 놓고 쳐야 하는데도 공을 들고 그린 쪽으로 20m 이상 나가서 공을 놓고 다음 샷을 했다. 그렇게 샷한 공은 그린 주위에 떨어졌고 홀아웃 할 때까지 정확하게 트리플 보기였다.
그러는 사이 모두가 카트를 타고 계곡 다리를 건너 100m 안팎 떨어진 다음 홀로 왔다. 필자가 티잉구역에 티를 꽂고 티샷을 하려는데 그 친구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또 큰소리로 화를 냈다. 그러다 다른 친구와 시비가 붙어 고성을 지르며 막말이 오갔다. 티잉구역 바로 옆이라 옆 홀의 그린과 아주 가까웠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들을까 봐 필자는 그 친구에게 “이제 그만해라”라고 했지만 그 친구는 막무가내였다. 겨우 티샷을 마치고 플레이를 하는 둥 마는 둥 전반을 마쳤다.
캐디가 후반 플레이를 하기까지 10분 정도 여유가 있다고 해 화장실만 들렀다가 스타트 하우스에서 음료수 하나씩 골라 들고 카트로 다시 돌아오기로 했다. 잠시 후 카트로 돌아오니 화를 냈던 그 친구가 캐디에게 다시 시비를 걸고 있었다. “캐디가 왜 스코어도 제대로 계산할 줄 모르느냐...내가 위에 얘기해서 일을 못하도록 하겠다...또라이 아니냐...”는 등 수위를 넘은 막말을 마구잡이로 퍼붓고 있었다.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정말 당황스럽고 민망했다. 한편으론 캐디가 측은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절친이 그런 매너 없는 진상고객일 줄이야.
말할 것도 없이 후반 9홀은 정말 고역이었다.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동반자 한 사람 때문에 라운드를 망치다니 참 억울하고도 한심한 일이었다.
대회를 하는 것도 아니고, 돈내기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설사 스코어 계산이 잘못됐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화를 낼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왠지 모르게 그 일로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쳤다. 20년 넘게 골프를 해온 필자로서도 처음 겪은 일이었다.
김대진 편집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