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방제일 기자 | 골프 '명인 열전' 제89회 마스터스 토너먼트 2라운드가 열린 12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18번 홀에선 컷 탈락이 확실한 어느 선수를 향한 갤러리의 '기립 박수'가 나왔다.

41번째 마스터스에 출전한 67세의 백전노장 베른하르트 랑거(독일)를 향한 팬들의 인사였다. 1985년과 1993년 이 대회를 제패한 랑거는 올해를 자신의 마지막 마스터스로 삼겠다고 개막 전부터 공언해 온 터였다.
랑거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3승, 유러피언투어에서 42승을 올렸고, 시니어 투어인 PGA 투어 챔피언스에서는 역대 최다 47승을 보유했다.
60대에 접어든 2018∼2020년 마스터스에서 연속 컷 통과를 기록했던 그는 마지막 출전에서도 컷을 통과할 뻔했다. 이날 12번 홀(파3) 버디로 중간 합계 이븐파를 만들며 예상 컷 통과 기준인 2오버파를 웃돈 것이다. 15번 홀(파5)에서 3번째 샷이 물에 빠지며 더블보기를 적어냈을 때만 해도 2오버파에 걸쳐 있던 그는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 약 3m의 파 퍼트가 살짝 흐르며 결국 보기를 써내 1·2라운드 합계 3오버파 147타로 마무리했다.
마지막 파 퍼트가 빗나가자 갤러리의 탄식이 흘러나왔고, 사실상 탈락을 예감한 랑거도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내 모자를 벗고 인사하는 랑거를 향해 팬들의 기립 박수와 휘파람이 쏟아졌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의 프레드 리들리 회장도 직접 나와 예우했다.
곳곳을 향해 손을 흔들며 오거스타에 작별을 고한 랑거는 대회 관계자, 가족들과 인사한 뒤 아내 비키 캐롤의 손을 잡고 경기장을 떠나 마지막 스코어카드를 제출했다. 랑거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라운드였으니 즐기려고 노력했다. 이 코스의 아름다움, 매 홀 마주치는 도전들, 갤러리의 응원을 온몸으로 느꼈다"면서 "정말 특별한 이틀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어제 1번 홀로 걸어가는데 팬들이 박수를 보내줘서 거의 눈물이 나올 뻔했는데, '이러면 안 돼. 아직 경기해야 하잖아'라며 다잡았다"는 그는 "이후에도 코스 곳곳에서 많은 박수를 받았고, 오늘 18번 홀로 올라올 때는 만감이 교차했다"고 털어놨다.
경기에 대해선 "스스로 경기를 통제하려고 했지만, 바람이 도와주지 않았다. 15번 홀에서는 완벽한 웨지 샷에 스핀이 걸리면서 물에 빠져 결국 7타를 쳤다"면서 "완벽한 샷에서 7타가 나온 건 속상한 일이지만, 그게 골프다. 가장 멋진 게임이지만, 때로는 가장 잔인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조금 더 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긴 했지만, 잘 결정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 코스는 내게 너무 길다"며 완전한 이별을 알린 그는 "첫 라운드부터 이 코스와 사랑에 빠져 많은 추억을 쌓았다. 두 차례 우승을 차지했고, 오랫동안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건 큰 축복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회에선 65세의 프레드 커플스(미국)가 1라운드 1언더파를 치며 공동 11위에 올라 랑거와 더불어 컷 통과를 노렸으나 이날 5타를 잃고 이틀간 합계 4오버파에 그치며 탈락했다. 2023년 63세 187일이라는 역대 최고령 기록으로 컷을 통과했던 커플스는 이번 대회에서 컷을 통과하면 65세 191로 경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