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야, 꺼꿀아!”
앙얼이 속삭이듯 꺼꾸리를 부른다. 턱 끝 생채기에 달라붙은 먹파리를 손바닥으로 때려잡으려다 놓친 탓인지, 눈꼬리가 심하게 찌그러진다.
“작년 춘삼월 비안도서 세곡선 털다 뒈졌다는 겍포파 막둥이 새끼헌티 들은 야근디, 한 번 들어볼쳐?”
꺼꾸리는 일언반구 대꾸도 없이 몸 이곳저곳을 긁느라 정신없다. 갯바람이 살랑살랑 불기 시작하자 숲모기와 먹파리가 몸에 달라붙는 횟수 줄었지만, 피에 굶주린 물것들이 남긴 가려움증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앙얼은 지난봄부터 가끔 꺼꾸리를 말하는 남생이로 대한다. 앙얼이 자기를 허풍쟁이나 거짓말쟁이로 대하는 이유를 꺼꾸리는 모른다.
‘그려 빙신 고운디 있을 턱이 읎제!…’
앙얼은 혼잣소리를 내뱉은 뒤, 허리춤에서 비수를 꺼내 대숲에 누울 자리를 마련한다. 그런 다음, 벌러덩 드러눕는다.
적벽강에 희미한 달빛이 번진다. 대숲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꺼꾸리도, 드러누운 앙얼도 달라붙던 물것들을 찰싹 때려잡거나, 물리고 뜯겨 가려운 데를 팍팍 긁는 횟수가 크게 줄었다.
배 주림과 정 주림에 지친 앙얼의 눈에 졸음이 쏟아지는 모양이다. 금세 곯아떨어진 앙얼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꺼꾸리가 괴춤에서 비수를 꺼낸다.
갑자기 엉덩이를 털며 일어난 꺼꾸리가 오른손에 비수 쥐고 대숲 밖으로 나가 수성당 가는 오솔길에 오른다. 수성당 안 제사상에 혹시 있을지도 모를 밥 한 그릇이라도 건질 심산이다.
난데없는 사람의 발기척에 놀란 들짐승과 날짐승의 움직임이 날렵하다. 똬리를 틀고 있다가 꺼꾸리의 짚신을 타고 넘는 뱀도 있고, 하마터면 꼬리를 밟힐 뻔한 들쥐도 있다.
꺼꾸리가 수성당 근처에 다다르자 꿩 두 마리가 푸드덕 날아오른다. 꿩을 낚아채려는 듯 어디선가 수리부엉이 한 마리가 나타난다. 꺼꾸리의 봉두난발을 스치고 지나간다.
달이 막 솟은 초저녁, 대숲에 날아든 수리부엉이가 꺼꾸리의 외눈엔 독수리보다 더 크게 보인다. 깜짝 놀란 꺼꾸리가 비수를 허공에 네댓 번 휘젓는다. 벌름거리는 심장이 한참 동안 탈싹거린다.
“어이고, 씨부랄!…”
심장이 벌렁벌렁 제멋대로 뛰자 꺼꾸리가 자책하며 혼잣말을 내뱉는다. 거의 반평생을 해적질로 살아온 자가 수리부엉이 한 마리에 놀라 사지를 달달 떨고, 맞방망이질 치는 심장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 없다니, 그는 스스로 한심함을 느낀다.
심장의 두방망이질은 줄담배를 두어 대 피울 참이 지난 뒤에야 누그러졌다. 몸과 마음을 추스른 꺼꾸리가 조심조심 수성당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수성당 안 지셋상에 밥 한그륵이라도 있어야 헐턴디, 참말로 꺽정이고만 잉!…불쌍헌 앙얼이 저 새끼, 저러다 굶어 뒈지게 생겼는디, 개양할매 지발 부탁허요, 더도 말고 들도 말고 수성당서 지발 족족 밥 한 그륵만 둘러오게 혀주요.…’
꺼꾸리는 속으로 이런 기도를 올리며 수성당 당집 뒤뜰에 발을 내딛는다.
해가 질 무렵, 앙얼은 ‘어젯밤부터 밥 한술 입에 넣은 적 없어, 창자 속 회충이 목을 타고 기어 올라와 입 밖으로 나올 것 같다’고 투덜댔다. 사실 꺼꾸리도 배가 고프다. 어쩌면 앙얼보다 더할지 모른다.
며칠 전, 꺼꾸리는 내소사 근처 왕포에서 고깃배 선원 한 명을 비수로 살해했다. 그 뒤, 입맛 뚝 떨어졌다. 어쩌다 먹을거리가 보이면, 앙얼은 걸신들린 듯 설쳤지만 꺼꾸리는 그러지 않았다.
이미 여러 날, 꺼꾸리와 앙얼은 변산반도 깊은 산속에서 숨어 지냈다. 산길을 오르내리다 감나무나 밤나무가 나오면 걸음을 멈춰 세웠다. 떫은 감도, 땅에 떨어져 벌레 먹은 밤도 가리지 않고 주워서 입 안에 밀어 넣었다. 산중 화전민의 밭이 나오면 몰래 들어가 농작물을 훔쳐 시장기 면했다.
산중 민가에도 여러 차례 숨어들었다. 민가가 보이면 숲이나 바위 뒤에 몸을 숨긴 채 한참 몰래 살폈다. 집안에 개나 안팎에 사람 있는지 꼼꼼히 살핀 뒤, 없으면 슬금슬금 들어가 부엌, 헛간, 안방까지 뒤져 먹을거리를 찾았다.
매번 허탕이었다.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중추인데도, 몰래 기어든 깊은 산중의 민가엔 쉰 찬밥 한 그릇조차 없었다. 변산반도 산중 사람들의 삶도 팍팍한 모양이었다.
가윗날은 물론 앞뒤로도 두 사람은 곡기를 입에 거의 대지 못했다. 함부로 움직일 수 없어서다. 명절을 쇤답시고 동네방네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 선뜻 얼굴을 들고 빈집을 찾기 힘들었다. 비렁뱅이 노릇도 할 수가 없었다. 며칠 전 사람을 죽인 해적들이 어찌 낯짝 들고 동냥질을 하랴.
어제 점심나절, 죽막동 인근 수리봉 중턱 묘지 앞에서 앙얼은 송편 몇 개를 발견했다. 가윗날 성묘객이 남긴 모양이었다 허겁지겁 주워 먹은 뒤, 묘지 근처 풀숲을 뒤졌다. 찬밥 몇 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성묘객이 고수레한 찬밥 덩이가 흩어져 있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