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강매화 기자 | 콜마그룹의 윤동한 회장이 장남 윤상현 부회장을 상대로 주식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재계에선 “이쯤 되면 가업승계 실패를 공식 선언한 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남매 간 경영권 갈등이 부자 간 법적 분쟁으로 번지는 모습은 한 치의 미화 없이 ‘가족기업의 민낯’이다.

윤 회장은 지난 2019년 콜마홀딩스 주식 230만주를 장남에게 증여하며 승계의 큰 그림을 그렸다. 그룹의 핵심인 화장품·제약 부문은 장남 윤상현 부회장에게, 건강기능식품 부문은 차녀 윤여원 콜마비앤에이치 대표에게 맡긴다는 것이 당시 구상이었다. 하지만 그 ‘그림’은 5년 만에 찢겨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족 간의 합의는 경영 체계가 될 수 없고, 사적 신뢰는 공적 지배구조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콜마그룹이 몸소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자회사 콜마비앤에이치의 경영권을 두고 벌어진 이사회 개편 갈등이다. 윤 부회장이 소액주주 불만을 핑계 삼아 이사회 구성을 손보겠다고 나서자, 여동생 윤여원 대표는 “지주사가 자회사의 독립 경영을 침해하고 있다”며 반기를 들었다. 형제갈등은 법정 다툼으로 비화됐고, 결국 윤 회장 자신이 장남에게 물려준 지분을 되찾겠다며 소송장을 접수한 것이다.
이쯤 되면 단순한 가정 내 불화가 아니다. 윤동한 회장이 직접 인정한 '승계 실패 선언문'이자, '지분 중심 족벌 경영'의 한계를 보여주는 이정표다. 윤 회장의 법률대리인은 “윤상현 부회장이 일방적으로 합의를 깨고 권한을 남용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권한의 남용이 아니라 애초에 권한을 불투명한 방식으로 몰아준 구조 자체가 문제였다.
콜마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외형상 지배구조를 현대화한 듯 보였다. 그러나 지분은 여전히 가족에게 집중됐고, 이사회는 감시기능보다 내부 정리를 위한 무대가 됐다. 윤 부회장은 콜마홀딩스의 최대주주(31.75%)이자 그룹 전체를 관장하는 위치에 있다. 그런 인물이 자회사의 이사회에까지 관여하려는 시도는 지배구조 왜곡 그 자체다. 윤 회장은 이를 모를 리 없다. 결국 문제는 승계를 가족 간 '합의'에 맡긴 데 있다. 기업은 가족이 아니다. 주주는 혈연이 아니다. 그런 사실을 무시한 댓가는 언제나 비싼 법정다툼이다.
이번 사태는 한국 중견기업의 병폐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사회는 껍데기고, 경영권은 피 한 방울 섞인 이들에게만 돌아간다. 반발하면 “배신”이고, 따지면 “권한 남용”이다. 오너가의 감정 싸움이 지배구조를 흔들고, 그 충격은 투자자와 시장에 고스란히 전이된다.
“한국콜마 35년의 책임을 다음 세대가 이어간다”던 윤 회장의 선언은 공허한 수사가 됐다. 이번 사태는 단지 윤동한 회장 개인의 가족사로 끝날 일이 아니다. 한국식 족벌 승계 모델의 구조적 한계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훈이다.
기업은 공공재다. 가족소유가 아니다. 콜마그룹의 사례는 후계자에게 지분을 넘기고 마음만으로 책임을 위임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경고장이다. 기업가 정신은 '증여'가 아니라 '투명한 구조'와 '견제 가능한 시스템'에서 살아남는다. 윤 회장이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