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새벽, 마음은 이미 골프장에 가 있었다.
경제신문 대표로 있는 후배가 마련한 자리였다. 동반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캐피탈 회사 회장과 중소기업 대표. 후배와 나까지 네 사람이 함께하는 주말 라운딩이었다. 골프는 이상한 운동이다. 공 한 번 치기 전부터 사람을 설레게 한다. 옷을 챙기고 장비를 확인해 골프백을 차에 싣는 순간, 마음은 벌써 첫 홀 티잉 구역에 서 있다.
전날 강남 개포동에서 중요한 미팅이 있었다. 일을 마친 뒤 선배와 저녁을 먹고 당구 한 게임을 쳤다. 밖으로 나오니 퇴근 차량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막히는 시간을 피하려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들어선 곳이 묘한 호프집이었다. 호프집이라기에는 무대와 드럼이 있었고, 라이브 카페라기에는 손님이 없었다. 벽면에는 대형 화면이 걸려 있었고, 한쪽에는 ‘노래 가능’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에 등장할 법한 집이었다. 오래된 골목에 숨어 있다가 마음이 조금 헐거워진 사람만 우연히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곳. 술을 마시러 들어갔다가 지난 시절 하나쯤 꺼내 놓고 나오는 그런 집이었다.
프로 가수 못지않게 노래하는 선배가 그 문구를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우리는 하이볼을 주문하고 마이크를 잡았다. 손님은 우리 둘뿐이었다. 한 곡이 두 곡이 되고, 두 곡이 서너 곡이 됐다. 여느 때 같았으면 밤이 새도록 노래하고 웃었을 장소였다. 하지만 다음 날은 라운딩이었다. 우리는 밤 10시쯤 아쉬움을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는 꼭 다시 오자.” 약속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예전의 나는 내일을 믿고 오늘을 끝까지 소진했다. 이제는 내일을 지키기 위해 오늘을 조금 남겨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즐거움을 잃는 일이 아니라, 즐거움의 끝을 스스로 정할 줄 아는 일이기도 하다.
새벽 3시 30분쯤 눈을 떴다. 출발을 준비하던 중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차량 앞유리의 성애가 제거되지 않아 조치 중이라고 했다. 해결되지 않으면 내 차로 함께 가기로 했지만, 잠시 뒤 비상조치가 됐다며 각자 출발하자는 연락이 왔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어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강원도 원주의 한 골프장. 약 90킬로미터, 평소라면 1시간 20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도로는 비어 있었고, 어둠은 아직 세상 대부분을 덮고 있었다.
출발하자마자 차의 느낌이 이상했다. 승차감이 평소보다 거칠었다. 노면의 작은 굴곡까지 차체가 과장되게 받아내는 듯했다. 예전에 주행 모드가 ‘다이내믹’으로 설정돼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 시스템을 몇 차례 바꿔봤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한동안은 차가 아니라 내 감각을 의심했다. 새벽이라 예민한가. 잠을 덜 자서 그런가. 도로 상태가 좋지 않은가. 사람은 불편한 신호를 만나면 먼저 이유를 찾는다. 그러나 대개 그 이유는 신호를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시하기 위한 쪽에 가깝다.
운전 중 업무 때문에 지인과 통화했다. 그가 갑자기 물었다. “지금 창문 열고 달리는 거야?” 그제야 알았다. 평소와 다른 소음이 전화기 너머까지 들릴 정도로 커져 있었다.
며칠 전부터 타이어 경고등이 자주 들어왔다. 그때마다 차에서 내려 살펴봤지만 네 바퀴 모두 멀쩡해 보였다. 공기가 빠진 흔적도 없었다. 나는 경고등을 경고가 아니라 오류로 판단했다. 눈으로 봐서 괜찮으니 문제가 없을 것이라 믿었다.
중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 차를 세우고 다시 타이어를 확인했다. 외관상 이상은 없었다. 나는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그래도 돌아봤어야 했다. 보험사를 부르거나 가까운 정비소를 찾았어야 했다. 그러나 사람은 이미 가고 있는 길을 멈추는 데 인색하다. 약속이 있었고 동반자가 있었으며 티오프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이 정도는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었다.
호법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 무렵 소음이 더 커졌다. 핸들로 전해지는 진동도 분명해졌다. 강릉 방향으로 들어서는 순간 몸이 먼저 알아챘다.
타이어였다. 차가 노면을 제대로 붙잡지 못했고 뒤쪽에서 무너지는 듯한 움직임이 전해졌다. 비상등을 켜고 속도를 줄여 갓길로 이동했다. 차를 세우고 내려보니 운전석 뒤쪽 타이어가 완전히 주저앉아 있었다. 타이어 옆면은 찢어져 더 이상 바퀴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 직원이 위치를 물었지만 도로 이름과 방향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평소라면 어렵지 않게 설명했을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놀란 사람은 가장 쉬운 말부터 잃어버린다.
보험사와 견인차 기사에게 연락을 마친 시간이 새벽 4시 45분쯤이었다. 곧바로 후배에게 전화했다. 다행히 그는 사고 지점에서 7.6킬로미터 떨어진 여주휴게소에 있었다. 차량을 견인한 뒤 그곳에서 만나 함께 골프장으로 가기로 했다.
잠시 뒤 도로공사 순찰차가 도착해 내 차 뒤에서 경광등을 켰다.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됐다. 바로 옆으로 대형 화물차와 승용차들이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차 한 대 한 대가 거대한 파도처럼 느껴졌다.
그날 처음 알았다. 갓길은 길의 바깥이 아니라, 위험의 한가운데였다. 견인차는 40분쯤 지나 도착했다. 차량을 여주휴게소로 옮기고 후배의 차에 골프백을 실었다. 출발한 시간은 새벽 5시 45분. 티오프는 6시 28분이었다. 내비게이션에는 도착 예정 시간이 6시 17분으로 떴다.
빠듯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차분해졌다. 라운딩을 못 할 수도 있었다. 타이어가 차체를 돌려세웠다면 뒤따르던 차량과 충돌했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가능성 대신 나는 후배의 차에 앉아 골프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약간의 지각은 대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예상보다 이른 6시 10분쯤 골프장에 도착했다. 준비를 마치고 무사히 첫 홀에 섰다. 그날 공이 평소보다 잘 맞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티잉 구역에서 페어웨이를 바라보던 순간, 서늘한 새벽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오며 살아 있다는 감각을 유난히 선명하게 일깨웠던 것은 기억한다.
골프를 잘 치러 온 사람이 아니라, 무사히 도착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라운딩을 마친 뒤 이른바 ‘19홀’이라 부르는 막국수집에 앉았다. 아침 일을 여담처럼 꺼내자 동반했던 캐피탈 회사 회장이 말했다.
“모든 일에는 징조가 있습니다.” 경고등이 여러 차례 켜졌다면 눈으로 타이어만 확인할 일이 아니라 정비소에서 원인을 찾았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번에는 무사했지만 자칫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건강 이야기를 꺼냈다.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고장 난 것 같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신호를 보냅니다. 숨이 차고, 이유 없이 피곤하고, 같은 곳이 반복해서 아픈데도 사람들은 나이 탓, 피곤 탓으로 넘기지요. 그러다 어느 날 차가 멈추듯 몸이 멈추는 겁니다.”
그 말을 듣자 지난해 심장 수술 전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계단을 오를 때 유난히 숨이 찼던 날, 평소와 다른 피로가 오래가던 날, 가슴 한쪽이 묘하게 답답했던 순간. 몸은 분명 여러 번 말을 걸었을 것이다.
나는 일이 많아서 그렇다고 했다. 잠을 못 자서 그렇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 원래 그런 것이라고 넘겼다. 몸은 경고등을 켰지만, 나는 보면서도 믿지 않았다. 인간은 큰 사고보다 작은 경고를 더 쉽게 무시한다. 사고는 두렵지만 경고는 귀찮기 때문이다.
타이어도 그랬다. 경고등이 여러 차례 들어왔지만 차는 계속 굴러갔다. 나는 굴러간다는 이유로 문제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고장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고장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관계도 그렇다. 사람이 갑자기 떠나는 것 같지만 떠남에도 징조가 있다. 대답이 짧아지고 만남이 미뤄지며, 웃어넘기던 말 앞에서 침묵이 길어진다.
일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는 것처럼 보여도 그전부터 숫자가 흔들리고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진다. 작은 균열을 보고 싶은 대로 해석하는 동안 경고등은 사고가 된다.
삶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먼저 소리를 낸다. 평소보다 거칠게 흔들리고, 어디선가 낯선 진동을 보내온다. 처음에는 아주 작아서 무시하기 쉽다. 그러나 작은 신호를 외면한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신호가 더 큰 소리로 바뀔 뿐이다.
새 타이어를 장착한 차는 출발하자마자 달라진 느낌을 전해왔다. 승차감이 부드러워졌고 불필요한 떨림도 사라졌다. 더 놀라운 것은 가속감이었다. 언제부턴가 차가 예전처럼 나가지 않는다고 느끼면서도 연식 탓으로 돌렸다. 그런데 새 타이어를 장착한 차는 제 컨디션을 되찾은 사람처럼 가볍게 앞으로 나갔다.
문제는 타이어가 터진 그날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이상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제야 알았다. 타이어는 그날 갑자기 망가진 것이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몸도, 관계도, 삶도 마찬가지다. 경고등은 먼저 켜지고, 사고는 그 신호를 오래 외면했을 때 찾아온다.
반드시.
문채형 뉴스룸 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