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이창호 기자 | '2026 KPPGA 삼척 오픈 with 하이원' 마지막 홀. 버디 퍼트가 홀컵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안정영은 자신이 우승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연습라운드에서 인연을 맺은 후배가 “누나! 우승했어요!”라고 외친 뒤에야 비로소 여자부 초대 챔피언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KLPGA에서 활동했던 안정영에게 이번 우승은 파크골프라는 또 다른 무대에서 거둔 첫 결실이었다.
KLPGA 선수 안정영에게 시련을 안긴 건 손목 부상이었다. 선수 생활을 중단해야 했던 그는 파크골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신인의 자세로 열정을 불사른 그는 첫 프로대회에서 마지막 홀 역전 우승으로 대한민국 프로파크골프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자신을 ‘챔피언’보다 ‘배우는 선수’라고 소개한다. 원년의 문을 연 초대 챔피언이라는 타이틀보다 성장하는 과정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골프를 떠난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뜨거운 무대를 만났다
안정영에게 파크골프는 은퇴 이후 선택한 취미가 아니었다. 골프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선수가 다시 경쟁할 수 있는 무대였다. 오랜 선수 생활 동안 기본기와 경기 운영, 멘털 관리의 중요성을 몸으로 익혔지만, 손목 통증은 늘 따라다니는 숙제였다. 새로운 운동이 오히려 부담되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지만, 파크골프채를 처음 잡은 순간 예상과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채가 정말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제 마음은 무척 진지했습니다. ‘제발 내 손목과 잘 맞아라.’ 그게 가장 큰 바람이었죠. 다행히 손목 부담이 훨씬 적었고, 다시 운동을 즐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파크골프는 골프를 대신하는 운동이 아니라 또 하나의 도전이었습니다.”
그는 파크골프를 경험하면서 생각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골프보다 쉬운 운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전략과 집중력, 거리 계산, 코스 공략이 모두 필요한 스포츠다. 잔디와 맨땅, 인조잔디 그린 등 다양한 환경에 맞춰 샷을 구사해야 하고, 18홀 내내 흐름을 유지하는 경기 운영도 중요하다. 체력 부담은 다소 적지만 그만큼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는 종목이다.
골프 선수로 살아온 경험은 지금도 큰 자산이다. 기본기와 리듬감, 한 샷에 집중하는 습관은 그대로 이어졌다. 물론 골프의 습관을 버리는 과정도 필요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첫 대회에서 자신의 공을 직접 마크했다가 2벌타를 받은 경험이다. 골프에서는 익숙한 행동이었지만 파크골프에서는 상대 선수에게 마크를 요청해야 한다는 규정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결과였다.
“정말 당황했어요. 규정은 알았지만, 몸에 배지 않은 거죠. 그 일을 겪으면서 파크골프는 골프와 닮았지만 분명 다른 스포츠라는 걸 제대로 배웠습니다. 골프의 장점은 가져오되 파크골프는 새로운 종목이라는 마음으로 배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게 됐고요.”

예선 통과가 목표였던 선수가
원년 무대 초대 챔피언에 오르다
첫 프로대회를 앞둔 안정영의 목표는 의외로 소박했다. 예선만 통과해도 만족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삼척 도계파크골프장에서 연습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코스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자신감이 커졌다. 나중에는 혼자 우승 소감까지 미리 연습할 정도였다. 막상 결승전에서는 우승이라는 단어를 의식하지 않으려 애썼다.
전반 한때 흐름이 끊기면서 흔들리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다잡으며 ‘내 경기만 하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후반은 자신 있는 코스였기에 조금 더 편안하게 플레이했고, 마지막 홀까지도 스코어 계산보다 자신의 리듬을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
“‘실수해도 괜찮다. 실망만 하지 말자.’ 그 말을 계속 제게 했던 것 같습니다. 우승은 생각하지 않았어요. 마지막 퍼트도 버디를 잘 마무리하자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우승보다 오직 한 타에 집중했습니다.”
공이 홀컵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아, 끝났다”였다. 우승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 채 홀아웃한 그는 연습라운드에서 알게 된 후배가 달려와 “누나! 우승했어요!”라고 외치며 생수를 뿌려준 뒤에야 역전 우승을 실감했다.
“그제야 ‘아싸, 대박!’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가 정말 좋아하시겠다 싶더라고요. 그 순간의 기쁨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우승의 기쁨 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어머니였다. 시상식에서는 긴장한 나머지 감사 인사의 순서가 뒤죽박죽이었고, 나중에 어머니에게 “엄마 얘기가 먼저 나왔어야지”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는 “그 말이 너무 귀엽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했다”며 웃었다.
대회장을 찾은 부모님은 우승 팻말과 부상을 함께 들고 기념사진을 남기며 누구보다 기뻐했다. KLPGA 선수 시절부터 묵묵히 응원해 온 부모님에게도 이번 우승은 딸의 새로운 출발을 확인한 특별한 순간이었다.
원년 챔피언보다 더 큰 꿈은
대한민국 프로파크골프의 성장
안정영은 이번 우승을 개인의 첫 프로 우승으로만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의 프로파크골프 투어가 대한민국에서 시작됐다는 사실 자체가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이번 출범을 계기로 우리나라가 세계 프로파크골프를 이끄는 중심 국가로 성장하기를 기대했다.
“프로투어가 계속 발전하면서 경기 운영과 규칙, 코스 규격 등에서도 세계의 표준을 우리나라가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멋진 프로파크골프대회가 열리고, 우리 선수들이 시상대 맨 꼭대기에 서고, 해외 선수들이 한국에서 배우고 싶어 하는 날이 온다면 정말 뜻깊을 것 같습니다.”
프로파크골프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기량만으로는 부족하다고도 했다. 안정적인 투어 운영과 기업 스폰서의 참여, 방송과 미디어의 관심, 팬들의 응원이 함께할 때 비로소 건강한 프로 스포츠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여자 선수층이 더욱 두꺼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좋은 선수만으로 프로 스포츠가 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스폰서와 미디어, 팬들의 관심이 함께해야 선수들도 더 좋은 환경에서 훈련하고 경쟁할 수 있습니다. 여자 선수들도 ‘내가 할 수 있을까’보다 ‘한번 해볼까’라는 마음으로 더 많이 도전했으면 좋겠습니다.”
골프와 파크골프를 모두 경험한 그는 지금도 자신을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선수라고 말한다. 화려한 기록보다 배우는 즐거움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잘하는 선수보다 계속 성장하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KLPGA에서 배운 기본과 스포츠 정신은 지금도 가장 큰 자산입니다. 앞으로도 긍정적인 에너지로 파크골프의 매력을 알리고, 선수와 협회, 동호인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문화가 만들어지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
원년의 문을 연 초대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은 역사에 남는다. 안정영은 그 이름에 머물기보다 더 큰 목표를 향해 클럽을 잡고 있다. 또 하나의 우승이 아니라 대한민국 프로파크골프가 세계의 표준으로 자리 잡는 순간을 함께 만드는 것. 그것이 프로파크골프 초대 챔피언 안정영이 꿈꾸는 미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