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김정훈 기자 | 전남교육청이 최근 발표한 조직개편안이 학교 현장과 교사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며 교육계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학교가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명분 아래 추진된 이번 개편은 절차적 정당성의 결여와 현장 의견 무시에 따른 ‘졸속 개편’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가 철저히 배제된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진 이번 조직개편은 교육의 본질을 외면한 채 행정 편의성만을 고려했다는 지적이 크다.
먼저, 전남교육청은 이번 조직개편에 대해 “교사 행정업무 경감과 교육 본질 회복”을 주요 목표로 내세웠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교사들이 직접 담당하는 행정업무 경감은 매우 제한적이고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교육청이 발표한 23개 업무경감 과제 중 상당수는 교사들의 업무가 아닌 다른 부서의 책임 영역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박람회 준비, 공모사업 추진, 민원 처리, 감사용 문서 작성 등의 업무는 여전히 교사들의 부담으로 남아 있어, 정작 현장이 필요로 하는 실질적 지원과는 거리가 멀다.
더욱이 이번 개편 과정에서 공청회나 의견 수렴 절차가 전혀 없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조직개편이 교육행정의 기본 원칙인 ‘현장과의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면서, 절차적 정당성은 사실상 무시되었다.
게시판 공지를 통해 조직개편 사실을 알리는 데 그친 점도 현장에 대한 배려 부족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3년 사이에 세 차례나 조직개편이 진행된 점 역시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와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조직개편에서 특히 우려되는 부분은 민주시민교육, 인권 보호, 기록관리, 민원 대응 등 학교 현장에서 강화되어야 할 중요한 기능들이 축소되거나 통폐합된 점이다.
최근 학교 현장은 악성 민원과 교권 침해, 교사에 대한 부당한 행정 요구가 급증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교사의 안전과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조직적 지원은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교육계 내부의 실망과 분노가 커지고 있다. 이는 교육청이 민주주의 교육과 교사의 권익 보호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초·중등 교장단과 교육청 전문직들 또한 이번 조직개편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내놓으며, 개편 방향이 ‘현장 지원’보다는 ‘책임 떠넘기기’에 치중돼 있다고 비판한다.
특히 교사 정원 감축과 일반직 인력 증원이라는 불균형한 인사 구조 변화는 학교 현장의 혼란과 부담을 가중시킬 우려가 크다. 조직 체계가 교사의 교육 활동 지원보다는 행정력 확대에 집중되면서, ‘교육 중심 행정’의 근본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수의 교원단체도 이번 조직개편에 강력 반대하며 성명을 발표했다. 전교조 전남지부 신왕식 지부장은 “조직개편 과정에 교사 의견 수렴은커녕 공청회 한 번 없었다.
게시판 공지로만 알린 것은 현장을 무시하는 행정 폭거”라고 비판하며, “불필요한 행정 낭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남전문상담교사노조 이재명 대표도 “위기학생이 늘어나고 있지만, 전문상담교사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지원 조직 강화 없이 조직개편을 밀어붙이는 것은 현장 현실을 외면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또한 전남실천교사모임 김일도 대표는 “수업 외 행정 업무는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다. 현장 변화는 전혀 없으며, 이번 개편은 전면 백지화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남새로운학교네트워크 기나영 대표 역시 “교사 정원 감축과 일반직 인력 증가는 명백히 학교 현장과 방향이 다르다. 실질적인 개선이 없는 조직개편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남교육청의 조직개편 논란은 행정 구조 개편을 넘어선 사안으로, 교육청과 학교 현장 간 신뢰와 소통의 위기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교사는 행정의 대상이 아니라 교육의 주체임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학교가 교육 본연의 역할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 시스템 전반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전남교육청은 지금이라도 잘못된 조직개편 추진을 멈추고, 현장 교사들과 학교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보여주기식 개편이 아닌, 교사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행정업무 경감과 함께 민주시민교육, 인권 보호 기능 강화에 나서야 한다.
더 이상 형식적인 절차와 일방적 밀어붙이기로 교육 현장의 신뢰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투명하고 책임 있는 교육 행정을 확립하는 것만이 전남교육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닌 실행이고, 무책임한 개편이 아닌 진정한 전환이다. 전남교육의 미래, 그리고 교사와 학생 모두의 존엄과 권리를 위한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과제다.
전교조 전남지부 관계자는 “이번 조직개편은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고 학교 현장을 철저히 외면한 졸속 행정”이라며 “전남교육청이 진정으로 교육을 위한다면 즉각 개편안을 철회하고 현장과의 소통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