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날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서울 자양동 어느 골목, 할 일 없다는 말이 더 이상 변명이 되지 않는 나이에 접어든 네 명이 모였고, 우리는 당구를 치기로 했다.
이미 환갑을 넘긴 선배와 내가 한편, 친구와 한두 해 어린 후배가 한편이었다. 나는 250, 후배는 200, 선배와 친구는 150.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그래서 끝까지 사람을 붙잡아 두는 절묘한 균형이었다.
나는 고등학교와 해병대 시절 ‘문칼’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사과를 공중에 던져 칼로 몇 번 휘두르면 과일안주가 우수수 떨어진다.” 과장된 이야기였지만, 그 별명은 지금까지 남았다.
후배가 사온 이름 모를 중국 술, 백주를 나눠 마셨다. 심장 수술을 한 지 석 달 남짓 된 나는 술잔을 들지 않았다. 대신 그들이 취해가는 속도와 표정을 지켜보며 그 자리를 채웠다. 술은 사람을 대담하게 만들고, 동시에 무모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당구장으로 향했다.
내기는 단순했다. 진 팀이 노래방을 쏘는 것. 하지만 우리가 건 것은 돈이 아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고 싶은 마음, 그것이었다.
경기는 우리의 흐름이었다. 공은 잘 맞았고 점수판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상대의 표정이 굳어갔다. “쩔었네.” “입스 온 거 아냐?” 우리는 웃었고, 과하게 말했고, 이미 이긴 사람처럼 행동했다.
쿠션 두 개를 끝내고 마지막 한 점만 남았다. 상대는 아직 스물세 개. 여유와 초조의 간극이 분명했다. 그 차이가 결국 승부를 갈랐다.
한 번의 빗나감, 두 번의 어긋남. 실수는 이어졌고 흐름은 순식간에 뒤집혔다. 상대는 말없이 점수를 쌓아 올렸다. 그들이 쿠션에 들어섰을 때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순간 이미 승부는 우리 손을 떠나 있었다.
결국 역전패였다. 마지막 공이 떨어지는 순간, 상대는 자리에서 튀어 오르듯 일어났다. 큐를 들어 올리고 당구대를 내리치며 웃었다. 당구장 전체가 울릴 만큼 큰 웃음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기쁨을 넘어선, 오래 눌러왔던 감정이 터져 나오는 과잉의 환희가 번져 있었다.
반면 선배는 움직이지 않았다. 큐를 쥔 손도, 자세도 그대로였다. 시선은 마지막 공이 떨어진 자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한 발짝 다가섰다가 멈추고, 다시 물러서며 허공에 큐를 한 번 휘둘렀다. 머릿속에서 장면을 되감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이거… 끝난 거 맞아?”
확인이 아니라 부정이었다. 질 수 없는 게임을 졌다고 믿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그 경기를 여러 번 다시 꺼냈다. 누구의 실수였는지, 어디서 흐름이 바뀌었는지, 왜 그 공을 그렇게 쳤는지. 특히 선배는 쉽게 털어내지 못했다.
나는 결국 메시지를 보냈다. “졌다는 사실보다, 상대의 표정을 보며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참 못된 마음일 수도 있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느슨해졌고, 결국 역전을 내줬습니다.
그런데 경기 끝난 뒤 그들의 얼굴을 보니,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더군요. 그걸 보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우리가 진 것은 맞지만, 그 시간이 그들에게 그 정도의 기쁨이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예전의 저는 무조건 이기려 했습니다. 지금은 조금 달라진 것 같습니다.”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야 알았다. 그날 우리가 진 것은 점수였고, 우리가 얻은 것은 점수와 다른 무엇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전히 이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이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청춘의 승부는 결과로 끝난다. 중년의 승부는 해석으로 남는다. 그리고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후 우리는 세 번 더 당구장을 찾았다. 결과는 같았다. 세 번 모두 졌다. 처음에는 우연이라 여겼고, 두 번째에는 컨디션 탓을 했으며, 세 번째가 되자 아무도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마지막 게임, 선배는 큐를 들고 있었지만 말은 더 거칠어졌다. 술기운에 실린 짖궂은 입담이 계속 이어졌다.
“야, 초크를 왜 그렇게 놓냐. 거꾸로 뒤집어 놓는 건 처음 본다.”
“그렇게 치면 공이 알아서 피해 간다.”
우리는 그 말이 흐름을 흔들 수 있기를 바랐다. 최소한 한 번쯤은 실수를 끌어낼 수 있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상대는 이미 이기고 치는 사람이었다. 서두르지도, 흔들리지도 않았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 자기 리듬대로 공을 쳤다. 한 점씩, 조용히 쌓아 올렸다.
그리고 마지막 쿠션. 각도는 애매했고 길은 막혀 있었다. 보통이라면 망설일 자리였다. 그런데 그 공이 떨어졌다. 백 번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길이었다.
툭. 작은 소리였지만, 그 순간은 컸다. 상대는 웃었고 우리는 말을 잃었다. 선배의 구찌도, 나의 계산도, 그 한 방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짓밟혔다.
상대는 계속 웃었다. 우리가 실수할 때마다, 마지막 공이 떨어질 때마다 세상을 얻은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면, 그 얼굴은 우리가 한때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달라진 것은 하나였다. 이기지 못한 이유보다, 그 시간을 계속 이어가는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 어쩌면 우리는 당구를 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을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이 승부는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끝내지 않기 위해 계속된다는 것을. 그 치열하고도 어딘가 허술한 중년의 승부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끝나지 않는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