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강매화 기자 | 애플이 미국 내 희토류 자립을 위해 MP머티리얼스(MP Materials)와 손을 잡았다. 미·중 간 기술패권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애플이 미국 내 공급망을 강화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5억달러 규모의 희토류 자석 구매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1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애플이 미국의 유일한 희토류 광산 운영 업체인 MP머티리얼스와 중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계약에 따라 MP는 텍사스 포트워스 공장에서 제조한 자석을 오는 2027년부터 애플에 공급할 예정이다. 캘리포니아에 신설 중인 공장에서는 재활용 소재를 활용한 가공도 진행된다.
애플은 이 계약이 "수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기간은 공개하지 않았다. MP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공시를 통해 애플로부터 선급금 2억달러를 수령했다고 밝혔다.
희토류 자석은 스마트폰, 컴퓨터, 전기차 모터, 내비게이션 장비 등 첨단 기기의 핵심 소재다. 특히 애플 제품에서는 아이폰의 햅틱 엔진, 오디오 시스템, 마이크 등에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이 때문에 희토류 확보는 애플의 제품 품질과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다.
MP머티리얼스는 이번 계약을 통해 애플의 공급망 핵심 파트너로 떠올랐다. DA데이비슨의 애널리스트 맷 서머빌은 “MP의 상업적 성장세가 본격화될 것”이라며, 애플이 텍사스 공장의 주요 고객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애플은 희토류 자석의 대부분을 아시아에서 조달하고 있으며, 공급처에는 중국 바오터우(Baotou) 소재의 INST 마그네틱 뉴 머티리얼스 등이 포함된다. 바오터우는 지난해 베트남에도 생산기지를 확대해 공급망을 다변화해 왔다.
하지만 애플은 최근 들어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인도와 베트남 등으로 생산 기지를 분산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미국 내 투자 확대는 상대적으로 더디다는 평가가 있었다.
이번 계약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미국 내 생산 확대’ 요청에 대한 대응으로도 해석된다. 트럼프는 애플에 미국산 아이폰 생산을 압박하며 팀 쿡 CEO를 공개적으로 지목해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이폰을 미국 내에서 제조할 경우 가격이 수천 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며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해왔다.
앞서 애플은 지난 2월 트럼프 취임 직후 미국에 4년간 총 5,0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발표된 액수의 일부는 이미 예정된 투자이며, 일부는 해외 투자 계획을 미국으로 전환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미국은 희토류 전략 자원 확보를 위해 전방위로 움직이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원광의 약 70%, 가공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어 미국에 상당한 공급 리스크를 안기고 있다. 2019년 미·중 무역전쟁 당시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무기화하자, 미국은 희토류 독립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주요 과제로 삼아왔다.
이와 관련해 미 국방부는 최근 MP머티리얼스의 지분 15%를 인수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는 민간 기술 기업과의 공급망 통합을 통해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의지를 반영한다.
이번 애플–MP머티리얼스 간 계약은 단순한 상업적 거래를 넘어, 기술 주권과 글로벌 공급망 지형 변화의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애플이 본격적으로 미국 내 희토류 조달에 나서면서, 향후 반도체·배터리 등 다른 핵심 소재 공급망 재편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