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한정완 기자 | 초등생 성폭력 피해가 빠르게 늘고, 고려인 무료진료소는 운영비 부족으로 존폐 기로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광주 지역의 사회안전망 전반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시의회에서 제기됐다.
피해가 발생한 뒤 손을 쓰는 구조로는 더 이상 막기 어렵고, 예방과 공공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체계를 손봐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명노 광주시의원(더불어민주당·서구3)은 지난 7일 여성가족국 행정사무감사에서 “성폭력 피해 양상이 ‘초등 연령층+온라인 유인형’으로 이동했다”며 “광주가 대응 구조를 뒤늦게 따라가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이 근거로 든 자료는 광주해바라기센터(아동)의 지난 20년 통계다. 전남대병원이 위탁 운영하는 센터는 2005년 개소 이후 3,523명의 피해 아동·청소년에게 의료·법률·심리 치료 등 11만6,037건의 지원을 제공해왔다. 이 중 만 13세 미만 피해자가 1,947명, 전체의 55.2%를 차지했다. 절반 이상이 초등학생이라는 사실은 성폭력의 문턱이 얼마나 낮아졌는지 보여준다.
가해 연령대 또한 낮아지는 흐름이 확인됐다. 2005~2019년 13.9%였던 만 13세 미만 가해 비율이 2020~2024년 17.8%로 뛰었다. 센터는 스마트폰 보급과 채팅앱을 통한 익명 접촉이 늘면서 왜곡된 성 인식과 모방 행동이 동반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7년간 접수된 성폭력 사례 가운데 온라인·미디어 기반 유인형 범죄가 25.4%, 이 중 채팅앱을 통한 접근이 61%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호기심에서 시작된 접촉이 범죄로 이어지고, 또래가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연결되는 악순환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이 의원은 “지금의 구조는 사건 발생 이후에야 움직인다”며, ▲초·중학교 디지털 성범죄 예방교육 정례화 ▲채팅앱·SNS 기반 유인형 성범죄 모니터링 체계 구축 ▲피해 아동·가족 장기 회복 지원 강화 등을 시에 제안했다. 아동·청소년이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로 전환될 위험이 높은 만큼, 사전 예방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같은 자리에서 이 의원은 고려인 무료진료소 운영 문제도 함께 짚었다. 광주 월곡동에서 7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고려인을 사랑하는 의료인 모임’ 무료진료소는 지역 고려인 동포에게 응급의료 연계와 기초 진료를 제공해 왔다.
지금까지 누적 진료 인원만 1만4천여 명에 달한다. 그러나 연간 최소 6천만 원가량의 운영비가 필요함에도 광주시 지원은 2천만 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나머지는 의료진이 사비를 보태거나 후원으로 메우는 구조다.
진료소는 입국 초기 건강보험 미적용 상태에 놓인 고려인들에게 사실상 ‘첫 의료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의원은 “응급 상황에서 갈 곳 없는 환자들을 진료소가 대신 떠안고 있다”며 “관상동맥 시술비까지 진료소가 부담한 사례도 있었다”고 했다.
이어 “고려인은 강제 이주와 독립운동의 역사를 함께한 동포”라며, 일반 외국인 지원과 동일선상에 놓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광복 8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지역이 책임감을 갖고 지원 구조를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이 의원은 “성폭력 대응과 고려인 진료소 문제는 서로 다른 영역 같지만, 공통된 문제는 ‘공공이 채워야 할 자리를 민간 선의에 맡겨 왔다’는 점”이라며, 광주가 사회안전망을 근본적으로 손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여성가족국은 “예방과 지원 체계 보완 방안을 관계 기관과 협의하겠다”고 답했다.
아동·청소년의 안전과 지역 이주민의 건강권은 도시 품격을 가늠하는 잣대다. 피해가 드러난 뒤 봉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위험의 싹이 트기 전 제어하고, 공공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빈틈을 메우는 일은 결국 지역 공동체의 몫이다. 광주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사회안전망의 촘촘함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