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을 둘러싼 논란은 더 이상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법치가 어디까지 존중받는지, 그리고 외국 자본이 국내 질서 위에 설 수 있는지를 묻는 구조적 질문으로 번지고 있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중대한 사안이 발생했음에도 쿠팡은 국민 앞에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국회의 출석 요구 역시 외면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미국 정치권 인사들의 발언은 잇따라 등장하며 한국 정부의 조치를 문제 삼았다. 국내 법 절차에는 침묵하면서, 해외 정치권에는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이중적 태도가 드러난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분명하다. 한국에서 영업하며 막대한 수익을 올린 기업이, 위기 국면에서는 한국의 법과 제도를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 외국 정치 권력을 통해 우회하려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경영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법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정부가 이 사안을 예사롭게 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통령실 주재로 관계부처가 한자리에 모였고, 외교·안보 라인까지 상황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는 이번 사태가 기업 규제를 넘어, 국가 주권과 공공 질서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논란의 중심에는 ‘정치적 영향력’이 있다. 일부 외신과 정치권 인사들이 한국 정부의 법 집행을 “미국 기업 차별”로 규정하며 문제를 제기했지만, 그 과정과 배경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 여기에 미국 내 로비 활동이 거론되면서, 정당한 외교적 의견 개진인지, 아니면 압박을 통한 개입인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물론 기업이 정책 환경에 의견을 내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 방식이 한 국가의 사법·행정 권한을 흔드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는 자유로운 기업 활동의 범주를 넘어, 주권과 법질서의 문제로 전환된다.
국내 여론이 급속히 식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 돈을 벌고, 위기 앞에서는 외국 권력을 동원한다”는 인식은 기업에 대한 신뢰를 근본부터 무너뜨린다. 이는 반기업 정서의 문제가 아니라, 법 앞의 평등을 요구하는 상식의 문제다.
기업의 국적이 어디든, 영업의 기반이 되는 국가의 법과 제도를 존중하는 것은 최소한의 책무다. 이를 외면한 채 영향력과 자본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방식은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쿠팡이 마주한 질문은 단순하다.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질 것인가, 아니면 법 위에 서려는 기업으로 남을 것인가.
법치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그 위에 선 기업은 존재할 수 없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