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시선] SK, 또 콜옵션 외면하나

  • 등록 2025.07.26 03:25:42
크게보기

2023년 약속 불이행, 올해도 ‘내부 검토’만 반복
투자자 불신 깊어지고 그룹 차원의 책임 요구 확산
시장, 손실보다 ‘기만’을 더 오래 기억한다

“투자자 신뢰는 기업가치의 그림자다. 한 번 져버린 약속은 반드시 비용으로 돌아온다.” SK스퀘어가 다시 그날로 돌아가고 있다. 2023년, 재무적 투자자(FI)들이 요구한 11번가 콜옵션 행사 요청을 거부했던 그 순간 말이다. 그리고 올해, 콜옵션 행사 시점이 다시 돌아왔지만 SK스퀘어는 “시간이 남았다”, “내부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SK그룹이 투자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근본적 질문이 필요하다.

 

 

사건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연금, H&Q코리아 등 나인홀딩스 컨소시엄이 SK텔레콤을 믿고 11번가에 5000억 원을 투자했다. IPO 실패 시 회수 방안을 놓고 논의했고, SK는 “우리가 사주겠다”며 풋옵션 대신 콜옵션을 제시했다. 법적 강제력은 없었지만 사실상 구두 약속이었다. 그리고 2023년, SK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올해는 신뢰 붕괴의 재현이다.

 

콜옵션 미행사 뒤 발동된 드래그얼롱 조항도 무력했다. 이는 대주주가 지분 매각 시 소수 주주도 동일 조건으로 매각에 동참하도록 하는 장치다. 그러나 실제 매각 협상은 지지부진했다. 오아시스마켓, 큐텐, 아마존 등 후보가 있었으나 티몬 사태 영향으로 협상은 무산됐다. FI들은 “SK가 잠재 매수자 조건을 거부하고 협조도 없었다”고 비판한다. 일부는 그룹 차원의 직접 개입을 요구한다. 투자 유치 당시엔 그룹 전체 이름을 내세웠으나, 책임을 져야 할 순간에는 ‘법인 단위’만 강조하는 이중잣대에 대한 반발이다.

 

SK스퀘어 입장에선 콜옵션 행사는 부담이다. 올해 11번가 지분가치는 약 8200억 원으로, 2018년 2조7000억 원에 비해 70% 넘게 하락했다. 5000억 원을 들여 FI 지분을 사들여도 재매각이 어렵고 배임 논란 위험도 크다. 그러나 이해득실만 따지다 잃는 게 있다. 바로 ‘시장 신뢰’다. 기업가치는 숫자가 아니라 평판이며, 평판은 약속을 지키는 행동에서 나온다.

 

콜옵션 미이행은 단순한 재무적 선택이 아니다. 외국계 투자자와 기관들은 계약 이행을 전제로 자본을 투입한다. 이 약속이 깨지면, 한국 기업에 대한 신뢰는 급격히 떨어진다. 이는 자금 조달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고, 그룹 전체 장기 경쟁력을 훼손한다. 특히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신뢰 하락은 상징적 타격이다. 단기 손실을 피하려다 장기 시장 신뢰를 잃는 결과다.

 

주주 입장에서도 약속 파기는 심각한 문제다. 경영진의 신뢰 상실은 주가 하락과 배임 논란으로 이어지고, 이미 일부 FI는 그룹 차원의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 ESG와 이해관계자 경영을 표방하는 SK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 책무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시장은 실수를 용서하지만, 고의적 기만에는 엄정한 대가를 요구한다.

 

“내부 검토 중”이라는 반복되는 말은 FI뿐 아니라 전체 시장의 불신을 키운다. 투자 당시 SK텔레콤이 전면에 나섰고, 지금은 SK스퀘어가 책임을 회피하는 모양새다. ESG 원칙을 강조한 그룹이라면 이 문제를 분절적으로 다뤄선 안 된다. FI와의 신뢰 회복은 그룹 전체의 과제다.

 

투자 실패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책임을 투자자에게 전가하거나 회피하는 태도는 단순한 손실보다 훨씬 큰 후폭풍을 낳는다. 시장은 실수를 용서할 수 있지만, 기만은 오래 기억한다. 11번가 사태가 하나의 실패 사례로 남을지, 아니면 SK그룹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될지는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번에도 외면한다면, SK는 다시는 회복하기 어려운 신뢰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문채형 기자 moon113@empal.com
Copyright @G.ECONOMY(지이코노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특별시 서초구 언남5길 8(양재동, 설빌딩) 2층 | 대표전화 : 02-417-0030 | 팩스 : 02-417-9965 지이코노미(주) G.ECONOMY / 골프가이드 | 등록번호 : 서울, 아52989 서울, 아52559 | 등록(발행)일 : 2020-04-03 | 발행인·편집인 : 강영자, 회장 : 이성용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 방제일) G.ECONOMY의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2 G.ECONOMY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lf0030@kaka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