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시선] “건전성은 남의 일?”…보험사의 기묘한 회계 쇼와 금융당국의 느긋한 조율

  • 등록 2025.07.06 11: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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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들 “회계제도 탓”…실상은 무리한 장사와 리스크 방치
건전성 지표 추락에도 금융당국은 “조정” 운운
무·저해지보험 경쟁 과열…이익만 챙기고 책임은 회피
이제는 면죄부가 아니라, 금융사에 ‘진짜 책임’을 물어야 할 때

지이코노미 문채형 기자 | 보험사의 ‘건전성 지표’가 흔들리고 있다. 새로운 회계제도(IFRS17)와 신지급여력제도(K-ICS)가 도입된 지 2년, 보험사들은 “너무 힘들다”고 아우성이고, 금융당국은 제도 조정을 논의하겠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하지만 묻고 싶다. 지금의 혼란은 정말 제도 탓인가, 아니면 보험사 스스로의 ‘무리한 장사’가 자초한 일인가.

 

 

보험사들은 IFRS17이 도입되며 부채를 시가로 평가하게 된 것이 문제의 근원이라 말한다. 금리가 낮아지면 부채가 늘어나고, 이에 따라 건전성 지표가 나빠진다는 논리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반문해보자. 그들이 과거 높은 시장금리를 배경으로 무·저해지보험을 경쟁적으로 팔아 치울 땐 왜 아무 말이 없었나.

 

지금 문제가 된 것은 ‘회계제도의 충격’이 아니라, 장기보장성상품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단기 실적에 집착한 판매 전략 때문이다. CSM(보험계약마진)을 부풀리며 실적을 미화한 결과, 자산과 부채의 만기가 엇갈리는 ‘듀레이션 갭’이라는 시한폭탄을 키운 건 보험사 스스로다. 자산운용을 부실하게 해놓고, 제도가 너무 급격했다며 손가락질을 하는 건 무책임 그 자체다.

 

문제는 금융당국의 태도다. 보험사의 건전성 지표가 떨어지자,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연착륙이 중요하다”며 할인율 현실화 시점을 늦추고, 듀레이션 갭 허용 기준도 완화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분명 규제의 유연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업계에 ‘특혜성 면죄부’를 주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건전성 지표 하락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소비자 보호, 보험금 지급 여력, 그리고 금융 시스템 전체의 안정성과 직결된다. 이처럼 민감한 문제를 두고 ‘업계 의견 수렴’을 명분으로 규제 완화를 검토한다는 건, “금융사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보험사를 비롯한 금융사는 늘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장사가 잘 될 땐 막대한 이익을 주주에게 돌리며 고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열을 올린다. 그런데 그 ‘주주’는 누구인가. 바로 오너일가다.

 

삼성생명은 삼성물산이 최대주주인데, 삼성물산은 이재용 회장 등 삼성 오너일가의 지배력 아래 있다. 한화생명의 주요 주주는 한화건설, 한화에너지 등 한화그룹 계열사로, 결국 김승연 회장 일가가 실질적 수혜자다. 교보생명은 신창재 회장이 개인 최대주주로 약 34%의 지분을 직접 보유하고 있으며, 창업주 일가의 지배체제가 굳건하다. 미래에셋생명의 대주주는 미래에셋캐피탈과 미래에셋증권인데, 이들 모두 박현주 회장이 실질 지배하는 구조다.

 

이처럼 보험사들의 ‘이익 환원’은 곧 오너일가로의 수익 귀속으로 직결된다. 그런데 정작 건전성이 흔들리면, 보험사들은 제도 탓, 금리 탓을 하며 규제 완화와 유예를 요구한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행태다. 공공성을 띤 금융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사모펀드처럼 ‘이익 극대화 구조’만 작동하는 현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ALM(자산부채종합관리) 규제 강화, 할인율 조정 등은 제도 개선의 출발점이어야지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문제를 유예한다고 해서 본질이 사라지진 않는다. 오히려 보험사들에게 “버틸 수 있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뿐이다.

 

보험사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한 금융기관이다. 수십 년 뒤를 내다보고 고객에게 약속한 보험금을 지불할 책임이 있다. 이들은 고객의 생명과 노후를 담보로 장사하면서도, 경영 리스크는 ‘회계제도 탓’, ‘금리 환경 탓’으로 돌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보험사의 눈치를 볼 게 아니라, 고객과 국민을 바라봐야 한다. 듀레이션 갭을 최소화하고, 실질적인 자본 확충과 리스크 관리를 강제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필요한 건 ‘조정’이 아니라 ‘통제’이고, ‘완화’가 아니라 ‘책임’이다.

 

이제는 금융사의 고질병인 “이익은 사유화, 손실은 사회화”라는 구조를 깨야 한다. 금융사들의 건전성 문제는 늘 시스템 탓이 아니라 습관 탓이었다. 보험업계가 진정한 자율성과 책임경영을 원한다면, 이제는 회계제도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리스크 감내 능력을 증명해야 할 때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문채형 기자 moon113@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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