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김정훈 기자 | 전남교육청이 내놓은 2026년도 본예산안을 두고, 전교조 전남지부와 전남교육청이 며칠째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누가 맞냐”는 논쟁처럼 보이지만, 안쪽을 들여다보면 그보다 더 깊은 이야기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예산이라는 건 결국 숫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분’과 ‘방향’이 함께 담기는 법이니까.
전교조 전남지부는 지난 4일 성명서를 냈다. 말투가 거칠진 않았지만, 어조는 단단했다.
“무능과 탕진의 결과다.” 짧지만 무겁게 내려앉는 한 문장이다.
전교조는 ▲교육교부금 1130억 삭감 ▲전체예산 –9.1%(전국 최대) ▲안정화기금 1조 3000억 소진 ▲학교·지원청 집중 감액 등을 지적하며 “이건 감액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실패”라고 평가했다.
특히 “학교가 먼저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는 더욱 깊게 와 닿는다. 학교는 화려한 보도자료보다 더 솔직한 공간이다. 운영비가 조금만 줄어도 바로 표정이 바뀌고, 예산이 흔들리면 수업부터 여파가 온다. 전교조는 그 불안을 정확히 말한 셈이다.
교육청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전남교육청의 대응은 빠르고 조목조목했다. “일부 사실과 다르다.” 그리고 항목별로 하나씩 반박을 냈다.
보통교부금 감액은 전남교육청이 좌지우지할 수 없는 구조고, 특별교부금은 시기 문제일 뿐 내년 초 들어올 예산이라는 설명. 학교예산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건 편성 방식 때문이며, 본청 예산 증가처럼 보이는 항목은 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착시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교육청의 설명에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 예산이란 게 원래 보기 따라 다른 모양을 갖는다.
사람의 얼굴이 각도에 따라 다르게 찍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양쪽의 말이 이렇게 다른데, 사실은 어디 있을까? 흥미로운 건, 두 입장이 완전히 다른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보고 싶은 방향’이 다를 뿐, 서로 전혀 다른 세계를 말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전교조는 “왜 여기까지 오게 됐는가”에 집중한다. 전남교육청은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를 설명한다.
한쪽은 과정과 책임을 묻고, 다른 한쪽은 구조와 한계를 말한다. 둘 다 틀렸다고 말하긴 어렵고, 둘 다 완전히 맞다고 하기에도 어딘가 비어 있다. 그 틈이 바로 지금 전남교육 현장의 불안이다.
안정화기금 1조 3000억…사라진 것은 돈만이 아니었다. 이번 논쟁에서 가장 오래 남을 질문은 이거다. “왜 안정화기금이 3년 만에 비었나?”
교육청은 교부금 감액 대응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교조는 평상시 지출 확대를 문제 삼는다.
둘의 진단은 다르지만, 결론은 하나다.
정작 위기 앞에서는 지킬 방패가 없었다는 것. 기금은 원래 ‘혹시 모를 날’을 위한 것이다. 그 ‘혹시’가 2026년에 찾아왔는데, 막아줄 방패가 약해진 게 문제의 핵심이다.
방패가 왜 얇아졌는지는, 이제라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 학교·지원청 –28.2%, 이 숫자에는 ‘체감’이 들어 있다. 교육지원청 감액 –28.2%. 그냥 숫자로보면 “줄었네” 정도지만 현장에서 보면 전혀 다른 의미다.
지원청은 학교 뒤에서 보이지 않게 받쳐주는 곳이다. 도움이 필요한 학생, 급식, 생활지도, 안전, 행정지원…이 모든 게 지원청의 몫인데 예산이 이 정도로 줄면 결국 학교도 영향을 받는다.
전남교육청은 편성 방식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학교 현장 입장에서는 “줄었다”는 체감이 먼저 온다. 이 간극을 메우지 않으면 불신은 계속된다.
전교조와 전남교육청의 주장은 둘 다 나름의 논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번 논쟁의 본질은누가 숫자를 더 잘 해석했는가가 아니라 예산의 방향성과 신뢰의 균열에 있다.
예산은 결국 ‘선택’의 기록이다. 감액이 불가피했다면, 어디를 먼저 지켰는지 보면 교육청의 철학이 보인다.
지금 전남교육 예산 논란은 철학의 균열, 기준의 흔들림, 그리고 설명의 부족이 겹쳐진 결과다.
이럴 때 필요한 건 화려한 발표나 강한 반박보다 정직한 설명이다. “어디가 잘못됐고, 어디를 고칠 건지”를 솔직하게 꺼내놓는 일이다. 그게 없으면 숫자는 설명해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사실관계 이상의 ‘진심 어린 해명’ 예산은 기계가 짜는 표가 아니다.
사람이 만들고, 현장이 체감한다. 전남교육이 지금 필요한 건 맞서기보다 설명하는 태도, 반박보다 기록을 여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학교와 교사들이 느끼는 불안을 정확히 듣는 태도다.
감액의 원인이 무엇이었든, 결국 그 여파를 겪는 건 교실이다. 이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지금의 논쟁도 언젠가 방향을 찾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