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슨 디섐보의 ‘운수 좋은 날’

  • 등록 2023.08.28 15: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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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자연환경을 극복하며 재미를 추구하는 골프는 역설적으로 과학기술과 만나 비로소 완성된 스포츠가 됐다. 골프공 딤플의 발견과 발전, 메탈 우드 등장, 그래파이트 샤프트의 발명이 없었다면 골프는 지금처럼 역동적인 스포츠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골프는 그렇게 가장 수많은 장비와 과학기술이 접목돼, 여러 의미로 최고의 ‘기술’이 필요한 스포츠로 도약했다. 그러나 많은 골퍼가 이를 알면서도 암묵적으로 장비의 기술적인 부분과 스포츠 과학에 대해 ‘온전히’ 인정하지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스포츠에서 장비 기술과 과학에 대해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골프 실력이 폄하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수많은 과학 기술과 분석 기술을 통해 스포츠는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많은 실험과 다양한 실패를 거듭한 브라이슨 디섐보는 분명, 골프 역사에 가장 독특한 이력을 가진 ‘혁신가’로서 이름을 남길 것이다.

 

EDITOR 방제일 PHOTO LIV GOLF 공식 페이스북

 

야구에 ‘퍼펙트게임’이 있다면, 골프에는 ‘꿈의 58타’가 있다. 야구에서 퍼펙트게임은 투수가 단 하나의 안타도 맞지 않고 27명의 타자를 아웃 처리하는 것이다. 미 메이저리그 100년이 넘는 역사 동안 퍼펙트게임은 24번이 나왔다. 그만큼 ‘퍼펙트게임’을 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기록보다 더 어려운 기록이 있다. 바로 꿈의 58타다. 최근 이 58타를 친 선수가 나왔다. 그렇다. 필드 위의 과학자 혹은 헐크라 불리는 브라이슨 디샘보다.

 

과대평가와 과소평가
브라이슨 디섐보는 가장 과대평가된 선수이자 과소평가된 골퍼다. 적어도 내게 있어선 그렇다. 처음 디샘보의 이름은 들으면서 참 독특하다 생각했다. 당시에 디섐보는 그저 그런 골퍼로 이런저런 골프 실험을 하다 투어에서 사라질 선수라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디섐보에 대해 '오판’한 것이다. 디섐보는 내가 스포츠로 에디터로 처음 일했던 시기와 맞물려 투어에 데뷔했다. 이름 자체가 워낙 독특해서 잊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제 디섐보는 골프 역사에 그야말로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는 ‘대형 사고’를 쳤다. 바로 ‘꿈의 58타’를 친 것이다.

 

마지막 홀 버디와 함께 날아오른 ‘디섐보’
2016년에 프로 골퍼로 전향한 디섐보는 2016-17시즌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존디어 클래식에서 첫 승을 거둔 뒤 2017-18시즌에는 무려 3승을 수확하며 ‘일약’ 톱랭커로 성장한다. 2018-19시즌과 2019-20시즌에는 각각 1승씩, 그리고 2020-21시즌 2승을 추가했다. 2020년 메이저 대회 US오픈을 포함해 PGA 투어 통산 8승을 거둔다. 그러나 손목 부상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며, 우승 없이 2021-22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리브 골프 출범과 더불어 리그에 합류한 디섐보는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한 해를 보낸다. 그야말로 지난해는 디샘보의 골프 커리어에 ‘흑역사’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PGA 투어도 아닌 리브 골프에서 잊힐 줄 알았던 디섐보가 골프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바로 ‘꿈의 58타’를 작성한 것이다. 모든 기록이 그렇듯, 디섐보의 기록도 한 편의 드라마였다.

 

디샘보가 점점 58타에 가까워지자 갤러리도, 캐디도, 디섐보와 함께 라운드하는 골퍼들도 말이 없어졌다. 대기록을 앞두고 부정이 탈까 봐서였다. 디섐보 또한 기록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덤덤해 보였다. 물론 그 속마음이야 전혀 달랐을 것이다. 이윽고 마지막 18번 홀, 파 3홀에서 디샘보의 첫 번째 샷이 홀에서 크게 빗나갔다. 대기록을 위해선 버디가 필요했다.

 

그러나 퍼트 거리는 12m였다. 디섐보도 마음을 비운 표정이었다. 이윽고 두 번째 샷을 시도한 디섐보의 공을 거짓말처럼 홀에 빨려 들어갔다. 마치 타이거 우즈의 ‘더 샷’처럼 말이다. 꿈의 58타를 작성한 순간 브라이슨 디섐보가 만세를 부르며 펄쩍 뛰어올랐다. ‘헐크’라 불리던 시절이었다면 절대 그렇게 높이 뛰어오를 순 없었을 것이다.

 

분명히. 하지만 디섐보는 지난해 건강상의 이유로 감량을 했고, 이제는 평범한(?) 체형으로 돌아왔다. 만약 디섐보가 과거 ‘헐크’와 같은 모습이었다면 이런 대기록을 달성했을까? 골프도, 인생도 역시 이래서 재미있는 것이다. 인생 최악의 위기가 때론 최고의 결과로 이어지고, 예기치 못한 행운이 때론 최악의 결말을 맞기도 하니까 말이다.

방제일 기자 zeilis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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