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건설 갑질 추적] 현대건설, 카타르 하도급대금 14년째 미정산 논란…‘영국법 강제’는 대금 착취 구조인가

  • 등록 2026.01.19 08: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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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타절 후 하자보수 완료, 정산은 공백
현지 파트너 80% 요구에 대금 지급 중단
영국법·중재 강제…권리구제 사실상 봉쇄
하청 본사 부도·임직원 가족 생계 붕괴

지이코노미 문채형 기자 |  지이코노미는 지난 16일자 「카타르 공사 하도급대금 14년째 미정산 논란…현대건설 입장은」 단독 보도를 통해, 현대건설이 카타르 비료공장 건설공사 과정에서 하도급대금을 장기간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추가 취재 결과, 해당 하도급대금이 올해 1월 현재까지 14년 동안 정산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번 사안은 단순한 계약 분쟁을 넘어 대기업의 갑질과 대금 착취, 기업 모럴해저드 문제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번 사안은 하도급사가 공사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거나 계약을 위반해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원청의 책임을 보다 무겁게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합의타절 이후에도 하자보수 완료…‘이행된 부분’ 대금은 지급돼야

 

문제의 공사는 카타르 비료회사가 발주한 비료공장 건설공사로, 현대건설은 2009년 3월 18일 이 가운데 기계설비공사를 일양이엔씨카타르 유한회사에 하도급했다. 일양이엔씨카타르 유한회사는 국내 기업 일양이엔씨가 공사 수행을 위해 설립한 현지 법인으로, 형식상 해외 법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내 기업이 해외 공사를 수행한 구조다.

 

지이코노미 취재 결과 해당 공사는 합의타절 방식으로 종결됐으며, 합의타절 이후 이미 수행된 공사 범위에 대해서는 하자보수까지 모두 완료된 것으로 확인됐다. 합의타절은 향후 공사를 중단하기로 합의하는 것일 뿐, 이미 이행된 공사까지 무효로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에 상응하는 대금은 정산돼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 해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여 하도급대금 미화 1,429,096달러(약 20억 원)는 올해 1월 현재까지 지급되지 않았다. 합의타절에 이르게 된 배경 역시, 현지 스폰서의 비협조와 과도한 요구가 주요 원인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 대금 못 받은 이유는 ‘공사 문제’가 아니라 ‘현지 파트너 요구’

 

이번 사안의 본질은 하도급대금 미지급 사유가 공사 수행 문제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금 정산이 멈춘 배경에는 현지 파트너가 하도급대금의 약 80%를 요구한 상황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도급사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요구였지만, 이 과정에서 원청인 현대건설이 현지 파트너의 요구를 제어하기는커녕 사실상 그 손을 들어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그 결과 공사를 이행한 하도급사는 대금을 받지 못한 채 장기간 버티기에 내몰렸다는 주장이다.

 

■ 전속적 중재조항, 법원 판단 자체를 봉쇄하는 구조

 

논란을 키운 핵심은 하도급계약서에 포함된 전속적 중재합의 조항이다. 이 조항이 존재할 경우,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국내 법원에서 본안 판단을 받을 수 없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소 각하 판결이 선고된다.

 

전속적 중재합의 자체는 당사자들이 대등한 지위에서 자유로운 의사로 합의한 경우라면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의 하도급 거래에서는 대기업이 계약서에 중재조항을 일방적으로 포함시키더라도, 수급사업자는 이에 반대하거나 이를 이유로 계약 체결을 포기하기 어려운 구조다.

 

더 나아가, 상당수 수급사업자들은 하도급계약 체결 단계에서 계약서 전체를 법률적으로 검토할 인력·비용 여력이 없어, 중재조항의 존재나 그 의미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점에서 전속적 중재조항은 형식적 합의와 달리 실질적 불공정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영국법·영국 중재 강제…권리구제는 사실상 불가능

 

문제의 계약서는 분쟁 발생 시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하고, 영국 런던에서 국제상공회의소(ICC) 중재규칙에 따라 영어로 중재를 진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 중재·소송 비용만으로도 수억 원에 달해 하도급대금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질적으로 국내 기업 간 거래에 가까운 하도급 계약임에도, 굳이 해외 법을 준거법으로 삼고 해외를 중재지로 정한 것은 수급사업자의 권리 행사를 원천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구조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만약 대한민국 법을 준거법으로 하거나, 국내 중재기관을 중재지로 삼았다면, 영세한 수급사업자도 국내 법과 제도를 통해 분쟁 해결에 나설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대기업 입장에서는 국내법이 적용될 경우 수급사업자가 법적 절차로 나아가기 쉬워진다는 점에서,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해외 중재조항을 포함시키려는 유인이 크다는 해석도 나온다.

 

■ 하도급법·공정거래법 적용을 우회하는 수단인가

 

전문가들은 이 같은 해외 중재를 중재지로 하는 전속적 중재합의가 하도급법과 공정거래법의 적용을 우회하거나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향후 하도급법이 개정돼 해외 건설 현장에서의 실질적 국내기업 간 하도급 거래까지 보호 대상으로 포함하더라도, 해외 중재조항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국내법에 따른 분쟁 해결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사안은 단순히 과거의 한 계약 문제가 아니라, 해외건설 현장에서 반복될 수 있는 구조적 불공정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 하청업체 부도·가족 생계 붕괴…기업 모럴해저드 비판

 

하도급대금이 14년간 지급되지 않는 동안, 피해는 고스란히 하도급사에 집중됐다. 지이코노미 취재를 종합하면 하청업체의 한국 본사는 결국 자금난으로 부도에 이르렀고, 임직원들은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었다. 이로 인해 직원과 그 가족들 역시 생계 기반이 무너지는 피해를 입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대기업의 대금 미지급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한 기업과 그 구성원들의 삶을 파괴하는 문제”라며 “이는 명백한 갑질이자 기업 모럴해저드”라고 비판한다.

 

■ 정책 환경과 인적 네트워크, 왜 문제는 방치됐나

 

해당 공사가 완료된 2011년은 현대건설 사장을 지낸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기로, 해외건설 수주 확대가 국정 기조로 강조되던 때였다. 당시 현대건설을 이끌던 김중겸 전 사장은 이 전 대통령과 현대건설 및 고려대 선후배 관계에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업계 일각에서는, 당시의 정책 환경과 인적 네트워크가 맞물리며 해외 현장에서 발생한 하도급대금 미정산과 불공정 문제가 구조적으로 문제화되지 못하고 장기간 방치된 것은 아니었는지에 대해 점검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법무법인 아인 한새봄 변호사는 이번 사안에 대해 “이미 이행된 공사에 대해서는 대금이 지급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 중재지에서의 전속적 중재합의를 이유로 대금 지급이 10년 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는 단순한 계약상 분쟁을 넘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 행위로 평가될 소지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중소 수급사업자가 사실상 권리 구제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합법적 계약의 외피로 포장된 갑질이자 제도적 보완이 시급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 다음 보도 예고

 

이번 사안은 하도급대금 미지급, 현지 파트너의 과도한 요구, 해외 중재 강제라는 요소가 결합되며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 남용과 기업 모럴해저드가 어떻게 구조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지이코노미는 다음 3차 보도를 통해, 이 같은 구조적 불공정에 대해 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무엇을 했는지, 나아가 자국 기업 보호를 국정 기조로 내세운 이재명 대통령의 책임과 역할은 무엇인지를 집중적으로 짚을 예정이다.

문채형 기자 newsroom@g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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