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강매화 기자 |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가상자산을 제도권으로 편입하기 위한 이른바 ‘가상자산 2단계 법(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이 또다시 지연되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 대주주 지분율 제한을 둘러싼 논란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도입과 상장법인의 가상자산 거래 허용 등 후속 제도 논의도 사실상 멈춰 선 상태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이달 중 국회 제출을 목표로 했던 가상자산 2단계 법안은 잠정 연기됐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말까지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업계·정치권 간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일정이 해를 넘겼다.
2단계 법의 핵심은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가상자산의 발행과 유통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가상자산의 상장·폐지 절차 역시 거래소 자율이 아닌, 자본시장법에 준하는 규율 체계가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큰 쟁점은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은행 중심의 발행 구조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업계는 금융 당국의 인가를 받은 사업자라면 비은행권도 발행이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융 당국은 인가제를 중심으로 양측 의견을 조율 중이지만, 뚜렷한 합의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사와 빅테크의 가상자산 시장 진출을 허용할지 여부, 즉 금가분리(금융과 가상자산 분리) 원칙 완화 문제도 논쟁거리다. 업계는 금융과 가상자산의 결합 없이는 혁신이 어렵다고 보고 있지만, 규제 당국은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은행이 지분 과반을 보유한 컨소시엄 형태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그러나 가상자산 거래소 대주주 지분율을 15~20%로 제한하는 방안이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입법 논의에 다시 제동이 걸렸다.
정치권 변수도 남아 있다. 국민의힘은 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별도의 가상자산 2단계 법안을 발의할 방침이다. 여당 법안까지 제출돼야 국회 차원의 본격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입법 지연의 여파로 현물 ETF 도입과 법인 가상자산 거래 허용 논의는 시작조차 못 하고 있다. ETF 출시는 가상자산이 공식적인 기초자산으로 인정돼야 가능해 2단계 법 시행이 선행돼야 한다. 법인 거래 역시 지난해 하반기 3500여 개 법인을 대상으로 우선 허용할 계획이었지만, 현재는 2단계 법 이후로 검토가 미뤄진 상태다.
업계에서는 규제 공백으로 시장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2024년 1월 가상자산 ETF를 허용했고, 같은 해 6월에는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부 금융기관은 이미 지급·결제·정산에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역시 2024년 12월 가상자산 규제 체계인 미카(MiCA)를 도입하고 후속 입법을 추진 중이다.
국내 가상자산 제도화 논의가 장기간 표류하는 사이, 글로벌 시장과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