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강매화 기자 |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메모리 반도체 기업에는 두 가지 선택지만 있다.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라고 밝히며 글로벌 반도체 업계를 정조준했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1·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겨냥한 발언으로, 미국의 대(對)한국 반도체 압박이 본격화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러트닉 장관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뉴욕주 시러큐스 인근에서 열린 마이크론 신규 공장 착공식에서 이같이 언급했다. 마이크론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어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다. 그는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원한다”며 사실상 고율 관세를 지렛대로 투자 유치를 압박했다.
앞서 러트닉 장관은 CNBC 인터뷰에서도 대만 사례를 언급하며 경고 수위를 높였다. 그는 “TSMC 등이 미국에 공장을 짓는 조건으로 대만이 관세 일부 면제를 받았다”며 “만약 공장을 짓지 않으면 관세는 100%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미국이 파운드리뿐 아니라 메모리 반도체까지 동일한 논리를 적용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 상무부는 ‘대만과 같은 면제 기준이 한국에도 적용되느냐’는 질문에 “국가별로 별도 합의를 할 것”이라고 밝혀, 한국이 대만과 동일한 조건을 자동으로 적용받지 못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는 향후 한·미 간 추가 협상을 통해 투자 규모와 조건을 다시 설정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당초 미국이 발표한 반도체 관세 조치는 중국으로 수출되는 엔비디아·AMD의 AI 반도체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 때문에 한국이 주력으로 수출하는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백악관이 “관세 확대 가능성”을 언급한 데 이어 상무장관이 직접 100% 관세를 거론하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전날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도 “현재 조치의 직접 영향은 크지 않지만, 2단계 관세가 언제 어떤 형태로 나올지 예단하기 어렵다”며 경계감을 나타냈다.
정부는 지난해 관세 협상에서 반도체 분야와 관련해 ‘최혜국 대우’를 보장받았다는 점을 협상 카드로 내세울 방침이다. 청와대는 18일 “불리하지 않은 대우 원칙에 따라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최근 대만과의 관세 협상에서 상호관세율을 20%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대만 기업의 2,500억 달러 직접 투자와 대만 정부의 2,500억 달러 규모 신용보증을 이끌어냈다. 이 투자에는 TSMC의 미국 공장 건설이 포함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공장 건설 기간 동안 생산능력의 2.5배에 해당하는 반도체 수입 물량에 대해 관세를 면제하고, 공장 완공 이후에도 1.5배까지는 무관세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투자 유인책’을 설계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모델이 한국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미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지만, 무관세 혜택을 유지하려면 추가 투자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생산한 메모리에 100% 관세가 붙을 경우, 미국 내 생산 기반을 둔 마이크론과의 경쟁에서 구조적으로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