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꺼꾸리는 제상의 시루떡을 볼이 터지도록 욱여넣고, 돗자리 위 무복을 집어 든다. 무복 자락을 벌려 제상 음식을 한꺼번에 쓸어 담자, 기름기를 머금은 천 자락이 눅진하게 아래로 처진다.
“할매, 참말로 용서허시오. 언진가는 이 신셀 꼭 갚을랑께.”
생선전을 몇 점 더 입에 집어넣고, 음식을 무복 자락에 싸맨 채 방을 나서려는 찰나, 방문 밖에서 기척이 스친다.
꺼꾸리는 숨을 낱낱이 쪼개 삼키며 비수를 뽑아 쥔 채 벽에 바짝 붙는다. 이 시간에 당집 문 앞을 맴도는 건 사람 아니면 짐승이다. 사람이면 소리부터 끊고, 짐승이면 목부터 딴다.
기척이 뚝 끊긴다. 꺼꾸리는 비수를 쳐든 채 굳는다. 팔에 힘이 쏠리자 손목이 저린다. 문짝이 부르르 떤다.
‘씨발!….’
그는 한참 뒤에야 안다. 바람이다. 문짝을 건드린 소금기 섞인 심술이다.
“삐그덕.”
꺼꾸리가 음식을 싼 무복을 들고 당집을 빠져나오자, 개 짖는 소리가 수성당의 고요를 찢는다. 그의 숨이 가빠진다.
“아 씨발!”
그는 뛴다. 탱화 속 개양할미와 여덟 딸의 눈길이 등덜미에 불도장처럼 찍히는 것 같고, 산신령인지 용왕인지 모를 노인도 뒤따르는 것 같다.
“환장허것네, 씨발!”
당집에서 서른 보쯤 벗어나자, 오솔길 끝이 출렁인다. 꺼꾸리는 번개같이 대숲으로 파고든다. 떡고물 묻은 입가를 손등으로 훔치며 숨을 어둠 속에 구겨 넣는다. 댓잎 끝이 뺨을 긁고 지나간다.
‘아니 저 새끼가 묻 헐라고 열로 올까 잉!’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진다. 앙얼의 숨소리가 섞인다. 꺼꾸리는 숨을 한 줌 뱉어내며 대숲 밖으로 나온다.
“이 상놈으 새끼가 어디 가 자빠졌나 혔더니만 여가 있었구먼 잉!”
앙얼은 비수를 괴춤에 밀어 넣으며 꺼꾸리 손의 무복을 힐끗 훑는다.
“당집에 들어갔다 나왔나 본디, 야 새꺄, 그 당골네 옷은 얻다 쓸라고?”
“먹을 걸 싸왔응께 언능 가자.”
“얼로?”
“나도 모르겄고, 언능 여그서 벗어나자고.”
둘이 걸음을 떼려는 순간, 대숲 너머에서 어린 목소리가 흘러온다.
“죽막동 할매, 무서워 죽것네.”
앙얼과 꺼꾸리는 동시에 대숲으로 몸을 숨긴다. 댓잎이 달빛을 잘게 쪼개 오솔길에 박아 넣는다. 그 길 위로 죽막댁의 탁한 목소리가 내려앉는다.
“여울아, 너 여그 몇 번 왔을 텐디.”
“낮에는 몇 번 왔고, 밤엔 첨여.”
달빛이 여울과 죽막댁의 어깨에 내려앉는다. 손을 꼭 쥔 여울이 겁먹은 눈으로 사방을 훑는다.
“니 이름이 어째서 여울인지 너도 알제?”
“쩌그 수성당 아래 여울굴서 태어나, 내 이름을 여울이라 지었다고 수백 번도 더 들었는디.”
“암만혀도 오늘 밤 안으로 저 수성당서 니 동상이 태어날 텐디, 이름을 머라 지으면 좋겄냐?”
“가시내면 달이 떴응게 달님이라 허믄 어쩔까 잉.”
“머시매믄?”
“난 여울굴서 낳아 여울인께, 수성당 아래서 난 머시맨 수성이라고 허믄 쓰겄고만.”
“수성이? 이수성이?….”
죽막댁은 웃음을 터뜨리려다 삼킨다.
“근디 여울아, 너그 오매가 널 대꼬 여그 절대 오지 말라고 신신당불 혔는디, 어찌끼 둘러댈라 쓸꺼나?”
“아까 말했잖능가. 내가 아그를 어찌 낳는지 보고 잡다고 울고불고 난리쳐서, 헐 수 없이 대꼬 왔다고 허믄 울 오매 암말도 못 헐 것이여.”
“그걸 니가 어찌 장담허는디.”
“할매, 나가 나이는 애러도…줄포서 소문난 애기 점쟁이 아닌가.”
대숲 속에서 앙얼과 꺼꾸리의 시선이 잠깐 마주친다. ‘점쟁이’라는 말이 꺼꾸리 목젖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다.
“청 청 청어 엮자. 위도 군산 청어 엮자.”
여울이 앞소리를 매기자 죽막댁이 뒷소리를 잇는다.
“청 청 청어 풀자. 위도 군산 청어 풀자.”
여울과 죽막댁이 주거니 받거니 이어가는 소리는 길을 따라 수성당 쪽으로 휘어 들어간다. 어둠은 그 소리의 끝자락을 물고 늘어진다. 두 그림자가 앞뜰 너머로 꺼지자, 앙얼과 꺼꾸리는 대숲에서 빠져나온다.
“얼로 갈 건디?”
“나도 몰르겄다. 얼로 가든 어서 여글 뜨자.”
앙얼은 꺼꾸리가 벌린 무복에서 떡과 찐 굴비를 움켜쥔다. 꺼꾸리는 무복 자락을 질끈 묶어 먼저 달리고, 앙얼은 떡을 한입 물고 뒤따른다.
수성당 길머리 오솔길을 벗어나자 개 짖는 소리가 더 커진다. 산비탈을 타고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든다.
“아이고 오매!”
뒤따라 달리며 굴비를 찢어 입에 넣던 앙얼이 돌부리에 발이 걸린다. 그대로 고꾸라져 얼굴을 흙에 처박는다. 몸을 일으키지 못한 채 귀를 땅에 대고 숨을 몰아쉰다.
그 순간, 대숲을 울리는 소리가 땅 밑에서 귀에 닿는다.
“아이고, 아이고 할매 나 죽네!”
찢어지는 몸으로 우는 듯한 소리가 수성당 아래에서 솟구친다. 소리는 굴 안에서 제 몸을 부딪치며 넘노닐다 우렁차게 부풀어 오른다. 그 소리가 달밤의 가라지를 찢는다.
앞서 달리던 꺼꾸리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본다. 소리가 올라오는 수성당 밑을 겨눈다. 무복을 힘껏 끌어안는 그의 손마디에 핏줄이 돋는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다시 터진다. 오솔길을 벗어난 달빛이 수성당 아래 여울굴로 길게 기운다. 여울굴 쪽에서 새로운 숨이 비릿하게 올라온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