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꺼꾸리가 외눈을 부아려 세우자 앙얼이 두 눈을 까뒤집듯이 번뜩이며 묻는다.
“작년 끄르끄 법성포 단오제 무렵, 법성포 조창서 출항허던 세곡선을 목냉기서 털 때, 지들 목으로 떼 준 쌀이 짝다고 대든 고놈 겍포파 막둥이 새끼 기억 나냥께?”
앙얼의 물음 끝에 주뱅은 고개를 툭 떨군다.
“그 새끼, 작년 춘삼월 비안도서 세곡선 털다 화살 맞고 뒈졌는디, 멋 땜시 고걸 묻냐고?”
꺼꾸리의 목소리에 설움이 묻었다. 앙얼의 목소리가 커진다.
“무시 으쩌고 으째야! 비안도서 뒈졌다고야?”
꺼꾸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니 새끼가 고걸 으째 아는디?”
“나도 세곡선 터는디 따러 갔다가 용케도 살어 남았고만.”
끔찍한 일이 목구멍에 다시 걸린 듯 꺼꾸리의 어깨가 한 번 움찔한다.
시누대 대숲의 댓잎들이 날을 세운 채 ‘우~우~’ 하고 운다. 꺼꾸리와 앙얼의 서글픈 사연을 바람 속에서 훔쳐 듣는 듯하다.
수성당까지 백 보쯤 남겨 둔 자리에서야 앙얼이 마침내 입을 뗀다.
“고놈 겍포파 막둥이 새끼, 고향이 여그 죽막동여. 고 새끼가 귀띔혀서 수성할맬 개양할매라 부른다는 걸 알았고만.”
“그리서 어쩠다고?”
꺼꾸리가 칼칼하게 묻지만 앙얼은 말머릴 슬쩍 틀어 버린다.
“야아 야 꺼어 꺼꿀아!”
“아니 이 새끼가 으째 또 이런댜! 나가 칼을 지 모가지다 들이대도 눈 한나 끔쩍 안헌 새끼가, 으째 또 세바닥 짤븐 소릴 헌다냐!”
꺼꾸리가 짭짤하게 면박을 준다.
“시일 실은 말이여, 거어 겁이 나서 그으 그러는고만!”
“무시 겁 나는디?”
“수우, 수성당 안 술이나 음식을 두울 둘러먹으믄, 참말로 도옹 동티 아안 안 날꺼나?”
꺼꾸리가 너털웃음을 한 번 뱉고는 땅을 찍듯 팍팍 발걸음을 내딛는다.
“야 새꺄! 아까참으 수성당엘 가보자고 험서러 나 헌티 무시라혔제?”
앙얼은 제 입으로 똥이라 했는지 오줌이라 했는지 헛갈린 듯 끝내 대꾸를 못한다.
“니 소원이 무시라혔냐고?”
꺼꾸리가 묻지만 앙얼은 대답이 없다.
“니 소원은 뒈지기 전에 배창시 한 번 원읎이 채우고, 그라고도 복이 쪼깨라도 남았으믄, 니입에서 술찌개미 기어나오도록 술을 퍼 마셔 보는 거람서!”
꺼꾸리가 되꼽아 쏘아붙여 무안을 주자 앙얼은 끝내 고개를 못 든다.
“야, 앙얼아! 굶어 뒈지나, 동티 나서 뒈지나 고게 고걸턴디, 쳐먹고 뒈진 구신 때깔도 좋다잖냐. 그랑게 빌어먹을 요놈 인생살이, 기왕지사 요렇기 됐응께 원읎이 한 번 쳐먹고 뒈지는 것이 안 낫것냐?”
꺼꾸리가 이렇게 몰아붙여도 앙얼은 말이 없다. 꺼꾸리가 몇 마디 더 짖어대지만, 앙얼은 묵은 젓갈 몇 종지를 삼켜 넣은 얼굴 그대로다.
꺼꾸리의 발길이 수성당으로 곧장 향한다. 그 뒤를 따르는 앙얼의 눈길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늙은 소의 눈빛처럼 희멀겋다.
그때, 저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날 선 채로 들려온다. 꺼꾸리와 앙얼은 숨을 삼키며 잽싸게 시누대 숲으로 몸을 접어 넣는다.
“수우 수성당 저어 저 짝으로 잉 으으 으떤 새끼가 기이 기어오는갑다.”
시누대 대숲에 얼굴을 감춘 뒤 앙얼이 숨을 헐떡이며 내뱉는다. 혀끝이 풀려 말더듬이가 다시 도진다.
“글씨!…”
시누대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길 없는 꺼꾸리는 귓문을 활짝 열어둔 채 낮게 말한다. 투박한 말투 속에도 긴장이 스민다. 멎지 않는 개 짖는 소리가 달갑지 않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쪼까 더 안짝으로 들어가야 쓸랑갑다. 으떤 새끼가 열로 기어오는진 몰러도, 그 새끼허고 우덜허고 쌍판대기를 맞대믄 참말로 먼일이 날지 모릉께, 어여 안짝으로 더 들어가잔께!”
꺼꾸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앙얼이 또 떠듬떠듬 입술을 뗀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