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에 한 상급병원으로 보내는 소견서 하나가 화제가 됐다. 한 남성이 무고환증이 의심되어서 정밀검사를 의뢰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30대 남성이 결혼을 이미 했고 자녀가 이미 둘이나 있는 상태였다. 모두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흥미롭게 바라봤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일단 결과보다 성관계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해 살펴보자.
앞선 남성에 대해 얘기하기에 앞서 고환에 대해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고환은 원래 복강 내에 존재하는데 임신 8개월 경에 음낭으로 하강한다. 음낭으로 완전하게 내려오지 못하고 복강, 서혜부, 음낭 전면에서 멈춘 것을 잠복 고환이라고 지칭한다. 일단 이 고환이 없다면 2세를 가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비뇨기과적으로 보면 앞선 남성은 잠복고환 상태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비슷한 예로 과거로 돌아가서 내시
또는 환관들이 일부 성관계를 했다는 야사를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고환이 없는데 이것이 가능했을까? 이 궁금증을 풀어보자.
내시 또는 환관이라는 용어는 비슷한 의미로 통용되지만, 역사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사용된다. 환관(宦官,Castrato)은 중동, 고대 로마 지역 그리고 서아시아에서 주로 사용한다. 이들은 종교적인 의식 또는 궁정에서 관료로서 행정 업무를 수행했다. 특이하게도 이탈리아에서는 성악가 중에 환관들이 있었다. 변성기를 거치지 않고 성악을 하기 위해서 어린 시절에 거세한 것이다. 예술과 남성 사이의 중요함을 견주어 본다면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분명 존재하였다. 반면 내시(內侍,Eunuch)는 한국, 중국, 베트남 등 동아시아에서 주로 사용한다. 이는 거세된 남성으로 궁정 내에서 봉사하는 일을 수 행했다.
중국에서 내시는 기원전 8세기경인 춘추전국시대부터 있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기원전 206년 한나라 시기부터는 궁정에서 시중을 드는 역할을 넘어서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명나라와 청나라 시기에는 내시들이 그 영역을 행정과 정치적인 업무로 넓혀가면서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 우리
나라는 고려시대(918년~1392년)에 원나라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내시가 도입됐다. 고환이 제거된 남성들을 관리로 두고, 그들을 통해 후궁과 왕실의 업무를 담당하게 했다.
물론 신라 시대의 내시제도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이때 내시는 왕의 측근에서 정무를 보는 사람을 뜻하고, 성 기능상실과는 관련 없는 관직이었다. 조선시대(1392년~1910년)에는 내시부(內侍府)를 설립하여 내시들을 관리하고 교육하는 시스템을 갖추면서 더욱 체계적으로 발전했다.
그렇다면 사고 등으로 인해 거세된 남성은 제한적일 텐데 어떻게 그 많은 내시가 계속 존재할 수 있었을까? 결국 멀쩡한 남성의 외부 생식기를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의학으로도 하기 어려운 매우 신중한 수술인데 과거에 그렇게 했다는 것은 참 위험하고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 수술은 중국의 ‘창자’라는 도자소에서 시행했으며 자금성 서화문 밖에 위치한다. 정부에서 공인된 전문 시술인 도자장이 했는데 지금으로 따지면 비뇨기과 전문의라고할 수도 있다. 일명 형틀인 수술대에 사지를 묶은 후 보조시술자 3명이 팔과 허리 그리고 다리를 누른 상태에서 도자장이 집도한다.
그리고 칼을 이용하여 음경과 고환을 자른 후 도뇨관을 꼽고 마무리한다. 수술비는 은전 6냥이며, 완치
될 때까지 책임진다. 물론 수술 후 합병증으로 사망률은 매우 높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나라에는 내시를 만드는 수술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원로향토사학자 김동복 씨 증언에 따르면 고종 34년(1897년) 갑오경장으로 내시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 영등포 부근 ‘용추’라는 연못 옆에 내시를 양산하는 움막 시술소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음경은 남겨놓고 고환만 제거했다. 음경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합병증이 덜했을 것이다. 또 음경이 남아있기에 내시의 성행위가 가능했고, 이로 인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실마리를 제공했을 것이다. 종합하면 음경이 남아있는 내시의 경우 성인이 되어서 고환을 절제했다면 약하지만, 성생활이 가능하다.
물론 발기가 돼도 정상 기능을 가진 남성에 비해서는 강직도와 지속시간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시로 살아간 남성들의 고뇌는 단순히 성행위를 할 수 있냐 없냐라는 신체적 변화부터 시작해서 더 많은 고뇌가 있었을 것이다. 남성 정체성의 상실, 2세를 가질 수 없는 괴로움, 사회적 차별과 고립, 권력과 의무 사이의 내적 갈등 그리고 끊임없는 도덕적 압박 등이 다각적으로 있었을 것이다. 즉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남자로서의 본연의 삶’을 잃고, 평생 금기와 규제로 둘러싸인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고뇌와 어려움은 현대 사회에서 내시 제도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함께, 인간의 본질적 정체성, 자율성, 그리고 사회적 수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