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버티는 사람이 결국 길을 만든다”…김미자 서귀포수협 조합장이 걸어온 40년의 바다

  • 등록 2026.03.07 12:4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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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넘어 ‘성과로 증명한’ 40년 수협 인생
전국 수협 첫 3선 여성 조합장…현장형 리더십 주목
서귀포수협 100년사 발간…기록 넘어 미래 설계
“어민이 잘 살아야 수협도 존재”…조합 본질 강조

지이코노미 강매화 기자 | 제주 서귀포 항구의 아침은 늘 바다 냄새로 시작된다. 

 

새벽 물안개가 걷히기도 전에 위판장에는 어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막 잡아 올린 수산물이 경매대에 오른다. 

 

그 풍경 한가운데, 늘 현장을 먼저 찾는 사람이 있다. 김미자 서귀포수산업협동조합 조합장이다.

 

그는 전국 수협 역사상 첫 3선 여성 조합장이라는 기록을 가진 인물이지만, 정작 본인은 그 수식어를 크게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제가 특별해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닙니다. 그저 포기하지 않고 버티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겁니다.”

 

하지만 그의 40년은 ‘버텼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 시간은 편견을 넘어 조직을 바꾸고, 지역 수산업의 방향을 다시 세워온 세월이었기 때문이다.

 

 

■ “그만두라는 말 대신, 오래 버티겠다고 마음먹었다”

 

김 조합장이 수협에 첫 발을 디딘 것은 1983년이었다.

 

지금과 달리 당시 수협 조직은 남성 중심 문화가 강했다. 여성 직원은 조직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 머무는 존재로 여겨지기 일쑤였다.

 

“그때는 이름 대신 ‘김양’이라고 불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호칭 하나만으로도 분위기를 알 수 있었죠.”

 

승진 기회는 제한적이었고, 중요한 업무는 대부분 남성 직원에게 돌아갔다. 심지어 임신 사실이 알려졌을 때는 예상치 못한 말을 듣게 된다.

 

“간부가 조용히 부르더니 회사를 그만두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더군요.”

 

그 순간 그는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오히려 오기가 생겼습니다. ‘누가 더 오래 수협에 남아 있는지 한번 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그 결심은 이후 그의 인생을 바꾸는 출발점이 됐다.

 

■ “결국 남는 것은 결과뿐이다”

 

김 조합장은 그때부터 하나의 원칙을 세웠다.

 

‘성과로 말하자.’ 

 

설명이 통하지 않는 환경이라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출근했고, 누구보다 늦게 퇴근했다. 위판장과 어판장, 어민들의 현장을 직접 돌며 문제를 파악했다.

 

그리고 결국 성과가 쌓이기 시작했다. 서귀포수협 최초 여성 대리, 최초 여성 과장, 최초 여성 상무. 조직 안에서 ‘처음’이라는 기록이 하나씩 늘어났다.

 

특히 2011년 경제상무 시절, 그는 서귀포수협 역사에서 중요한 기록을 만들었다.

 

위판액 1000억 원 돌파.

 

“당시 고등어 대형선단을 유치했는데 선별 인력이 부족했습니다. 해녀분들부터 은행 직원까지 모두가 현장에 나와 일을 도왔습니다.”

 

새벽 5시에 출근하는 생활이 1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때 느꼈습니다. 협동조합이라는 조직은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는 걸요.”

 

■ “현장에 답이 있다”

 

2017년 그녀는 조합장에 당선됐다. 하지만 새로운 역할은 또 다른 시험을 의미했다. 

 

첫 이사회 고사 자리에서조차 “여자가 제관을 맡으면 부정을 탄다”는 말이 나왔다.

 

어촌 사회에 남아 있던 오래된 미신과 편견이 여전히 존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그해 서귀포 앞바다에는 갈치 풍어가 찾아왔고,

서귀포수협 위판액은 다시 1000억 원을 넘어섰다.

 

성과는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이었다.

 

“결국 결과가 말해줍니다. 그 이후로는 그런 말이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 “위기일수록 움직여야 한다”

 

김 조합장의 리더십은 ‘현장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수산물 가격이 폭락했을 때 그는 망설이지 않고 전량 매입을 결정했다. 또 소비를 늘리기 위해 ‘서귀포 은갈치 축제’를 신설했다.

 

지금은 수만 명이 찾는 제주 대표 축제로 자리 잡았다. 어민들은 그에게 새로운 별명을 붙였다.

 

“갈치 조합장.”

 

그는 웃으며 말했다.

 

“어민이 잘 살면 어떤 별명이라도 좋습니다.”

 

■ “100년의 기록, 그리고 미래의 질문”

 

지난해 서귀포수협은 또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창립 100주년을 맞아 『서귀포수협 100년사』를 발간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해녀조합에서 시작된 조직이 오늘날의 수협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역사, 그리고 제주 수산업의 변화를 담은 기록이다.

 

김 조합장은 이 책을 단순한 기념사업으로 보지 않는다.

 

“100년사는 과거를 정리하는 책이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책입니다.”

 

그는 특히 협동조합의 역할을 강조했다.

 

“수협이 잘 된다는 것은 결국 어민이 잘 산다는 의미입니다. 협동조합은 이익을 내는 조직이 아니라 그 이익을 조합원에게 돌려주는 조직입니다.”

 

■ “지금은 수산업의 전환기”

 

하지만 그는 현재 수산업을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진단한다.

 

기후변화로 어장 환경이 급격히 바뀌고,

어획량 감소와 가격 불안정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량이 줄면 가격이 오르고, 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줄어듭니다. 그러면 결국 어민 소득이 줄어드는 구조가 됩니다.”

 

그래서 그는 내수와 수출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온라인 유통망을 확대하고, 해외 바이어와 협력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또 긴급 경영안정자금 지원과 금융 지원을 통해 어민들의 부담을 줄이고 있다.

 

“지금은 속도가 중요합니다. 어민의 생계는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 “수협은 제 인생입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수협은 제 인생입니다.”

 

40년을 돌아보면 기쁨도 있었고, 고비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어민이 웃는 모습을 보면 힘이 납니다.”

 

그의 꿈은 이제 서귀포를 넘어 더 넓은 곳을 향하고 있다.

 

“지역에서 쌓은 경험이 더 많은 어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결국 수협의 존재 이유는 어민이기 때문입니다.”

 

■ 바다에서 배운 리더십

 

서귀포의 바다는 거칠다. 파도는 때로 잔잔하지만, 때로는 거세게 몰아친다.

 

김미자 조합장의 40년 역시 그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는 그 바다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그 바다에서 길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그의 리더십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다만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리더십일 뿐이다.

강매화 기자 maehwa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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