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문채형 기자 | 현대건설(대표이사 이한우)이 카타르 비료공장 건설공사 과정에서 하도급대금을 장기간 지급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이코노미는 최근 카타르 현지 제보를 계기로 해당 사안을 취재한 결과, 공사 완료 이후 10년이 넘도록 하도급대금 정산이 이뤄지지 않은 사례가 확인됐다.
문제의 공사는 카타르 비료회사가 발주한 비료공장 건설공사로, 원사업자인 현대건설은 2009년 3월 18일 이 공사 중 기계설비공사를 일양이엔씨카타르 유한회사에 하도급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도급사인 일양이엔씨카타르 유한회사는 일양이엔씨를 제1출자자로 둔 사실상 국내 기업으로, 해당 공사 수행을 위해 카타르 현지에 설립된 법인이다.
취재 결과에 따르면 해당 하도급 공사는 합의 타절 방식으로 종결됐으며, 2011년 7월 7일 하자보수까지 모두 완료된 것으로 확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건설은 2026년 1월 현재까지 잔여 하도급대금 미화 1,429,096.63달러(약 20억 원)와 이에 대한 지연이자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계약에도 없는 ‘지급 동의서’ 요구 논란
이번 사안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현대건설이 하도급대금 지급 조건으로 하도급사의 현지 스폰서 지급 동의서 제출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해당 조건은 하도급계약서에 명시돼 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하도급사인 일양이엔씨카타르 유한회사 측이 제시한 회사 정관에 따르면, 현지 스폰서는 회사 운영이나 자금 집행, 하도급대금 수령에 관여할 권한이 없는 구조다. 그럼에도 현대건설이 지급 동의서를 요구한 것은 계약상 또는 법률상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공사지만 ‘사실적 하도급’ 가능성
이번 사안은 형식적으로는 해외 현지 법인을 통한 계약 구조를 띠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국내 기업 간 하도급 거래가 해외 법인을 매개로 이뤄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경우 해외건설공사라 하더라도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적용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복수의 관계자들은 “해외 공사라는 이유로 하도급대금 정산 책임을 회피하는 관행이 반복돼 왔다면, 이는 단순한 기업 간 분쟁을 넘어 구조적 문제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취재 후 현대건설에 공식 입장 요청
지이코노미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카타르 현지 제보를 시작으로 상당 기간 사실관계 취재를 진행했으며, 보도에 앞서 현대건설에 공식 질의서를 발송해 입장을 요청했다. 질의서에는 하도급대금 미지급 사실 여부, 지급 조건 추가 요구의 근거, 향후 지급 계획 등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 현대건설은 서면 답변을 통해 “계약상 부담하는 Confidentiality(비밀유지) 의무로 인해 본 건 관련 사항은 제3자에게 공개할 수 없어 구체적인 답변이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본 건 사안과 관련해 국내 및 카타르 현지 법원 절차에서 이미 승소했으며, 당사의 대응 과정에서 계약 위반이나 위법 행위는 없었다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대건설이 비밀유지 의무를 이유로 개별 쟁점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내놓지 않으면서, 하도급대금 정산 여부와 지급 조건의 계약상 근거를 둘러싼 핵심 쟁점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현대건설이 언급한 ‘법원 승소’가 하도급대금 지급 의무의 부존재를 인정받은 결과라기보다는, 계약상 전속적 중재조항을 근거로 소송의 본안 판단을 피한 데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아울러 10년 넘게 중재조항을 앞세워 소송을 방어해 왔음에도, 정작 중재 절차로는 나아가지 않은 점 역시 모순으로 지적된다. 계약 위반이나 위법 행위가 없었다는 주장 또한 형식적 논리에 그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에 유리한 계약 구조와 해외 공사라는 특수성을 내세워 국내 하도급법 적용을 회피하거나 우회한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도 나온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사안은 단순한 기업 간 분쟁을 넘어, 구조적인 불공정거래와 이른바 ‘갑질’ 문제로 읽힐 수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반복되는 해외건설 하도급 논란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을 해외건설 현장에서 반복돼 온 하도급대금 정산 문제의 한 단면으로 보고 있다. 공사를 완료하고도 대금을 받지 못한 하도급사가 장기간 경영난에 시달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아인 한새봄 변호사는 “공사가 종료되고 하자보수까지 완료됐다면, 계약에 따른 대금 지급은 원칙적으로 이행돼야 한다”며 “계약서에 없는 조건을 들어 지급을 지연했다면 이는 법적 판단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안은 기업 간 분쟁을 넘어 해외건설 현장에서 하도급 책임과 공정거래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지이코노미는 추가 자료 확인과 관계자 취재를 통해 해당 사안의 사실관계를 계속 점검하며 후속 보도를 이어갈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