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이창호 기자 | 박시우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내가 어두운 그늘이었을 때』(걷는사람)를 세상에 내놓았다. 첫 시집 『국수 삶는 저녁』 이후 무려 10여 년 만에 도착한 이 책은, 길었던 공백을 뚫고 다시 언어의 자리로 걸어 들어온 시인의 다짐이자 고백이다. 등단 30여 년의 궤적 속에서 긴 침묵을 견뎌낸 끝에 다시 내민 그의 언어는, 이제 ‘귀환’이라는 이름으로 독자 앞에 서고 있다.
박 시인은 1989년 《실천문학》 봄·여름호에 집단창작시를 발표하며 시단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꾸준히 시적 사유를 이어갔으나, 어느 순간 언어와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 채 오랜 공백기를 맞았다. 그는 이를 두고 “한동안 무기력증에 빠졌다. 진부한 언어와 낡은 서정에 시를 쓸 수 없었다”라고 돌이킨다. 그럼에도 다시 펜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로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위로는 음악”이라고 말한다. 이 짧은 고백은 시집 전체의 정조를 규정하는 문장처럼 울려 퍼진다. 실제로 이번 시집의 곳곳에는 음악적 울림이 리듬처럼 배어 있으며, 언어는 악보 위 음표처럼 흐른다.
『내가 어두운 그늘이었을 때』는 총 4부로 짜였다. 시인은 현실을 고발하거나 목소리를 높이기보다는, 음악이 배경이 된 무대 위에서 고통과 주변부의 삶을 고요하게 바라본다. 노동자들이 발전소 굴뚝에 오른 풍경을 담은 「공소」, 삶의 내장을 은유로 드러낸 「순대 타운」은 고통과 애도의 언어가 어떻게 예술과 맞닿는지를 보여준다. 바흐, 글렌 굴드, 베토벤이 소환되는 순간들 또한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적 호흡의 토대가 된다. 음악과 시가 하나의 호흡으로 엮이는 장면에서, 그의 언어는 다시 살아 움직인다.
평단은 박 시인의 이 귀환을 반기고 있다. 문종필 평론가는 그를 두고 “음악을 껴안은 채 이곳을 바라보는 리얼리스트”라 명명하며, 현실의 어둠을 감싸안는 그의 태도에 주목한다. 시인 류 근은 추천사에서 “우리 시대의 시가 주소지를 잃고 시인마저 모두 사망했을 때, 박시우는 드디어 사람의 음성으로 돌아와 시의 분명한 별자리를 노래한다. 전설과 신화에서 현실의 시인으로 귀환한 그의 시를 읽으며 나는 운다. 아름답고 그리워서 운다”라고 적었다. 이는 이번 시집이 단순한 작품집이 아니라, 문단 안팎에서 ‘귀환 선언’으로 읽히고 있음을 웅변한다.
무엇보다 박 시인 자신이 이번 시집을 통해 내놓은 말은 더욱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는 “언어는 더 이상 개인의 서정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통을 함께 바라보고 나누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며, “음악처럼 고요하지만 단단한 울림으로 시를 쓰고 싶다”란 소망을 전했다. 그의 발언은 이번 시집이 자기 고백을 넘어, 시대와 고통을 함께 감내하려는 윤리적 실천임을 예고한다.
『내가 어두운 그늘이었을 때』는 결국 침묵과 귀환, 그리고 음악적 감각이 교차하며 빚어진 결실이다. 개인적 고통을 넘어 사회적 타자의 삶을 포용하고, 음악의 호흡을 언어로 번역한 이번 시집은, 박시우라는 시인이 여전히 우리 곁에 생생히 존재한다는 증표이자 새 출발점이다. 그늘의 시간을 지나온 그의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독자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다.
박시우 시인은 1989년 《실천문학》 봄·여름호에 집단창작, 2009년 《리얼리스트》 창간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국수 삶는 저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