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강매화 기자 | 국제 금과 은 가격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뒤 불과 하루 만에 급격한 하락세로 돌아섰다. 과열된 투자 심리 속에서 차익 실현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2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국제 금 현물 가격은 장중 한때 전 거래일 대비 약 5% 급락하며 최근 두 달 사이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은 가격은 변동성이 더욱 컸다. 장중 최대 11%까지 급락하며 2020년 9월 이후 가장 가파른 하락세를 나타냈다. 온스당 84달러선을 돌파한 직후 급락 전환한 것이다.
세계 최대 은 상장지수펀드(ETF)인 ‘아이셰어즈 실버 트러스트(iShares Silver Trust)’ 역시 장중 10% 가까이 하락해 2020년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기술적 지표 역시 조정 가능성을 시사해 왔다. 금의 14일 상대강도지수(RSI)는 최근 2주간 과매수 구간에 머물며 단기 과열 신호를 보냈고, 은 역시 RSI가 70을 크게 웃돌며 과도한 매수 국면에 진입했다. 실제로 은 가격은 이달 중순 이후에만 25% 넘게 급등한 상태였다.
소시에테제네랄의 마이클 헤이 원자재 리서치 총괄은 이번 하락을 두고 “차익 실현 매물이 집중적으로 출회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는 “귀금속 시장은 연말에서 연초로 넘어가는 시기에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왔다”며 “지난 10년간 이 기간 동안 금과 은은 평균적으로 각각 4%, 7%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연말은 유동성이 급감하는 시기인 만큼 가격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공급 불안 요인도 여전히 시장을 자극하고 있다. 세계 3위 은 생산국인 중국이 내년 1월부터 수출 통제 조치를 시행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공급 차질 우려가 커졌다. 앞서 미국은 은을 핵심 광물로 지정하며 향후 관세 부과나 무역 규제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실버인스티튜트의 마이클 디리엔조 최고경영자(CEO)는 “은은 전자·컴퓨팅 산업 전반에 필수적인 금속”이라며 “전원을 켜고 끄는 모든 장치에 사용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은 시장은 이미 5년째 구조적인 공급 부족 상태에 놓여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중국선물공사의 왕옌칭 애널리스트는 “시장에 투기적 심리가 지나치게 팽배해 있다”며 “현물 공급 부족에 대한 기대가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CME그룹은 일부 은 선물 계약의 증거금 인상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고(高)레버리지를 활용하던 투자자들은 추가 증거금을 납부하거나 포지션을 축소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왕 애널리스트는 “이번 조치가 과도한 투기 거래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 일각에서는 금·은 가격이 정점을 찍고 하락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마이크 맥글론 수석 원자재 전략가는 “이처럼 빠른 상승세는 1979년 이후 처음”이라며 “당시에도 이듬해인 1980년에 급락이 뒤따랐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열 국면에서는 무엇보다 ‘차익 실현’이라는 단어를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