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 등록 2024.07.23 11: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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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이코노미 김대진 편집국장l 김민기. 그가 우리 곁을 떠났다. 몇 달 전 방송에서 그가 몸이 편찮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날 줄은 몰랐다. “아직은 이른데...”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올해 73세라고 하니 더 섧다.

세상 누구나 죽게 마련이지만 그의 죽음은 더 애석하다. 100세 시대라서가 아니다. 그가 끼친 영향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 터다.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부르거나 듣고 위안을 삼고 힘을 얻었다. 삶에 지칠 때 그의 노래는 한 줄기 빛이 되고 희망이 되었다. 특히 7,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에게 그와 그의 노래는 저항의 아이콘이었다.

‘아침이슬’이 그랬고 ‘상록수’가 그랬다. 압제에 맞서 이런 노래를 부르면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 힘이 솟았다. 그 힘으로 압제가 사라지고 정권이 바뀌고 역사가 달라졌다.

참 묘한 것이 아침이슬도 상록수도 애초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노래는 아니었다. 아침이슬은 노랫말이 너무나 아름답다. 가사가 너무 좋아 건전가요 서울시문화상까지 받았던 이 노래가 긴급조치로 금지곡이 된 것은 정말 아이러니다.

상록수도 처음엔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을 위해 쓴 가사다. 힘들게 살아가며 뒤늦게 결혼해 새 출발을 하는 그들에게 김민기가 앞날을 축복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라고 격려한 노랫말이다. 한때 김민기도 곁에서 그들의 고단한 삶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김민기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다. 서울 미대에 입학했지만 노랫말을 쓰고 가수로 활동했다. 동창생 김영세와 함께 ‘도비두’란 2인조 그룹을 만들어 노래를 하기도 하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을 결성해 민중 가요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만든 노래는 부르지 못하는 금지곡이 됐다. 1971년 처음으로 낸 정규 앨범은 판매 금지가 되었다. 1987년 6.10 항쟁으로 금지곡이 풀릴 때까지 묶여 있었다고 한다.

한때 그는 경기도 파주에서 농삿일에 전념하며 세월을 보내기도 했으나 의문의 화재 사건으로 살고 있던 시골집이 전소돼 도시로 돌아왔다.

그 후 그는 서울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을 열어 여러 족적을 남겼다. 기획가, 연출가, 제작자로 활동했다. 신인 배우를 발굴해 스타로 키운 것도 그였다. 황정민, 설경구, 김윤석, 장현성, 조승우 등 이른바 학전 독수리 5인방이 그들이다. 1994년 초연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서 독특한 연기를 선보여 그렇게 불렸다. 지하철 1호선은 7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장기간 공연하는 신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당시 배고픈 연극 배우들에게 근로계약서를 쓰고 정해진 돈을 임금으로 꼬박꼬박 지불한 것도 김민기가 처음이었다.

학전은 배우 뿐만 아니라 무명 가수들에게도 좋은 무대였다. 김광석이 학전에서 유명해진 대표 가수였다. 윤도현, 나윤선, 박학기 등이 그곳에서 노래를 불렀다.

김민기는 학전 출신 배우가 스타가 되고, 가수가 유명인이 되어도 절대 그들의 앞에 나서는 법이 없었다. 늘 ‘뒷것’을 자처했다. 그들의 뒤에서 묵묵히 자신이 할 일만 할 뿐이었다.

그러던 학전이 결국 김민기의 건강이 악화되고 자금난 등이 겹쳐 올 봄 문을 닫았다. 학전은 지금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임차해 어린이와 청소년 중심 공연장인 ‘아르코 꿈밭극장’으로 탈바꿈했다. 학전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계승하겠다는 취지다.

이제 김민기는 갔다.

그의 죽음을 두고 정치색을 띈 온갖 댓글들이 난무한다. 그가 ‘좌파’니 ‘우파’니 하는 논쟁이다.

일찍이 그는 자신이 좌파 혹은 우파라고 한 적이 없다. 그저 열심히 노래를 만들고, 노래를 불렀을 뿐이다. 자신의 꿈대로 살았다. 그런 그를 두고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순수했던 그를 모욕하는 일이다.

그를 조금이라도 존중한다면 아니 그의 생을 조금이라도 기억하자고 한다면 그에게 더 이상 이런 저런 색깔을 입히는 일만은 삼가면 좋겠다. 그게 인간의 도리이자 최소한의 예의다.

그의 명복을 빈다.

 

김대진 기자 djkim987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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