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두영 회장
양두영(63) 회장. 그는 참 젊게 보인다. 62년생 범띠라니 의외다. 누가 봐도 대여섯 살은 더 적게 볼 터다. 그는 또 보기와 달리 아주 신중하고 차분했다. 인터뷰를 하는 두어 시간 내내 한번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는 골프와 자신의 사업에 대해 조용하게 얘기를 해 나갔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인생사도 곁들였다. 누구나 그렇지만 예순 넘게 살다 보면 마음에 깊은 상처 하나 쯤은 다 갖고 살아간다. 그게 인생사다. 마냥 깨끗한 도화지처럼 순백일 수는 없다. 산전수전(山戰水戰), 삶의 굴곡을 겪게 된다.
양 회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도 그런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서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의지가 강했지만 주변의 도움도 컸다. 그래서 그는 더 열심히 살고자 한다. 그게 그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는 사업이든 골프든 한번 마음 먹은 일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끝을 보는 성격이다.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때까지 파고 든다. 주변의 의견도 포용한다. 그래야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대한민국디자인대상을 받은 산업디자인 장인이기도 하다.
김대진 편집국장
그는 골프 예절을 중시하고, 상대를 배려해야 진정한 골퍼라고 생각한다. 그는 상대의 실력에 따라 스코어를 조절할 수 있는 고수다. 골프든 사업이든 한껏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정타(正打)를 칠 수 있다
양 회장은 골프에 진심이다. 골프를 너무 좋아한다. 지난해엔 130회 넘게 필드에 나갔다. 사흘에 한번 꼴이 넘는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나갔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필드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스크린 골프도 즐긴다. 추울 땐 스크린 골프가 제격이다. 주변에 골프를 하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많다보니 필드건 스크린이건 골프를 칠 기회가 그만큼 많다. 더욱이 스크린은 전화 한 통화로 약속을 잡으면 된다.
그는 골프 예절을 중시한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골프 예절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골프를 배우기 전에 그 점을 숙지하고 시작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는 또 골프가 ‘인생의 축소판’이란 얘기에 공감한다. 그는 상대를 배려하는 게 진정한 골프라고 생각한다. 아마추어 골프에서 상대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그의 자세다.
골프를 잘 치기 위해선 개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전제돼야 한다. 그래야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그는 “골프는 건강하고, 시간과 돈(비용)이 있어야 한다. 또 동반자도 있어야 하고 날씨가 도와줘야 한다. 이 모든 걸 갖추고 라운드를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상대의 실력에 따라 스코어를 조절할 수 있을 만큼 고수(高手)다. 그건 보통 실력이 아니다. 골프를 잘 치고 못 치는 것은 체격 등 개인적인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공을 칠 때는 한껏 집중해서 쳐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골프에서 정타(正打)를 때릴 수 있을만큼 사업도 집중해서 몰두해야 한다. 골프에서 내가 원하는 방향과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공이 갔을 때 각각 대응하는 방법이 다르듯 사업도 그렇다.
골프에서 티샷과 세컨드샷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어프로치샷과 퍼트가 끝날 때까지 집중해야 한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집중하란 얘기다. 이는 사업에서도 유사하다. 그의 주장이다.
안전 사고 예방을 위해서라도 라운드 중에 과하게 음주를 하는 일은 반드시 삼가야 한다. 자신에게 골프를 가르쳐주고 함께 해준 친구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그렇게 골프를 잘 칠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골프를 하다 보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형편이 좋지 못하면 함께 라운드를 하기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래도 동반 라운드를 한다는 것은 비즈니스적으로 공유하고자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이를 잘 이해하고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라운드 중에 술을 과하게 마시는 분들이 있다. 이런 무질서는 사라져야 한다. 몇 십만 원을 들여 5시간 안팎 운동을 하면서 상대방을 배려하고자 한다면 그런 행동은 좀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는 그만큼 FM이다. 골프에 진심인 골퍼라면 누구나 공감이 가는 얘기다. 라운드 중에 술을 과하게 먹고 운동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간혹 그런 골퍼들도 있는 게 사실이다. 골프는 때로 안전사고가 발생한다. 자신이 피해를 보기도 하지만 다른 골퍼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안전 사고 예방을 위해서라도 라운드 중에 과하게 음주를 하는 일은 반드시 삼가야 한다.
그는 프로에게 골프를 배운 적이 없다.
“인도어 골프연습장에서 친구들한테 몇 번 배우고 골프채를 사라고 해서...머리를 올리러 갔지요. 그때 100만 원 넘게 잃었어요.”
그게 그에겐 오히려 분발할 계기가 됐다. 그 후 2년간 친구들 밥값을 대주고 캐디피를 내주며 빡세게 배웠다. “친구들이 ‘우리끼리는 핸디캡 없이 치자’고 해서 더욱 노력했다.”
그렇게 2년 정도 치고나니 친구들과 상대할 정도가 됐다. 그 이후엔 그 친구들을 이기기도 한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라운드를 함께 했다.
“1년에 한번 치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친구도 있다. 캐디피를 내주고 밥값도 내주면서 치기도 한다. 그때 그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내가 이렇게 골프를 잘 칠 수 있었을까 싶다.”
그는 무엇이든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스타일이다. 골프를 잘 하기 위해서도 나름 생각하고 연구한다. 그래서 퍼트도 3D 개념을 생각하고 한다. 이론적으로 맞아야 성공 확률이 높다. 그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무엇이든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스타일이다. 골프도 그렇다. 퍼트를 할 때도 어떻게 해야 공이 쉽게 홀인할 수 있는 지를 나름 생각하고 연구한다.
그 결과 그는 많은 골퍼들이 흔히 그러듯이 퍼트를 할 때 그린의 경사를 감안해 공을 타깃에 맞게 정렬하지 않는다고 한다.
“퍼트를 할 때 3D 개념으로 생각하고 스트로크를 한다. 공을 브레이크를 보고 가상의 타깃을 정해 정렬하지 않는다. 양 팔꿈치를 겨드랑이 아래 밀착시키고 두 팔을 직각으로 들어올려 퍼터의 위아래를 두 손으로 잡고 퍼트 방향을 체크해 그대로 스탠스를 잡고 똑바로 퍼트를 한다. 그렇게 하면 쓰리 퍼트가 나올 수 없다.”
그의 이론이자 주장이다. “이 개념은 이론적으로 정확하고, 실제로도 맞다.”
골프에선 거리와 방향이 중요하다. 거리와 방향을 잡으면 골프는 끝이 난다. 그게 어렵다. 대개는 거리에 신경 쓰다 방향이 엉망이 되거나, 아니면 방향에 몰두하다 보면 거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 그게 아마추어 골퍼다.
그런데 그는 둘 다 잡았다.
그는 전성기 때 2언더를 쳤다. 그게 그의 핸디캡이다. “오직 내가 잘 쳐야지 생각할 때는 그 정도였지요.”
그러나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귀띔한다. 그래도 상대의 실력에 따라 타수를 조절할 만큼은 친다. 여전히 고수라는 얘기다.
드라이버 샷 비거리가 220~240m다. 60대 아마추어 골퍼치곤 대단한 비거리다. 아쉽게도 지금껏 홀인원은 해보지 못했다. 이글은 여러 번 했다.
해외에도 골프를 하러 자주 간다. 작년엔 한달 간 다녀왔다.
“해외에 갈 땐 하루 36홀 라운드가 가능한 사람들과 동행하지요. 그래야 골프를 마음껏 실컷 칠 수 있으니까요.”
그의 얘기다. 그는 천생 골프 마니아다.
그는 골프동호회 등 여러 모임에서 회장을 열다섯 차례 안팎 했다.
그는 역사적 인물이 많은 충남 홍성 출신이다. 그는 훌륭한 인물들에 대해 배우고 알게 되면서 자기도 그런 훌륭한 사람이 돼야겠다는 꿈을 가졌다. 그 결과, 그는 수많은 제품을 개발하고 상(賞)도 많이 받았다.
양 회장은 충남 홍성이 고향이다. 홍성은 역사적 인물이 많이 난 고장이다. 고려말 태고 보우국사, 사육신의 한 사람인 매죽헌 성삼문이 홍성 출신이다. 일제 강점기 청산리 대첩으로 유명한 백야 김좌진 장군, 1919년 3·1 운동 때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민족 대표 33인 중 불교계 대표였던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도 홍성이 고향이다.
양 회장은 “어릴 때부터 이런 분들은 물론 이웃 예산 출신인 윤봉길 의사, 금산군 칠백의총에 모셔진 의병장 조헌 선생 등 역사적으로 훌륭한 인물들에 대해 배우고 알게 되면서 저도 그런 훌륭한 사람이 돼야겠다는 꿈을 가졌다.”고 말했다.
이런 꿈이 통해서일까 그는 지난 30년간 전기·전자·화학·자동차·생활용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품 개발과 디자인을 해오면서 기업의 대표로서 주도적으로 기업을 경영해왔다. 그는 수많은 제품을 개발하고 상(賞)도 많이 받았다.
말랑말랑한 버섯 모양의 소니 커널형 이어폰을 디자인·설계하고 개발한 것도 그였다. 세계적인 모터사이클 헬멧 제조업체인 한국의 홍진크라운(HJC)의 헬멧을 3D 캐디캠으로 개발하기도 했다.
카지노 머신 조그셔틀 개발에도 성공했다. LCD가 내장된 조그셔틀로 기존에 여러 키가 맡았던 기능을 조그셔틀 하나로 대체할 수 있는 획기적 발명품이었다. 이는 미국 IGT사의 스마트 카지노 머신 개발 프로젝트로 약 300개사와 1년간 개발 경합해 1위에 선정된 쾌거였다.
이밖에도 그는 국방부 미사일 조립지그를 설계하고, 해양연구소 무진동 나침반을 개발했다. mp3와 의료기기, 홈쇼핑 제품도 다수 개발했다. 생활용품 개발은 수백 건이 넘는다.
그는 이런 공로로 글로벌명품상 4건, 굿디자인상 15건, 대한민국 디자인대상 등을 수상했다.
조강지처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본인도 간경화 2기 판정을 받는 등 불행이 겹쳤다. 그러나 주변에서 도움의 손길이 다가왔고, 그는 다시 굳건하게 일어섰다. 그리고 사업에서 성공했다. 은혜도 갚았다.
그러나 양 회장의 인생도 고비를 맞았다. 2010년 조강지처였던 아내가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유방암이 전이된 것이었다. 청천벽력이었다. 항암 치료와 투병으로 아내는 힘들어했다. 당시 개발했던 조그셔틀을 공급할 수가 없어 양 회장의 회사에 투자해준 회사에 넘겼다. 물론 개발비는 받았다.
결국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양 회장도 간경화 2기 판정을 받았다. 대상포진까지 겹쳤다.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당시 위기를 맞은 사업도 폭삭 망했다. ‘불행은 겹쳐 온다’는 말을 실감했다.
도저히 사업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산업디자인’으로 개인적 회생이 가능했지만 건강이 너무 안좋아 할 수가 없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주위에 있던 분들이 “양두영을 살리자”고 나선 것이다. 10명이 돈을 모아 월 500만 원씩 1년간 무상 지원해줬다.
“그 돈으로 치료 받고 생활비 쓰고 건강을 찾아 죽지 않고 살아났지요”
양 회장의 회상이다.
그가 건강을 되찾자 주변에서 “이제는 사업을 다시 해도 되겠네”라고 했다. 그때 두 사람이 1억 원씩 2억 원을 사업 자금으로 건네줬다. 차용증을 쓴 것도 아니었다. 마음에서 우러나 도와준 것이다.
“그 돈을 마중물 삼아 ‘CURE LIFE’를 설립했지요. 마침 그때 딸이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는데 제가 ‘사업을 가르쳐 줄테니 한번 해볼래’라고 권유했어요.” 그렇게 딸은 공무원을 포기하고 회사의 대표(양혜정)가 되었다. 양 대표는 아버지의 기술과 아이템을 기반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양 회장은 후에 사업이 성공하고 자신을 도와줬던 사람들의 은혜를 갚았다.
“500만 원씩 1년을 도와줬던 분들에게는 그 돈을 다 갚았죠. 또 그 분들의 부모님 7, 8분을 케이블방송에서 진행하는 ‘엄마의 봄날’ 프로그램을 통해 무릎수술 등을 해줬어요.”
1억 원씩 사업 자금을 대줬던 분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 분은 우리 회사 전무님으로 모셨고, 다른 한 분은 대표로 지내다 5년간 사외이사로 배려했지요. 두 분 모두에게 도와준 돈은 다 갚았죠. CURE LIFE 가치가 100억 원대로 상승하면서 두 분에게 회사 지분의 각 10%를 드렸죠.”라고 귀띔했다.
애초 무상으로 양 회장을 도와준 사람들도 그렇고,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정성을 다해 되갚은 양 회장도 대단하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는 한 세상은 참 살만하지 않겠는가.
먹구름이 걷히고 나니 밝은 햇살이 눈부시게 비쳤다. 행운이 다가왔다. 사업도 펴고 재혼도 했다. 자녀들에게 예절을 중시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라고 강조한다. 여자나 아내와는 절대 다투지 않는다. 돈도 귀하게 여기되 절대 집착해선 안된다고 교육한다.
불행이 겹쳐 오듯 행운도 겹쳐 올 때가 있다. 양 회장이 그랬다. 사업이 펴나가면서 그는 재혼을 하게 됐다.
“저처럼 재혼 상대인 아내에게도 똑같이 슬하에 1남1녀가 있었어요. 그때 제가 그들에게 얘기했어요. ‘너희들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한번 해볼테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합가하려는 데 함께 해서 어려움을 헤쳐나가자’고 설득했지요. 다행히 승낙해서 합가를 했습니다.”
자녀들은 모두 원만하게 잘 지냈다.
양 회장은 자녀들에게 예절을 갖춰라고 강조한다. “윗 사람을 공경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자신들이 누리는 여러 가지 혜택을 계승해서 발전시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 시대 사람들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려면 그 사람들을 인정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를 이어갈 수 있지요. 배려하는 마음이 없으면 안됩니다. 제 폰에는 1,500명 정도 연락처가 있어요. 그 사람들을 제 자녀들이 다 챙깁니다.” 그의 얘기다.
그에겐 ‘가정철학’이 있다. 여자나 아내와는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자가 이성적인 부분에서 우위에 있다면 여자는 감성이 더 풍부하다고 봐요. 남자만 있으면 삭막한데 여자가 있어 감성이 풍부해지고 분위기가 부드러워지죠. 그러니 여자를 당연히 배려해야지요.”
그는 가족끼리 말다툼을 하거나 싸우더라도 매일 아침 “Happy Day”라고 인사하고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집을 나가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4명의 자녀들도 여태 싸우거나 언성을 높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돈’에 대한 생각도 확고하다. “돈은 가장 친한 친구다. 마땅히 귀하게 대접해야 한다. 1원짜리 동전도 떨어져 있으면 줍는다. 내 친구가 떨어져 있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씀씀이에선 귀한 친구를 대하듯 그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나 자녀들이 돈에 집착하면 사회적·가정적으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돈을 관리하면 필요없는 욕심을 버릴 수 있다. ‘돈’으로 얼굴 붉히는 일은 막을 수 있다.”
양 회장은 자신의 삶이 결코 평탄치만은 않았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겸손하게 살자’고 다짐한다. 예절과 인성을 중시하고 생활화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딸과 아들을 기업의 CEO로 키우고 있다. 딸은 CURE LIFE 대표, 아들은 COLOR LIFE 대표로 각각 맡겨 경영 수업을 시키고 있다. 자녀들에게 기업을 하면서 사회에 봉사할 것도 잊지말라고 늘 충고한다.
“앞으로 자녀는 젊어서 기업의 CEO가 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의 지론이자 경험에서 얻은 결론이다.
그는 딸에게 경영자 수업을 시키면서 자신의 인생이 더 알차게 강화되고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아들에게도 경영자 수업을 하고 있다. “CEO를 만들기 위해 3년째 수업을 시키는 아들이 있어요. 알루미늄 합금을 만드는 신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인데 세계인에게 유용한 기술이죠. 전세계 100개 기업과 MOU를 맺어가면서 사업중입니다. 티타늄보다 강한 알루미늄 제품인데 고강도 알루미늄보다 기계적 특성이 좋아 드론·로봇·항공·우주 등 여러 방면에서 사용될 것으로 확신하는 제품입니다. 제품 출시를 앞두고 기초를 다지면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요.”
그는 자녀들에게 기업을 하면서 사회에 봉사할 것도 잊지말라고 늘 충고한다. 자녀들도 그런 아버지의 충고를 받아들여 실천하고 있다.
양 회장은 자연에서 얻은 지식이나 기술은 잘 유지하고 발전시켜 합리적인 방법으로 제도화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은 것도 쉽게 보지 않고, 작은 생명도 업신여기지 않아야죠.”
그는 “살아가면서 ‘화’를 낼 이유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이를 실천하듯 신제품 디자인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참고하고, 융합해 제품을 개발하고 출시하지요. 저와 의견이 다르다고 언성을 높여본 적이 없어요.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이념을 떠나서 여러 의견과 시각을 참고하고 융합시키는 지도자가 됐으면 좋겠다.”
그는 홍성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폴리텍대학 기계과 1년 과정을 마친 뒤 공군에 입대해 복무했다. 제대 후 엔지니어링 회사에 들어가 여러 회사 공장자동화 사업에 참여했다. KIA에 근무하던 매형의 권유로 캐드캠을 배우고 익혀 산업디자인을 해왔다.
양두영 회장은 홍성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폴리텍대학 기계과 1년 과정을 마쳤다. 그 후 공군 하사관으로 입대해 5년간 복무했다.
“기능장을 해보려고 군에서 3시간만 자고 공부를 했어요. 기계부문 4과목을 죽도록 했죠. 제대하고 사회에 진출해 보니 적어도 기계부문에선 저같이 박식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았어요. 당시 3㎝정도 두께의 ‘기계용어사전’을 두 번이나 읽었죠. 주변에 기계용어에 대해서 쉽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는 그 실력으로 엔지니어링 회사에 들어가 4년을 근무했다. 공장자동화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였다. 그곳에서 그는 한국타이어 라인자동화, 후지필름 라인자동화, 기아아산만공장 사출시스템자동화, 대구제일모직 라인자동화사업 등에 참여했다.
그때 마침 자동차회사 ‘KIA’에서 근무하던 매형이 캐드캠 시스템을 습득해 “같이 사업을 해보자.”고 권유해 함께 하게 됐다.
“당시엔 전문가가 없던 시절이라 1년 정도 스스로 배우며 익혔어요.” 그 후 사업을 인수해 운영하며 감각을 키웠다. “디자인학원 여러 곳을 다니며 배우기도 했어요. 당시엔 국가 지원도 있었죠.”
그는 매형과 함께 사업을 하면서 금형과 사출 부문도 많이 배우고 익혔다. “여러 부문을 광범위하게 습득하다 보니 훨씬 빠르게 이해하게 되었어요. 예컨대 설계도면을 볼 때는 다른 사람들보다 10배 이상 빨리 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죠. 나중에 뇌 촬영을 해봤더니 남들보다 뇌의 필터링 기능을 담당하는 해마가 2배 이상 크다고 했어요.”
그는 타고난 재능에다 끈기와 열정까지 갖췄다. “산업디자인쪽은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디자인을 합니다.” 그의 말대로 그는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전기·전자·화학·물리까지 내가 필요하면 공부해서 머리 속에 집어넣죠. 그런 다음 제품을 개발합니다. 그동안 다양한 업종을 공부한 게 노하우게 됐어요. 적어도 이과 부문에선 누구와도 얘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고 자신합니다.”
그는 “한번 하겠다고 작정하면 끝까지 성과를 보고, 다음 단계로 이행한다.”고 자신의 성격을 진단했다.
[회사 소개]
㈜CURE LIFE
'쓰리잘비' 빗자루
쓰리잘비 빗자루와 쓰레받기
큐어라이프가 생산하는 제품이 바로 브랜드 ‘쓰리잘비’다. 쓰리잘비의 ‘잘비’는 잘 쓸리는 빗자루, 혹은 잘 되는 빗자루란 의미다. ‘쓰리’는 스퀴지와 빗자루, 유리닦기 등 세 가지를 통합했다는 뜻이다.
쓰리잘비는 기존의 빗자루와는 전혀 다른 혁신적인 제품으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제품은 국내 젊은층 10명 중 9명이 알고 있고, 전세계 생활용품 바이어 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미국에서 3년간 베스트상품에 올랐고, 사람에게 유익한 제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NBC에도 두 번이나 소개됐다. 특히 중국에선 마트에서도 모방품을 팔 정도로 인기다.
또한 이 제품은 대한민국디자인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제품 소재도 실리콘 등 특수 소재를 사용해 오래 사용할 수 있고 효율성과 편리성도 단연 뛰어나다.
이 제품으로 세계 12개국에 지사를 둘 정도이며, 세계 43개국에 특허를 출원했다. 지난해 매출액이 130억 원 안팎이다.
양두영 회장은 “‘문화를 바꾸는 제품을 만들자’는 슬로건 아래 남녀노소, 계절에 관계없이 인종간 벽이 없는 제품, 세계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자는 목표로 개발하고 다듬고, 출시하기까지 8년이 걸렸다.”고 소개했다.
COLOR CUBE
컬러큐브가 수퍼 알루미늄으로 만든 각종 시제품
컬러큐브는 ‘슈퍼 알루미늄’이라는 신소재를 개발한 국내 스타트업이다.
컬러큐브가 개발한 고강도 알루미늄 소재 ‘슈퍼 알루미늄’은 기존 시장의 고강도 알루미늄 소재 대비 약 30% 이상의 강도 향상을 달성한 신소재로 티타늄의 강도에도 필적하는 성능을 가지고 있다.
슈퍼 알루미늄은 강하고 가볍다. 소재의 특성상 국방, 항공우주, 자동차, 건설, 안전용품, 의료 산업, 로봇, 드론 등 첨단분야의 다양한 제품에 쓰인다. 제품의 안전성을 높이고 제품 무게 및 연료 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어 국내 공인 연구기관에서도 획기적인 소재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초기 적용 제품으로서, 현재 슈퍼 알루미늄으로 개발된 ‘슈퍼 알루미늄 3D 프린팅 소재’나 ‘슈퍼 알루미늄 패스너’는 테스트 결과, 우수한 특성으로 현재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으며 협업 및 공급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