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김대진 기자 | 고(故) 연덕춘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고문이 한국 이름을 되찾았다.
1941년 일본오픈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고 연덕춘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고문. 사진: KPGA 제공
KPGA는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1호 프로골프선수 고 연덕춘 역사와 전설을 복원하다' 행사에서 일본오픈선수권대회(일본오픈) 기록 정정 및 연 전 고문의 일본 오픈 우승 트로피 복원 기념식을 진행했다.
연덕춘 전 고문은 일제강점기였던 1941년 일본프로골프 최고 권위의 대회인 일본오픈에서 한국인 최초로 국제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4라운드 합계 2오버파 290타의 성적으로 2위 선수를 3타 차로 제치고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그러나 최근까지 일본프로골프 역사에서 연덕춘 전 고문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연 전 고문은 노부하라 도쿠하루라는 일본 이름으로 출전했고, 일본골프협회(JGA)는 해당 대회 우승자를 '한국 선수 연덕춘' 대신 '일본 선수 노부하라'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KPGA와 대한골프협회(KGA)는 지난해 JGA에 연덕춘 전 고문의 국적과 이름 수정을 요청했고, 광복 80주년과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한 올해 4월 동의를 끌어냈다.
대한민국 1호 프로골퍼 연덕춘 트로피 복원 기념식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골퍼 고(故) 연덕춘의 우승 트로피 복원 기념식에서 김원섭 KPGA 회장(왼쪽 세 번째), 야마나카 히로시 일본골프협회 전무(오른쪽 세 번째) 등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하 사진: 연합뉴스
행사에 참석한 야마나카 히로시 JGA 최고 운영 책임자는 "연덕춘 고문은 정치적인 배경 때문에 한국 이름을 쓰지 못하고 일본 이름으로 대회에 참가했다"며 "JGA는 지난해 KPGA와 KGA의 요청받은 뒤 내부 논의를 했고 만장일치로 기록을 정정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축사하는 야마나카 히로시 일본골프협회 전무. 야마나카 히로시 일본골프협회 전무가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1호 프로골프 선수 고(故) 연덕춘, 역사와 전설을 복원하다' 행사에서 축사하고 있다
그는 "올해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인 뜻깊은 해"라며 "연덕춘 고문이 하늘에서 기뻐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JGA는 올해 명예의 전당 문호를 외국인에게도 열었다"며 "연덕춘 전 고문은 상징성이 큰 분이라서 헌액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김원섭 KPGA 회장은 "연덕춘 전 고문은 한국 골프의 뿌리"라며 "기록 정정은 선수 개인을 떠나 한국 골프의 정통성을 각인하는 역사적인 성과"라고 자평했다.
강형모 대한골프협회(KGA) 회장은 "연덕춘 선수의 국적과 이름이 바로잡힌 것은 한국 골프사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깊은 울림을 주는 일"이라며 "이를 통해 한일 양국 간의 상호 이해와 신뢰를 넓히는 의미 있는 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KPGA는 한국 전쟁 당시 유실된 연덕춘 전 고문의 일본오픈 우승 트로피를 복원해 이날 공개하기도 했다. 이 트로피는 독립기념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연덕춘 복원 트로피 공개하는 김원섭 회장과 야마나카 전무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골퍼 고(故) 연덕춘의 우승 트로피 복원 기념식에서 김원섭 KPGA 회장(왼쪽)과 야마나카 히로시 일본골프협회 전무가 트로피를 공개하고 있다.
1916년 서울에서 태어난 연덕춘 전 고문은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장인 경성골프클럽에서 캐디로 일하던 친척과 인연으로 골프에 입문했다.
1934년 일본으로 골프 유학길에 올라 일본 프로 자격을 취득하고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연덕춘 전 고문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고 손기정 선생과 함께 일제 강점기 아래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널리 알렸다.
1935년 처음 출전한 일본오픈에서 컷오프의 쓴잔을 마셨으나 1941년 마침내 꿈을 이뤘다.
우리나라 최초 프로골퍼 연덕춘, 되찾은 이름과 명예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골퍼 고(故) 연덕춘의 우승 트로피 복원 기념식에 놓인 트로피에 연덕춘의 이름이 적혀있다.
연 전 고문은 이후 한국 프로골프의 초석을 세웠다.
그는 KPGA 1번 회원이며, 창립 회원이기도 하다.
1958년 한국 최초의 프로골프 대회인 KPGA 선수권대회 초대 우승을 차지했고, 1968년엔 후배들과 함께 KPGA를 결성, 제2대 회장도 역임했다.
이후 2004년 별세하기 전까지 한국 골프 발전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했다.
KPGA는 연덕춘 전 고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최저타수상을 '덕춘상'으로 명명해 1980년부터 시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