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스포츠는 명확한 계급 질서가 반영돼 있다. 유럽의 노동자 층은 주로 ‘축구’를 즐겼다. 축구가 오늘날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이들이 즐기는 스포츠가 된 것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유럽 노동자 층이 즐긴 축구는 제국주의 시대를 타고 전세계에서 스며들었다. 반면 유럽의 상류층은 축구가 아닌 차별화된 여가를 원했다. 승마를 필두로 폴로, 크리켓 등이다.
인도의 국민 스포츠인 크리켓 정도를 제외하곤 여전히 승마와 폴로는 상류사회의 고급 스포츠로 남아 있다. 테니스와 골프도 마찬가지다. 이 두 스포츠 기원은 상류 스포츠가 아니었지만, 대중화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대의 귀족들이 즐기던 스포츠였던 만큼 테니스와 골프, 승마와 폴로의 복장 규정은 매우 엄격했다.
테니스의 경우 1920년대까지만 해도 소매가 길고 정장에 가까운 셔츠를 입은 채 경기를 치렀다. 그러다이런복장에반기를든한명의혁명가가나타난다. 특유의 끈기와 열정으로 한번 물면 놓지 않았기에 ‘악어’란 별명을 가진 ‘르네 라코스테’란 사나이가 말이다.
EDITOR 방제일 PHOTO 픽사베이
라코스테는 1933년에 프랑스에서 설립된 의류 브랜드다. 우리에게는 악어 로고 ‘피케 셔츠’로 유명한 라코스테는 1920년대에 테니스계를 제패한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 ‘르 네 라코스테’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르네 라코스테는 경기 에서 보여주는 강인함과 끈질김으로 인해 ‘악어’라는 별명이 있었다.
어느날 라코스테의 절친은 그에게 악어 마크가 있는 블레이저를 선물한다. 악어 자수가 박혀있는 블레이 저를 입고 시합에 나간 라코스테는 특유의 로고가 마음에 들었다. 이후 종종 대회에서 착용했다. 이것이 우리 가 아는 ‘라코스테’ 로고의 시작이다. 라코스테는 이후 프랑스 최고의 니트 회사 사장인 ‘앙드레 질리에’와 함만나 지금의 라코스테를 만들었다.
‘피케 셔츠’를 유행시킨 라코스테
르네 라코스테는 테니스 복장이 매우 ‘불편한’ 옷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상류사회가 즐기는 여가라 해도, 기본적으로 테니스는 매우 격렬한 운동이다. 라코스테는 생각했다. 테니스를 조금 더 활동성이 좋은 옷을 입고 즐기면 어떨까. 기존의 편협된 시각에서 벗어나 좀 더 편안한 복장으로 테니스를 치고자 했던 라코스테는 ‘패션’의 국가인 프랑스인답게 디자인 감각이 있었다.
그는 신축성이 좋으면서 통풍성도 뛰어난 피케 원단을 이용해 현재의 칼라티를 만든다. 당연히 테니스 대회에 입고 나간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던 이들도 기본적으로 칼라가 있는 옷이었기에 크게 제지하지 않는다.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패션 피플들이 즐기는 ‘피케 셔츠’의 시작이다. 라코스테의 ‘피케 셔츠’를 입고 나오며 우승하자 사람들은 그의 남 다른 셔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이후 피케셔츠에는 ‘상류층이 즐겨 하는 스포츠 의류’란 이미지를 구축한다. 이 덕분에 귀족 이미지에 편승하고자 하는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는다.
‘피케셔츠’는 왜 ‘폴로셔츠’로 불리게 됐을까?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옷’ 대부분에는 당연히 원조가 있다. ‘피케 셔츠’에도 당연히 원조가 있다. 피케(Pique)는 면직물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작은 구멍을 벌집 모양으로 반복하며 직조해 만드는 피케 원단은 몸에 닿는 부분을 최소화 해 통기성을 높여준다.
덕분에 피케 티셔츠는 여름철 쾌적하게 입을 수 있는 대표적인 상의로 자리한다. 라코스테가 만들고 유행시켰지만, 폴로와 골프를 비롯한 다른 스포츠 유니폼으로도 활용되며 ‘폴로 셔츠’라는 별칭을 갖게 됐다. 이후 아이비리그의 엘리트적 이미지로 널리 사랑을 프레드 페리와 랄프 로렌 등 다른 브랜드들도 앞다투어 피케셔츠를 내놓으며 빠르게 대중화됐다.
여기서 문제의 논쟁이 나온다. 이른바 '폴로 원조 논쟁'이다.
19세기 인도에 진주해 있던 영국군은 인도인들끼리 마상 구기 시합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영국식 폴로 경기를 만들어냈다. 이들의 당시두 꺼운 면으로 만든 긴팔 셔츠가 강렬한 햇살과 더위 때문에 불편하자 옷깃을 고정할 수 있는 단추를 달았다.
소위 옥스퍼드 셔츠에 옷깃을 고정하기 위해 달려있는 단추가 바로 이 당시나온 것이다. 영국인들이본국에 돌아와서 폴로 경기를 할 때도 폴로용 셔츠를 입었다. 이미 경기 유니폼으로 이미지가 굳어진 것이다.
이 운동복을 처음으로 상품화한 것은 영국인이 아니라 미국인 브룩스 브라더스다. 19세기 말에 창업주의 손자 인 존 E. 브룩스가 영국에서 폴로 경기를 구경하다가 칼라에 버튼이 달린 면셔츠의 실용성을 알아챈다. 할아버지에게 이 셔츠의 상품화를 제안한 것이다.
라코스테는 이 폴로용 셔츠를 또 한 번 자신의 아이디어로 진화시킨다. 폴로용 긴팔 셔츠를 테니스 경기용으로 사용하 기위해몇가지자신의아이디어를첨가한다.가장먼저한 일은 소재를 피케로 바꾸는 것이었다. 기계 직조된 면으로 재질을 바꿈으로써 셔츠 보다 시원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경기 중에 셔츠가 바지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셔츠 아랫단의 뒤쪽이 앞쪽보다 긴 ‘테니스 컷’으로 디자인한다. 여기에 긴팔이었던 폴로용 셔츠를 반팔로 만들 었다.단추로고정된옷깃을접었다폈다하며뜨거운태양 아래에서 목 뒷부분을 보호할 수 있도록 조처했다. 라코스 테는 이렇게 자신이 만든 피케셔츠를 입고 테니스 코트를 누빈다.
만약 그의 테니스 실력이 변변치 않았다면 아마피 케셔츠도 그저 그런 아이템으로 묻혔을 것이다. 하지만 라 코스테는 뛰어난 디자인 감각만큼 훌륭한 테니스 선수였다.
그는 1926년 US오픈에서 당당히 우승함으로써 미국과 유럽에 자신의 존재와 더불어 피케 셔츠를 각인시킨다. 그리고 1933년에 라코스테가 자신의 이름을 건 패션 브랜드를 론칭하였을 때 당연히 이 셔츠는 라코스테의 주요 제품군이었다
이만큼 개조를 했으면 당연히 ‘라코스테 셔츠’ 나 ‘피케 셔츠’ 혹은 ‘테니스 셔츠’라고 이름을 붙였어도 됐건만 라코스테는 원래 폴로용 셔츠에서 유래한 옷이므로 폴로셔츠라 이름 붙였다.이는 추후 라코스테가 땅을 치 면서 후회할 만큼 아쉬운 선택이었다.
폴로셔츠로 명명된 라코스테의 발명품은 백화점이나 전문 남성복 매장에서만 판매한다. 당시 성공한 중년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폴로 셔츠는 미국 대통령인 아이젠하워가 즐겨 입으면서 미국의 골퍼들은 모두 라코스테 폴로셔츠를 유니폼처럼 입기 시작한다.
프랑스 브랜드인 라코스테가 본가인 영국을 제치고 폴로 셔츠를 독점하는 것은 ‘신사의 나라’에서는 무척이나 불쾌한 일이었다. 영국 테니스 스타 프레드 페리 역시 1952년에 윔블던에서 자기 브랜드의 폴로 셔츠를 선보이며 ‘프레드 페리’ 브랜드를 만든다.
이 프레드 페리의 폴로셔츠는 가슴에 자수로 새겨진 로고가 특징이었다.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여태까지 특정 계급의 스포츠웨어로만 애용되던 폴로셔츠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패션아이템으로 만든 것이 바로 프레드 페리다.
라코스테의 영광을 빼앗은 ‘폴로’
흥미롭게도 오늘날 우리가 ‘폴로 셔츠’라 말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폴로by랄프로렌은 오히려 가장 늦게 폴로셔츠를 제작했다. 1972년에 미국 뉴욕에서 론칭된 ‘폴로’(오늘 날에는 ‘랄프 로렌’이라고 불리지만 론칭 당시 브랜드 네임 은 ‘폴로’였다)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위해 상류층의 스포츠였던 폴로 경기를 아예 브랜드네임으로 정한다. 이선택은 탁월한 것이었다.
이미 ‘폴로’라는 스포츠가 있고, ‘폴로 셔츠’가 유행했다. 브랜드 네임이 ‘폴로’라면 마케팅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계산이 랄프 로렌에겐 있었다.그리고 몇 십년이 흐른다면 당연히 이런 배경 이야기를 모르는 이들은 ‘폴로 셔츠’를 랄프 로렌이 만든줄 알 것 아닌가? 이래서 뭐든 이름을 잘 지어야 한다. 브랜드든, 사람이든 말이다.
라코스테는 폴로의 대담함에 제동을 걸 준비를 한다. ‘폴로’ 라는 명칭을 두고 폴로와 라코스테는 1980~90년대 내내 길고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결과는 폴로의 승리였다. 이로 인해 ‘폴로’나 ‘폴로 셔츠’는 특정 브랜드의 제품명이 아니라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일반명사가 됐다. 다만 랄프 로렌에게도 타격이 있었다.이소송으로 ‘폴로’는 기존 폴로라는 스포츠와 차별화를 두기 위해 ‘랄프 로렌’으로 브랜드 네임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물론 랄프로렌은 Polo by Ralph Lauren을 사용하는 꼼수를 사용한다. 이는 여전히 유효하다. ‘폴로’라 하며 스포츠 폴로보다 대중들은 당연히 랄프 로렌을 생각하낟.
폴로와 라코스테의 재판 결과는 많은 것을 바꾼다. 지금이야 랄프 로렌이 나름 고급 브랜드화돼 있지만 처음론칭 당시엔 라코스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게 저렴한 대중 브랜드였다. 이 덕분에 미국 청소년들은 폴로 셔츠를 교복처럼 즐겨 입었다 이는 미국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의 유니폼처럼 자리잡는다.
폴로가 폴로셔츠 하나만으로 큰 성공을 이룬다. 그러자 다른 기업들 또한 사원들의 유니폼으로 자사 로고가새겨진 폴로 셔츠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는 오늘날에는 많 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유니폼으로 자리매김하는 토대를 제공했다. 라코스테라는 패션 브랜드의 입장에서는 ‘폴로’ 에게 진 소송이 매우 뼈아픈 것이다. 그러나 라코스테 개인, 패션 디자이너의 업적으로 본다면 그가 만든 ‘피케 셔츠’는 이제 ‘폴로 셔츠’란 이름으로 많은 이들이 착용하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