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이 글은 1957년 생 원순옥 씨가 쓴 글입니다. 원순옥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근로복지공단에 30여 년 근무한 후 정년 퇴직한 은퇴자입니다. 지금은 젊은 시절 배웠던 골프를 다시 시작해 골프를 즐기고 있습니다. |
30여 년 전 직장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공기업에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동료들의 권유로 골프채를 처음 잡아봤다.
골프채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처음엔 골프공을 제대로 맞히기도 쉽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가끔 제대로 맞은 골프공이 허공을 힘차게 날아갈 때는 짜릿한 쾌감이 느껴졌다. 필드에 나갔을 땐 푸른 잔디 위를 걷는 게 마냥 좋았다.
그렇게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업무에 바쁘다보니 어느 순간 골프채를 놓고 말았다. 세월이 가고 내 골프채는 우리집 베란다에 우두커니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한때 골프를 배웠던 기억도 가물가물할 때쯤 나는 정년 퇴직을 했다. 돌이켜보니 벌써 30여 년 전이다. 그땐 그래도 젊었었다. 어떤 운동이든 배우고 싶었고, 또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시절이었다. 그만큼 체력도 있었고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30여 년의 세월은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았다. 그 푸르던 청춘은 온데간데 없고 어느새 60대 후반이 됐다. 곧 70을 바라본다.
이 나이에 무엇을 새로 배운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두려움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때문에 배움을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히 나이 때문에 배움을 포기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그렇게 나는 골프채를 다시 잡게 되었다.
막상 다시 시작한 골프는 만만치 않았다. 스윙도 낯설고 어색했다. 초보자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골프공도 제대로 맞힐 수 없었다.
마음이 조급할수록 스윙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골프공이 날아가는 방향이나 거리도 성미에 차지 않았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수도 없었다. 다시 해보기로 한 이상 제대로 해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아니 예전에 배운 게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끔은 "내가 예전에 골프를 쳤던 사람이 맞는가?"란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골프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꾸준하게 해야만 했다. 그래야 될 것만 같았다. "한 달에 네 번 정도는 9홀 퍼블릭 코스라도 돌아야 하지 않을까?"란 막연한 기대도 해보면서 연습에 매달렸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공이 잘 맞을 때는 어린애처럼 기쁘다가도 잘 맞지 않으면 금방 섭섭하고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래도 연습은 하고 있다. 가끔 마음이 내기키 않을 때는 쉬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제보다 오늘은 조금 더 나아지겠지"
골프연습장에 갈 때는 늘 이렇게 희망과 기대에 차 있다. 한번 두번 스윙을 해보지만 눈에 띄게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세월 탓도 있겠지만 너무 오랫동안 골프를 손에서 놓은 때문일 것이다.
이젠 스윙 폼을 바꾸는 게 쉽지 않다. 젊을 때처럼 몸이 부드럽지도 않고 뜻대로 움직여주지도 않는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늙으면 서럽다'는 말이 이제야 알 것 같기도 하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이상, 생각을 바꿔야 한다"
나도 모르게 불현듯 든 생각이다. 이젠 예전과 다르게 골프를 대하는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골프에 매달리지 말고 즐겨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나니 한결 편해졌다. 여유가 생겼다. 내 골프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윙도 부드러워졌다.
"그래, 바로 이거야"
젊을 땐 골프가 기록과 경쟁을 추구하는 운동이라면 60대 후반에 하는 골프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편하게 즐겨야 한다. 때로 자신을 돌아보고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운동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럴 때 골프는 비로소 삶의 활력이 된다.
나는 오늘도 필드에 나가 티샷을 한 후 잔디를 밟으며 걷는다. 먼산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들어마신다. 푸른 잔디와 맑고 청명한 가을 하늘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좋은 동반자들과 얘기도 나눈다. 이제 골프가 더 없이 좋다. "행복이란 먼 곳에 있지 않다"란 말을 새삼 실감한다.
나에게 골프는 이제 단순한 운동 이상이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남은 세월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단이자 나침반이기도 하다.
30여 년 전 멋모르고 골프채를 잡았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 골프를 대하는 마음도 그만큼 변했다.
예전엔 그저 공을 멀리 치고, 좋은 스코어를 내면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한 번의 좋은 스윙에도 감사할 줄 안다. 굳이 좋은 스코어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필드에서 라운드를 하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행복하다.
그동안 새삼 느낀 게 있다. "골프에는 결코 늦은 시작이 없다는 것을..."
어느 때고 골프는 할 수 있다. 30대든 60대든 결코 늦지는 않다. 언제 골프를 시작하든 나이에 맞게 하면 된다. 다만 그에 맞게 마음가짐을 달리하면 된다.
인생도 그럴 것이다. 한동안 손 놓았던 골프를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다시 새롭게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이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하기에는 억울하지 않는가.
내가 60대 후반에 다시 잡은 골프채는 단순한 운동기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나온 30여 년의 시간을 이어주는 다리였고, 앞으로 남은 인생을 힘차께 살아가는데 도움을 줄 지팡이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이 골프채로 인해 "나는 아직 건재하구나"란 확신을 갖게 됐다. 그건 나만의 대단한 자부심이기도 하다.
오늘도 나는 기쁜 마음으로 골프연습장에 간다. 여느 때처럼 골프공 하나를 티 위에 올려놓고 천천히 어드레스를 한다. 그리고 힘을 빼고 부드럽게 스윙한다.
이윽고 공은 허공을 가르며 힘차게 날아간다. 저 멀리 푸른 숲과 하늘이 시야에 들어온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참 오래동안 돌아왔구나. 하지만 다시 돌아와서 참 다행이다"
골프코스에는 18홀이 있지만, 골프 인생에는 마지막 홀이 없다. 오늘 자신의 스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일 다시 가다듬으면 된다. 오늘 안된다고 내일도 안되는 것은 아니다. 노력하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된다. 그게 골프요, 인생이다. 뒤늦게 다시 시작한 골프가 내 삶에 힘을 주고 용기를 준다면 그 이상 바랄 게 뭐가 있겠는가. 골프로 인해 나는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삶에서 골프는 캄캄한 밤바다에 비치는 등대와 같다.
원순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