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예술] 가족을 위해 살고, 구순에 그리다… 이재윤 ‘인생의 풍경’

  • 등록 2026.03.26 16:3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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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짊어진 손, 이제는 가족의 시간을 그려
건설현장의 세월, 한지 위에서 다시 숨 쉬어
미안함과 사랑이 겹겹이 쌓여 풍경이 되어
구순의 시간, 가장 깊은 인생이 비로소 열려

지이코노미 박영상 객원기자 | 삶의 대부분을 가족을 위해 살아온 한 남자가, 구순에 이르러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서울 관악구청 2층 ‘갤러리 관악’에서 열리고 있는 이재윤 작가의 첫 개인전 ‘인생의 풍경’은 전시의 형식을 넘어, 한 인간의 생애가 어떻게 예술로 완성되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올해 아흔을 맞은 이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세상에 내놓았다. 한지 위에 수묵과 채색으로 담아낸 30여 점의 풍경은 자연을 그린 그림이 아니라, 한 가장이 걸어온 시간의 결이자 가족을 향한 마음의 흔적이다.

 

◇ 가족을 위해 살아낸 시간, 그리고 늦게 시작된 꿈

 

이재윤 작가는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평생을 건설현장에서 보냈다. 거친 바람과 먼지 속에서 그는 늘 가족을 지켜야 하는 가장이었다. 철근과 콘크리트를 다루던 그의 손은 생계를 위한 손이었다. 풍경을 바라볼 여유도, 그림을 그릴 시간도 그에게는 사치에 가까웠다.

 

그에게 삶은 언제나 선택이 아닌 책임이었다. 그렇게 지나온 수십 년의 시간. 은퇴 이후에야 그는 비로소 붓을 들었다.

 

70세에 시작한 그림. 누군가는 늦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의 시작은 결코 늦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쌓아온 삶의 무게가 그대로 예술의 깊이가 됐다. 그는 여러 미술대전에서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그 시간은 결국 이번 첫 개인전으로 이어졌다.

 

◇ “아버지의 그림에는 세월이 담겨 있습니다”

 

 

전시장에는 작품만큼이나 가족의 시선이 머문다. 아들 이성용 씨는 아버지의 그림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의 그림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 나이만큼 깊어진 세월의 흔적을 그림에서 봅니다.”

 

이재윤 작가의 작품은 산과 들, 나무와 물을 담고 있지만, 그 본질은 자연이 아니라 사람이다. 특히 가족을 향한 감정이 중심에 놓여 있다.

 

 

젊은 시절 그는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 여행을 떠날 여유도, 풍경을 즐길 시간도 부족했다. 그 시간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은 이제 그림이 되어 돌아온다.

 

그래서 그의 풍경은 따뜻하다. 거칠고 차가운 현실이 아니라, 사람을 품어주는 자연이 화면을 채운다. 그 안에는 고향에 대한 기억과 가족을 향한 애틋함이 조용히 스며 있다.

 

 

◇ 노동의 손에서 예술의 손으로, 삶이 만든 선

 

이재윤 작가의 손은 오랫동안 ‘버텨온 손’이었다. 굳은살이 박이고, 세월이 쌓인 손. 그러나 지금 그 손은 한지 위에서 가장 부드러운 선을 그린다. 수묵과 채색으로 표현된 그의 작품은 화려하지 않다. 대신 오래 바라볼수록 깊어진다.

 

그 깊이는 기술이 아닌 시간에서 나온다. 한 시대를 견디며 살아낸 사람이기에 가능한 밀도다. 그의 그림은 결국 ‘삶의 두께’로 완성된다.

 

◇ 구순에도 멈추지 않는 붓, 이어지는 인생

 

 

구순의 나이에도 그는 붓을 놓지 않는다.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동시에, 학생들을 위한 미술 지도 봉사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에게 그림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늦게 시작했기에 더 간절한 삶의 일부다.

 

과거에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았다면, 지금은 그림을 통해 가족과 다시 만나고, 세상과 다시 이어진다. 그의 인생은 끝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이다.

 

◇ 가장 늦은 시작, 그러나 가장 깊은 순간

 

이재윤 작가의 ‘인생의 풍경’은 한 개인의 전시를 넘어선다. 그것은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삶의 증명이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살아온 한 남자가, 구순에 이르러 비로소 자신의 시간을 꺼내 들었다. 그가 그린 것은 풍경이 아니라, 지나온 세월 그 자체다. 늦게 시작했기에 오히려 더 깊고, 더 단단하다.

 

그의 작품은 말없이 전한다. 인생은 끝을 향해 가는 길이 아니라, 다시 시작으로 이어지는 시간이라는 것을. 가장 늦은 순간, 가장 깊은 인생이 비로소 완성된다.

박영상 기자 moon113@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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