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유주언 기자 | 국민연금이 MBK의 고려아연 적대적 인수 시도와 같은 국가기간산업 위협 상황에서도 기계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현실에 대해 학계와 전문가들이 공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은 단순 투자기관이 아닌 ‘산업 방패’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MBK 사태가 던진 질문… “국민연금은 왜 방관했나”
지난 28일 세종대에서 열린 ‘국가기간산업 보호와 국민연금 역할’ 토론회는 고려아연 인수전에 MBK파트너스가 나서며 불거진 국민연금의 무기력한 의결권 행사에 대해 날을 세웠다. 연기금이 단기 수익만 추구한 나머지 외국자본에 핵심 산업을 내주는 상황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권재열 경희대 교수는 “국민연금은 세계 3대 연기금이자 공공자산의 상징”이라며 “지금처럼 산업의 특수성 없이 ESG 기준만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산업 안보는 무너진다”고 말했다.
“수천조 눈먼 돈”… 사업보국 외면한 연기금
“국민연금은 의무가입형 펀드다. 하지만 그 막대한 자금이 가입자 의사도 반영되지 않은 채 몇몇 위원들 손에서 좌지우지된다면, 그것은 눈먼 돈이다.”
강원 세종대 교수는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를 정면 비판하며 ‘사업보국’이라는 산업보호 철학을 기금운용에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가기간산업을 중국계 자본과 연계된 사모펀드에 넘기는 데 연금이 동조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국민 배신”이라고 일갈했다.
“수익률만 따지지 마라”… 경제 안보까지 봐야
신현한 연세대 교수는 “2050년까지 3,600조 원에 이를 국민연금 자산이 단기 수익만 추구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지역경제와 고용, 복지비용 절감 효과 등 장기적 측면에서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기간산업 보호는 국가 경제의 마지막 방패”라며, 연금의 역할 재정립을 촉구했다. 김윤경 인천대 교수도 “의결권 행사의 가치와 철학이 없이 스튜어드십 코드만 확대해봤자, 방향을 잃은 무기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기업 개입 줄이고, 전략적 해외투자로”
다만, 국민연금의 지나친 국내 개입은 경계해야 한다는 시각도 제기됐다. 최재원 서울대 교수는 “지금처럼 국내 주식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는 위험하다”며 “노르웨이 국부펀드처럼 해외 전략투자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 산업 보호자 돼야”… 학계 한목소리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단순 재무투자 기관이 아닌 ‘국가경제 방어선’이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단기 수익률보다 장기적 산업생태계와 국가 안보에 기여하는 투자 철학이 절실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국민의 돈은 국민을 위한 방향으로만 흘러야 한다.” 그 당연한 원칙이 다시 한번 확인된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