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꺼어 꺼꿀아! 니이 니가 알득기 나아 나가 말여 어엇, 엊저녁부텀 바아 밥 한 숟꾸락 모오 목구녕으로 넘긴 적이 으읍 읎잖냐! 그을 글다봉께, 시이 시방 내 배에 배창시서 거얼 걸신 든 그으 그시랑이 모옥 목구녕으로 기이 기어 나올라고 이임 임뱅지랄들을 떠는 것 같은디, 이이 이러다 잉! 나아 나 참말로 구으 굶어 뒈지는 거 아아 아닐꺼나?”
푸념을 늘어놓지만, 앙얼의 속내는 꺼꾸리의 제안을 떨치기 어렵다. 만에 하나 해적 두 사람이 죽막동 시누대 대숲에 숨어 있다는 소문이 격포진 관아에 스치기만 해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소문은 바람처럼 번진다. 갯바람을 타고 격포진 첨사의 귓전에 닿으면, 횃불의 붉은 빛이 수성당 쪽으로 옮겨붙을 터. 달이 뜨고 횃불까지 달빛에 섞이면, 대숲은 두 사람을 더 숨겨주지 못하리라. 그때는 앙얼과 꺼꾸리가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다.
최근 변산반도 바닷가에는 흉한 소문이 돌았다. 왕포 갯돌 틈, 물때가 닿지 않는 자리에 검붉은 피의 얼룩이 말라붙어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 때문에 부안현감과 격포진 첨사는 눈이 뒤집혀 있다. 숨은 해적을 찾아내겠다고 별러댔다.
앙얼과 꺼꾸리가 이런 사정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잔뜩 몸을 사린다.
“으따 묻허냐? 큰 제번나기 전으 언능 들어가장께!”
이렇게 다그친 뒤, 꺼꾸리가 앞서자 앙얼이 마지못해 발을 뗀다. 추석 뒤끝이라 술은 없어도, 떡고물이라도 남아 있을 수성당을 눈앞에 두고 발길을 돌리자니 못내 섭섭하다.
죽막동엔 시누대가 막을 치듯 우거져 있다. 대숲이 길을 가리는 동네다.
죽막동 시누대는 왕대와 다르다. 멀대처럼 키 크지 않다. 줄기래야 제 아무리 굵어도 사람 손가락 굵기다. 어울려 선 본새도 다르다. 왕대는 띄엄띄엄 서서 하늘을 우러르지만 시누대는 빽빽하게 우거져 살아들간다.
대숲의 시누대는 촘촘해서 밑동 사이로 생쥐나 참새조차 들락거릴 틈이 없다. 몸통이 굵은 구렁이는 기어다니기 빠듯한 숲이다.
꺼꾸리는 여름 홑바지 뒷괴춤에 찔러 둔 비수를 꺼내 오른손에 꼬나들고 시누대 밑동을 사정없이 내리친다. 길을 트려고 하지만 여의치 않다.
키가 작고 줄기가 가늘지만, 화살용 시누대가 비수에 몸을 쉬 내줄 리 없다. 사람 몸엔 푹푹 박히는 비수로 꺼꾸리가 자신 있게 칼 휘둘러보지만, 무리진 시누대는 쉽게 길을 터주지 않는다.
“미치것고만 잉!…”
꺼꾸리가 이마의 땀을 왼손으로 훔치며 짜증 낸다.
“내에 내락읎이 어어, 어쩌 또 임뱅 지이 지랄을 떠냐?”
앙얼이 시비를 걸지만 꺼꾸리는 애꾸눈을 뒤집어 깔 뿐 대거리를 하지 않고 앙얼의 입에서 대책이 나오길 기다린다.
앙얼이 성긴 틈새를 찾아 길을 튼다. 열 보쯤 뒤, 시누대 사이로 듬성듬성 난 에움길이 눈에 띈다.
앙얼이 앞장을 서고 꺼꾸리가 그 뒤를 따른다. 날카로운 댓잎이 얼굴을 할퀴고, 청미래 덩굴이 팔뚝을 스친다. 두 사람 몸에 생채기가 난다.
대숲에 숨어 있던 물것들이 달려든다. 몸과 옷에서 나는 쩐내도 있겠지만, 생채기에서 풍기는 미미한 피비린내가 더 많은 물것을 불러 모은다.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가고, 모기의 입도 비뚤어진다고 전해온다. 그런데 갑신년 중추, 격포진 죽막동의 숲모기들은 입이 바로 붙었다. 몸집이 커서 입도 크고, 갯바람에 시달려서 그런지 입놀림이 야물다.
입심 좋은 숲모기떼들이 달려들어도 두 사람은 손쓸 겨를이 없다. 피에 굶주린 암컷 모기가 입술침을 쑤셔 박은 자리는 금세 벌겋게 탱탱 부푼다. 모기는 팔뚝과 얼굴의 생채기에도 입술침을 꽂는다.
시누대 숲에 숨어 있던 먹파리도 달려든다. 암컷 먹파리가 생채기는 물론 성한 살갗에도 주둥이를 들이대고 피를 빨아댄다.
두 사람은 여러 종의 물것을 물리칠 마땅한 대책이 없다. 손에 든 비수를 휘둘러 모기 대가리의 골을 빼낼 짬도 없다. 멀리서 들리던 개 짖는 소리가 점점 커지니 시누대 숲에 숨는 일이 더 다급하다.
갑작스러운 들고양이 울음소리에 인기척까지 더해지니 들쥐가 넋이 빠진 듯 쥐구멍이나 뱀굴을 가리지 않고 몸을 숨긴다.
앙얼과 꺼꾸리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분명 수성당으로 발길을 놓는 자들이 있다. 그들한테 큰 봉변을 당하기 전, 시누대 숲으로 뛰어들어 몸 숨기는 것이 상책이다.
두 사람이 종종걸음을 멈춘 곳은 수성당 가는 오솔길에서 서른 걸음쯤 떨어진 여울굴 쪽 대숲이다. 깎아지른 칠십 척 적벽의 여울굴 벼랑 끝 대숲 언저리에 두 사람이 털썩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쉰다.
적벽강은 붉은 벼랑이 바다로 곧장 떨어져 달빛에도 핏기가 도는 절벽이다. 갯바람에 우는 대숲 울음소리 때문인지 적벽강에 부딪치는 파도소리 때문인지, 두 사람 귀엔 개 짖는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는다. 개소리는 끊겼지만 두 사람의 숨소리는 더 거칠어진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