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강매화 기자 | 원·달러 환율이 불과 두 달여 만에 200원 가까이 떨어지며 1360원대까지 내려왔다. 정부의 각종 외환시장 안정 대책에도 좀처럼 꺾이지 않던 환율이 최근 급격하게 방향을 바꾸면서 시장의 관심은 ‘얼마나 더 떨어질 것인가’보다 ‘무엇이 환율을 움직이고 있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특히 사상 최대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에도 원화 약세가 지속되다가 최근 특정 자금 유입과 금리 변화에 환율이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점에서, 무역수지를 중심으로 환율을 설명하던 기존 공식만으로는 최근 움직임을 해석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1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8원 오른 1370.4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전날에는 1368.6원에 마감하며 지난해 7월 8일 1367.9원 이후 약 1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1561원까지 치솟았던 환율…두 달 만에 방향 급선회
올해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은 가팔랐다.
지난해 말 1430원대에서 움직이던 환율은 올해 3월 1500원 선을 넘어섰고 6월 5일에는 장중 1561.5원까지 치솟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보기 어려웠던 수준이다. 이후에도 7월 중순까지 1500원대의 고환율 흐름이 이어졌다.
문제는 당시 국내 대외거래 지표만 놓고 보면 원화가 이처럼 약세를 보일 이유를 설명하기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올해 상반기 경상수지 흑자는 1910억1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478억7000만 달러의 약 4배에 달했다. 반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통상 수출기업이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로 들어오면 외환시장의 달러 공급이 늘면서 원·달러 환율을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경상수지 흑자가 확대될수록 원화 가치가 강해지는 것이 전통적인 환율의 작동 방식이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역대 최대 경상흑자와 1500원대 환율이 동시에 나타났다. ‘경상흑자 확대→달러 공급 증가→원화 강세’라는 익숙한 공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셈이다.
◇정부 대책에도 버티던 환율, 7월 중순부터 급락
상반기 내내 고공행진하던 환율은 7월 중순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7월 말 장중 1410원대까지 내려온 데 이어 8월에도 하락 흐름이 이어지면서 최근에는 1360원대까지 떨어졌다. 6월 고점과 비교하면 불과 두 달여 만에 원·달러 환율이 200원 가까이 내려온 것이다.
달러화와 엔화 등 주요 통화의 움직임과 비교해도 최근 원화 강세 폭은 두드러진다.
특히 정부의 외환시장 안정 대책에도 쉽게 움직이지 않던 환율이 SK하이닉스의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에 따른 달러 유입과 기준금리 인상 등 외환 수급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는 빠르게 반응했다.
환율을 움직이는 무게중심이 상품 수출입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금융자금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해외투자 급증…환율 움직이는 ‘새 변수’ 됐다
시장에서는 최근 원·달러 환율을 설명하는 주요 지표로 순대외금융자산(NFA)에 주목하고 있다.
순대외금융자산은 국내 경제주체가 해외에 보유한 금융자산에서 외국인이 국내에 보유한 금융자산을 뺀 금액이다.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채권 투자가 급격히 늘면서 상품 수출입 못지않게 금융자산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달러 수요와 공급이 환율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다올투자증권에 따르면 순대외금융자산과 환율의 상관계수는 2014년 하반기부터 2019년까지 0.39 수준이었지만 2020년 이후에는 0.83으로 크게 높아졌다.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투자와 연기금·기관의 해외자산 운용이 확대되면서 수출기업이 벌어들이는 달러뿐 아니라 투자자금의 이동 방향이 원화 가치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한 셈이다.
이는 경상수지가 큰 폭의 흑자를 기록하더라도 국내 투자자들이 더 많은 자금을 해외로 내보내면 원화 강세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대로 대규모 달러 자금이 국내로 들어오는 계기가 발생하면 환율이 짧은 기간에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1360원대 안착할까…“단기 수급 변수 살펴야”
관건은 최근 원화 강세가 추세적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원화와 관련해 “어느 정도 면역력이 생겼다고 본다”고 평가하며 원화 가치의 안정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다만 시장에서는 최근 환율 하락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다는 점을 경계하는 시각도 나온다. SK하이닉스 ADR 등 특정 자금 유입과 금리 변화가 단기간 환율 하락을 증폭시켰다면 해당 효과가 약해진 이후 환율이 다시 반등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최근 원·달러 환율의 급등락은 환율을 결정하는 공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출과 경상수지만 들여다봐서는 원화의 방향을 설명하기 어려워졌고, 해외 주식·채권 투자와 외국인 자금 이동, 기업의 달러 조달·환전 등 금융계정의 움직임이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두 달 전 1560원을 넘어섰던 환율이 1360원대로 내려온 것은 단순한 ‘원화 강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제 원·달러 환율을 읽으려면 무역수지뿐 아니라 국경을 넘나드는 돈의 흐름을 함께 봐야 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