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음석창 기자 | 한 세대가 평생 모은 돈을 털어 마련한 집. 하지만 그 집에 여전히 은행의 근저당이 걸려 있고, 심지어 경매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의 절망감은 상상하기 어렵다. 전남 순천의 송보파인빌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이다.
임대주택으로 시작해 분양 전환을 앞두고 있던 송보파인빌은 현재 심각한 법적·재정적 위기에 놓여 있다. 잔금을 다 냈음에도 입주민들의 소유권이 명확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 그 원인은 임대사업자의 ‘부도 등’ 조치다. 사업자가 주택도시기금 이자 납부를 연체하면서 신용불량 상태에 빠졌고, 은행은 이에 따라 해당 아파트에 설정된 근저당을 해지하지 않은 채 보전 조치에 들어간 것이다.
이로 인해 101세대에 달하는 입주민들은 자신도 모르게 집에 ‘빚이 남아 있는’ 상황에 놓였다. 누구도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고, 많은 입주민들은 경매 통지를 받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피해는 금전적인 것을 넘어 정신적 고통으로까지 이어졌다.
순천시는 18일,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첫 공식 조치를 시작했다. 노관규 시장은 피해 입주민 대표 10명과 시청에서 비공개 면담을 갖고, 현재 피해 실태와 요구사항을 청취했다. 단순한 민원 응대가 아니라, 법적·제도적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논의였다.
입주민들은 이날 면담에서 각자의 피해 사례를 상세히 전달했다. 일부는 분양 전환을 위한 잔금을 이미 납부한 상태였으며, 일부는 보증금 일부가 반환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피해 유형은 다양했지만, 공통된 건 ‘책임지는 주체가 없다’는 사실이다.
한 입주민은 “5년 넘게 기다려 내 집 마련을 했는데, 계약서도 있고 대금도 다 냈는데 소유권 이전이 안 된다”며 “아이를 키우는 집인데 경매 통보서가 날아오면, 대체 어디로 가라는 거냐”고 울먹였다.
입주민들은 특히 순천시가 국토부, HUG(주택도시보증공사), 권익위 등과 협조해 ‘임차인 보호 행정’을 진행해온 점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그 결과, HUG가 보증한 일부 임대보증금의 반환이 가능해진 가시적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부분은 크고 복잡하다.
순천시는 이번 면담을 계기로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내놨다. ▲해당 은행에 대해 송보건설을 상대로 기금 상환 조치를 촉구하고, ▲입주민 대상 경매 집행의 일시 보류를 요청하며, ▲국토교통부, HUG, 임대사업자, 해당 은행이 모두 참여하는 공식 간담회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노관규 시장은 “입주민들이 각기 다른 피해 유형일지라도 힘을 합쳐야 한다”며, “관계기관 제도개선 요청, 해당기관 감사청구, 순천시 법률 검토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 시민들의 피해가 조속히 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고 전했다.
이번 사태는 아파트 분양 전환 과정에서 드러난 임대주택 정책의 사각지대, 주택도시기금 회수 시스템, 보증 체계의 허점 등이 맞물린 구조적 문제다. 무엇보다, 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제도 밖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이라는 사실이다.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구조의 임대주택 분양전환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LH나 민간 임대사업자들이 주택도시기금 보증을 활용해 사업을 운영하다가, 자금난에 빠지면서 ‘보증금 반환 문제’와 ‘근저당 미말소’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 임차인 또는 실입주민이다.
이번 순천시의 대응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보기 드문 적극 행정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지방정부의 역할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중앙정부 차원의 보증 체계 개선, 사업자 부도 시 대응 매뉴얼 강화, 입주민 권리보호 제도 보완 등이 병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