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김정훈 기자 | 목포가 스스로를 ‘예향’이라 부르던 시절의 기세를 되찾을 수 있을까.
목포시의회 의원연구단체 예향목포연구회가 최근 목포시청 관계부서, 목포문화원 임원진과 머리를 맞댔다. 회의 주제는 단 하나로 수렴됐다. 시민 삶에 닿는 문화 인프라를 어떻게 복원·확충할 것인가, 그리고 그 첫 단추로 ‘목포문화원 독립 청사’를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였다.
간담회에는 예향목포연구회 박수경 회장과 최유란 간사, 문차복·박창수·박용준 의원이 참석했고, 목포문화원에서는 박창식 원장, 박정수 부원장, 정미영·천병식 이사, 조상현 사무국장이 자리했다.
참석자들은 문화정체성 회복과 시민 문화복지의 기반을 넓히려면 공간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전남의 시 단위 문화원 가운데 유일하게 독립 청사가 없는 기관이라는 현실은 이날 가장 무게 있게 다뤄진 사실이다.
목포문화원은 지금도 ‘목포시 건어물젓갈센터 4층’을 임대해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임시공간에 기대는 운영은 접근성·가시성·기능 확장성 모두에 걸림돌이 된다. 문화행사 때마다 장소를 섭외해야 하고, 상설 프로그램과 아카이브 구축도 어렵다. 지역 거점기관으로서의 상징성과 신뢰가 쌓이기 힘들다.
연구회는 해결의 순서를 명료하게 제시했다. 첫째, 시가 보유한 기존 자산을 적극 검토해 문화원 청사 후보지를 추리는 일. 원도심·해안선·관광동선과의 연계, 대중교통 접근성, 인근 교육·복지시설과의 협업 가능성 같은 객관 지표를 놓고 평가하되, 단기 이전과 중장기 확장 방안을 나눠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왔다.
둘째, 복합 기능을 전제로 한 공간 설계다. 전시실과 강의실, 소규모 공연·낭독이 가능한 블랙박스형 홀, 지역사 아카이브·디지털 열람공간, 시민 문화학교(서예·국악·민화·문학 창작), 생활문화동아리 창작실, 아카이브형 카페·서점까지 하나의 동선으로 엮으면 ‘와서 머무는 문화원’이 된다.
셋째, 재원 조달의 다층화다. 시 재정만으로는 속도가 더딜 수 있으니, 국·도 단위 공모사업, 도시재생 및 지역상생기금, 기업·기관의 사회공헌 연계, 시민 참여형 기부 프로그램 등 복수의 루트를 동시에 두드리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넷째, 운영모델의 투명화다. 독립 청사는 건물로 끝나지 않는다. 상설 교육·상설 전시·학술·공연이 주간·야간·주말에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운영 캘린더, 지역 예술인·청년기획자와의 공동운영 규칙, 민간협력(학교·도서관·박물관·관광자원) 프레임을 미리 설계해 두면 예산과 사람, 프로그램이 서로 붙는다.
간담회에서는 목포문화원의 역할 확장도 구체화됐다. 첫째, ‘목포 아카이브’ 구축. 근대 개항도시의 기억을 사진·영상·구술·포스터·악보·지도 등으로 모으고 디지털화해 시민과 연구자에게 개방하는 프로젝트가 제안됐다.
둘째, ‘예향 시민아카데미’ 상설화. 국악·문학·무용·연극·공예 등 목포의 기예를 오늘의 생활로 잇는 강좌를 계절학기제로 운영해, 수료작 발표회와 골목 축제를 엮는 방식이다.
셋째, ‘청년 기획 레지던시’. 지역 대학·청년 예술가·기획자를 선발해 6~12개월 단위로 실험 프로그램을 열고, 결과물을 소규모 순회공연·전시로 연결한다.
넷째, ‘관광 동선과의 결합’. 목포역–근대역사문화거리–해양박물관–수산시장으로 이어지는 생활·관광 동선 속에 문화원을 앵커 시설로 배치해, 주말 낮에는 가족·관광객, 평일 저녁에는 시민·동아리가 채우는 리듬을 만들자는 구상이다.
예향목포연구회는 최근 진도 답사를 통해 상설공연 운영과 기관 간 협업 사례를 살폈다. 남도국악원, 진도군 문화예술과와의 간담에서 배운 점을 토대로, 목포에 맞는 운영 모형을 뽑아내겠다는 계획도 공유됐다.
지역마다 조건이 다르니 ‘그대로 이식’이 아니라 ‘요소 단위’로 분해해 조합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이다. 공연장의 좌석 규모, 리허설룸·창작실 배치, 상주단체의 역할, 주당 프로그램 회전율 같은 세부 요소가 바로 그런 조합의 단위가 된다.
박수경 회장은 “예향목포의 정체성을 수사(修辭)가 아니라 제도와 공간으로 되살리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문화원이 향토문화의 보존·계승·창조를 동시에 감당할 수 있도록, 시와 함께 현실적 대안을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연구회는 조만간 후보지 검토 기준, 기능 배치 초안, 재원 구성안, 단계별 추진일정(이전–시범운영–상설화)을 포함한 제안서를 정리해 시에 전달할 예정이다. 논의 과정에서 시민 의견 수렴 창구를 열어 생활문화 동아리, 학부모, 원로 예술인, 청년 창작자들의 요구를 초기에 반영하는 절차도 함께 검토하기로 했다.
문화는 거창한 구호보다 ‘도시의 일상’을 바꾸는 작은 구조의 합으로 움직인다. 독립 청사는 상징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동선의 문제다. 시민이 쉽게 찾아와 배우고 보고 듣고 남길 수 있을 때, 예향은 과거의 명칭이 아니라 오늘의 내용이 된다.
예향목포연구회의 이번 간담회는 그 내용을 채우기 위한 첫 번째 바늘땀이었다. 다음 땀은 후보지 선정과 설계, 그다음은 운영 캘린더와 사람, 그리고 시민의 발걸음이다. 목포의 문화시계가 다시 정확히 맞춰질 수 있을지,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