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의 많은 국민이 그리들 살아왔겠지만 나 역시 그렇게 살았다고 본다. 내 손으로 표를 찍어 준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도지사나 시장·군수가 된다면 세상이 눈곱만큼이라도 바뀔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그런데 실상은 아니었다. 그런 기대는 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도지사, 시장, 군수, 구청장, 국회의원 등은 그들대로, 표를 찍어 준 지지자의 바람과 믿음을 저버렸다.
나라님이라 할 수 있는 역대 대통령들의 행적을 한 번 돌아보자. 나 태어나 이 강산에서 살아온 이날 입때까지 내가 지지했던 대통령 가운데 하늘을 우러러보듯 떠받들고 존경할 만한 인물이 과연 있었던가.
나도 표를 보태 준 광역단체나 기초단체의 장, 지방의원이나 국회의원 중에도 내 기대에 부응했던 위인은 단 한 명도 없다. 표를 구걸할 때와 완장을 찾을 때, 그들의 태도는 180도 달랐다.
연말이면 우리는 목격하곤 한다. 멀쩡하던 보도블록을 교체하는 현장을. 그 공사 현장을 지켜보노라면 땅을 파는 업체 따로, 땅을 덮는 업체 따로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전국 각지의 모든 관급 공사 현장엔 정치인의 입김이 흐른다고 단언해도 틀린 말은 아니니라.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이성이 사라진 지 오래다. 아니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정치판엔 아예 이성이 없었다. 대통령에서부터 저 말단의 지자체 의원들까지 완장을 찬 다음에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고, 정치인의 책무를 바르게 실천한 위인이 몇 명이나 될까.
이 나라 정치인들이 망가뜨린 건 정치판만이 아니다. 삼천리금수강산의 푸른 산과 푸른 강도 회복 불가능하게 망가뜨렸다. 갯벌을 포함한 청청한 바다를 망가뜨린 주범도 정치인이었다.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이라는 새만금 간척사업도 정치인들이 첫 삽을 뜨게 했다.
유엔환경계획(UNEP). 지구환경문제를 다루기 위해 UN이 산하에 창설한 환경문제 전담 국제기구다. 유엔환경계획은 2021년 12월, ‘기후 위기와 싸우는 것을 도울 수 있는 10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기후 위기 이야기 퍼뜨리기’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일이 절박하기에 이 방법을 첫 번째로 꼽았단다.
두 번째 방법은 ‘정치에 대한 압박 계속하기’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누구보다도 앞장설 사람은 다름이 아닌 정치인과 기업인이다. 기업인도 그렇지만 정치인도 입으로는 위대한 환경운동가다. 그런데 실제 행동을 분석하자면 태반의 정치인이 환경파괴자다.
나는 고향이 부안이라서 새만금 간척사업의 속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갯벌을 없애고, 강물을 막고, 육지의 돌과 흙을 퍼다가 메꾸는 대규모 간척사업을 누가 시작했는가. 전북의 농민인가, 아니면 전북의 어민인가. 그 언제 공사가 끝날지 모르는 이 반환경적인 토목사업의 발판을 깐 사람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1987년 대선에 나선 노태우 후보가 호남의 표를 얻기 위해서 내세운 공약이었다.
기후 위기의 주범은 분명 정치인과 기업인이다. 2025년 을사년(乙巳年)은 정치인과 기업인을 압박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말로만 ‘환경’을 외치지 말고 ‘기후 위기 해결에 앞장을 서’라고 말이다.
서주원
G.ECONOMY ESG전문기자
前 KBS 방송작가
소설가
ESG생활연구소 상임고문
월간 ‘할랄코리아’ 발행인
독도문화연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