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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정의 지식의 맛] 노년의 알뜰신잡, 사람은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는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강의 자료를 만들고, 원고를 정리하고, 학생들의 과제를 채점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몸도 마음도 무거웠다. 이대로 하루를 마무리하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어 집 옆 작은 산으로 향했다.

 

그 산은 동네 주민들이 맨발 걷기를 즐겨 하는 곳이다. 높지 않은 산이라 입구에서 조금만 걸어도 숲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이미 해가 기울어 산길은 어둑어둑했다. 정상까지 오르지는 않고 입구 근처를 몇 번 오르내리며 걷고 있었다.

그때였다. 무언가 하얀 물체가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뭐지?

 

순간 머리가 삐쭉 서는 듯하고 발걸음이 멈추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좀 크고 비쩍 마른 백구 한 마리가 나무 옆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평소에도 좀 큰 개는 무서워하는데 산속에서 갑자기 마주친 개는 나를 당황하게 하였다. 목줄도 없고 주인도 보이지 않았다.

 

달려들면 어떡하지?

 

순간 주위를 둘러보았다. 손에 들 만한 것은 낙엽과 나뭇가지뿐이었다. 급한 대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썩은 나뭇가지를 하나 집어 들었다. 조금만 힘을 줘도 부러질 것 같은 나뭇가지, 누가 봐도 무기로는 전혀 쓸모없는 물건이었다.

 

나는 그 썩은 나뭇가지를 들고 백구를 바라보았다. 백구는 움직이지 않았고, 나는 계속 백구 쪽을 보며 태연한 척 산길을 내려왔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문득 웃음이 났다. 백구 한 마리를 상대로 썩은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내려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웃음이 잦아들자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저 썩은 나뭇가지가 나에게 이렇게 힘이 되어주다니.

 

실제로는 아무 쓸모도 없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나를 지켜 줄 것 같은 마음을 주었다. 불안을 덜어 주었고 용기를 주었다.

 

어쩌면 그것들은 모두 인생이라는 산길에서 만난 썩은 나뭇가지 같은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산 아래에 도착한 나는 더 이상 필요 없어진 나뭇가지를 보고 고맙다는 말을 남기며 슬그머니 버리는 나의 몰골이 우습기도 하며 언뜻 떠오르는 고사성어가 있었다.

 

狡兔死 良狗烹(교토사 양구팽)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뜻이다. 필요할 때는 소중히 여기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버리는 인간의 모습을 비유한 말이다.

 

문득 마음 한편이 찔렸다. 나는 누군가에게 토사구팽을 당한 기억만 떠올리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살아오며 수많은 사람이 스쳐 갔는데 누군가의 인생에서 썩은 나뭇가지 같은 존재가 되어 본 적이 있었을까.

 

누군가가 두렵고 힘든 순간, 썩은 나뭇가지처럼 잠시라도 힘이 되는 사람이었을까.

 

산길에서 우연히 주워 든 썩은 나뭇가지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붙들어 줄 수도 있다. 그리고 인생은 그런 작은 것들 덕분에 생각보다 오래 버텨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는가.

 

그 질문에 대한 완전한 답은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은 늘 거창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강윤정

마중물교육파트너스 대표

힐링 인문학 강의

대인갈등 소통강의

농협주부대학‧공무원연금공단 외래강사

한국은행 사회공헌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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