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칼의 내면의 밀도] 거칠었지만 정의였고, 무례했지만 정확했던 사람

  • 등록 2026.04.16 10:3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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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문칼’이라 불렸다. 해병대에 가서도 이름 대신 ‘문칼해병’으로 통했다. 성질이 칼같다는 이유, 일을 군더더기 없이 처리한다는 평가가 늘 그 별명을 설명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해석이 늘 어딘가 낯설었다.

내가 기억하는 ‘문칼’의 시작은 전혀 다른 장면에 있다. 하늘 높이 던진 사과를 향해 칼을 몇 번 휘두르면 과일 안주가 우수수 떨어진다는, 그 허황되고 엉뚱한 상상. 그 한 장면이 별명이 되었고, 그 별명이 결국 나를 규정해 버렸다.

돌아보면 인생도 그와 닮아 있었다. 칼같이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끝내 남은 것은 잘려나간 조각들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문칼’이라는 이름은 날카로움의 증명이 아니라, 그 어설픔까지 고스란히 품고 있는 나의 삶 전체를 기록한 또 하나의 이름이었다는 것을.

 

한여름의 서울 지하철은 사람의 온도를 드러내는 공간이다. 숨이 막힐 듯한 열기와 하루를 다 써버린 얼굴들이 한 칸 안에 겹쳐지는 시간, 그곳에서는 각자의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십여 년 전, 퇴근 시간 전철 안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누군가는 고개를 떨군 채 졸고 있었고, 누군가는 막 보급되기 시작한 스마트폰 화면 속으로 시선을 묻고 있었다. 카카오톡이 퍼지기 시작하던 시기, 대화는 줄고 화면은 깊어졌다. 서로를 보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도시의 풍경이었다.

 

그 틈에서 작은 장면 하나가 시작됐다. 서른 즈음으로 보이는 한 젊은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맞은편에 서 있던 노인에게 자리를 권한 것이다.

 

“어르신, 여기 앉으세요.” 그러나 노인은 손사래를 쳤다. “아따, 됐소. 나 멀쩡하요.”

 

짧고 단호한 말이었다. 젊은 남자는 머쓱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장면은 그저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익숙한 풍경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음 역에서 또 다른 노인이 올라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젊은 남자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번에는 그 노인이 망설임 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처음 서 있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아따, 멀쩡한 양반이 이런 데 와갖고 젊은 것들 힘든 건 생각도 안 하고 자리 차지해부렀네잉.”

 

전철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리요?” “그라믄 누굴 보고 하는 소리겄어. 알믄 얼른 일어나쇼.”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단순한 시비가 아니었다.

 

“요즘 젊은 것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아쇼? 처자식 맥여 살릴라고 새벽밥 묵고 나와서 하루 종일 개고생 허다가, 퇴근길에라도 쉬면서 가얄것 아녀…”

 

그 말은 특정 개인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이 도시 전체를 향한 발언에 가까웠다.

 

자리에 앉아 있던 노인은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러자 더 큰 목소리가 이어졌다. “다리가 아프믄 집구석에서 쉬어야재, 왜 나와갖고 젊은 것들 자리 뺏어불고 그라까!”

 

전철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누구도 끼어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그 상황을 외면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는 듯, 모두가 익숙하게 침묵을 택했다.

 

몇 정거장을 지나며 노인이 내리면서 상황은 정리됐다. 그러나 그 장면이 남긴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묘한 통쾌함과 불편함이 동시에 남았다. 정의라고 단정하기에는 거칠었고, 무례라고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정확했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래 이해하지 못했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까지 말했을까. 굳이 전철이라는 공간에서, 서로 눈치를 보며 균형을 유지하는 그 질서를 깨야 했을까. 납득은 됐지만, 그 자리에서의 태도와 방식까지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도시는 우리에게 ‘모른 척하는 것’을 예의로, ‘침묵하는 것’을 성숙으로 가르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렇게 산다. 보지 못한 척, 듣지 못한 척, 아무 일도 아닌 듯 지나간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 편을 드는 대신 기준을 세운다. 누가 더 힘든지, 무엇이 더 기울어져 있는지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라 행동한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됐다. 그날 전철 안에서 내가 본 것은 한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한 사람의 기준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기준이 왜 나를 불편하게 했는지도 이해하게 됐다. 나는 그 자리에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에도 비슷한 장면은 반복된다. 누군가는 양보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대부분은 침묵한다. 그리고 가끔, 그 침묵을 깨는 사람이 등장한다.

 

이제는 안다. 그날 느꼈던 통쾌함은 싸움 때문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대신 말해줬다는 안도감이었다. 동시에 남았던 씁쓸함은, 내가 그 자리에 서지 못했다는 자각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이제서야 이해한다. 그리고 뒤늦게 깨닫는다. 그날 전철 안에서 끝까지 서서 말하던 그 사람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 삶 속에서 같은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아버지였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그 목소리가 더 자주 떠오른다. 거칠고 투박했던 그 남도 사투리까지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라믄 안 되는 거여.” 단 한 번만이라도 다시 듣고 싶은 말이다. 누군가의 침묵을 깨던, 그 단호한 목소리.

 

문득 생각한다. 지금 이 사회는 너무 조용해진 것은 아닌지. 불편한 말은 사라지고, 옳고 그름보다 눈치가 앞서며, 기준보다 이해관계가 먼저 작동하는 흐름 속에서,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날 전철 안처럼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각자의 화면 속으로 들어간다. 말해야 할 순간에도 대부분은 침묵을 선택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더 많은 목소리가 아니라, 단 한 사람의 기준인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그 장면을 떠올린다. 모두가 침묵했던 그 전철 안에서, 끝까지 서서 말하던 한 사람을.

 

아버지는 예순이 다 된 지금도 여전히 그리운 사람이다. 참 많이 보고 싶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문채형 기자 moon113@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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