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 이원태 | 단풍으로 우거진 골프장에서는 경치와 풍광에 취하는 만큼, 동면을 준비하는 뱀과 곤충(벌과 털 진드기)을 주의해야 한다.
골프장은 숲과 잔디, 러프와 해저드(연못 주변에 서식하는 뱀)로 우거진 환경으로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다. 골프장 안전교육을 위해 방문하면 캐디들이 “뱀에 물리거나 벌에 쏘여 심한 경우 입원까지 하는 고객들이 있었다”는 속사정을 전하는 일이 꽤 많다.
뱀 물림 사고, 잘못된 지식이 심각한 손상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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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중순, 강원도 춘천의 ○○ 골프장 Par 5홀에서 63세 A씨가 친 드라이브 티샷이 강한 사이드 스핀을 먹고 크게 휘어지는 슬라이스가 났다. 공은 깊은 계곡의 풀숲으로 사라졌다. 골프공을 찾기 위해 숲속으로 들어간 그가 “뱀에 물렸다”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카트길로 뛰어나왔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불안감을 호소했다.
캐디의 침착한 현장 응급처치 후 병원으로 이송됐다. 다행히 병원에서 빠른 항독 치료를 받고 큰 부상 없이 완치할 수 있었다. 오른손가락에서 팔뚝까지 퍼런 멍 자국 같은 상처는 남았다.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최초 발견한 동반자와 캐디의 현장 응급처치, 골프장의 신속한 차량 이송으로 골퍼의 생명을 살렸다. 병원에서는 “가을철 골프장에서 뱀 물림과 벌 쏘임 사고가 빈번한 만큼 특히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뱀과 벌을 키운 장마와 폭염
올해는 유독 긴 장마와 고온다습한 폭염으로 인해 뱀과 벌의 개체수가 많아지면서 뱀에 물리거나 벌에 쏘이는 사고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강원도 정선의 한 주택가에서 B 씨(80세)가 뱀을 손으로 잡다 물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숨졌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해마다 전 세계에서 8만1천∼13만 8천 명이 뱀에 물려 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평균 매일 200명이 넘으며, 5분에 1명씩 각지에서 50명이 뱀에 물리는 셈이다. 이중 절반인 25명에서 뱀독으로 인해 4명이 영구 불구가 되고 1명이 사망한다. 1년에 40만 명이 뱀에 물려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는 얘기다.
WHO는 뱀에 물리는 사고를 “숨어있는 세계 보건 위기”로 지정하면서 각국 정부에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실제로 WHO는 ‘소외된 질환 목록’에 ‘뱀에 물린 것(snake bite)’ 항목을 등록했다.
사망률 낮지만 방심은 금물
국내에 서식하는 16종 중 4종이 독을 가진 독사에 해당한다. 살무사, 쇠살무사(불독), 까치살무사(칠점사), 유혈목이(화사)는 맹독사로 살무사 계통으로서 혈액 독을 지니고 있다.
전신 및 호흡 마비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신경독을 가진 해외의 독사(코브라, 방울뱀, 산호뱀 등)와 달리, 우리나라 독사들은 혈액 독이므로 생명의 위험까지는 가지는 않는다.
독사에 물리면 못에 찔린 것처럼 물린 부위에 독니 자국이 보이는데, 이러한 자국이 없으면 독사가 아니므로 조금은 안심해도 된다. 실제 라운드 도중 독사에 물렸더라도 사망률은 거의 없기(0.1% 미만)에 흥분하지 않고 빠른 응급처치 후 병원으로 이송하도록 한다. 물론 방심은 금물이다. 특이한 경우에는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뱀은 고의를 구분하지 못한다
뱀은 의도적으로 사람을 물가나 추격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을 만지거나 밟으면 누구도 용서하지 않고 강력한 독으로 공격을 한다. 인간은 뱀을 무서워하지만 실상 뱀이 더 인간을 더 무서워한다. 사실 뱀의 속성을 보면 번식기가 아니면 기본적으로 온화한 성격이고 사람을 무서워하기에 먼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뱀이 골퍼에게 공격하는 경우는 자신도 모르게 뱀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숲속에서 긴 러프에서 분실구를 찾기 위해 다니다가 또는 실수로 뱀을 밟았다든지, 골프채로 풀 속을 헤집다가 뱀을 건드렸다가 뱀의 공격으로 뱀에 물리는 것이다. 골프장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뱀 물림 사고는 분실구를 찾기 위해 숲속을 뒤질 때 뱀을 자극하여 물리는 사고다.
뱀이 위험을 느끼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공격성을 띤다. 일반적으로 독이 없는 뱀은 포획물에 덤벼들어 몸통으로 감아 죄어서 질식시켜 먹이를 통째로 삼키지만, 독사는 독니로 문다. 특히 가을철 뱀은 겨울잠을 준비하기 위한 사냥을 하기 때문에 공격성이 가장 높다.
“뱀이다!” 피하는 게 상책
분실구를 찾기 위해 풀 속에서 뱀을 본다면 자극하지 않도록 하고 즉시 피한다. 우리나라에서 서식하는 누룩뱀, 구렁이, 실뱀, 유혈목이, 무자치 등 독이 없거나 비교적 위험도가 낮은 뱀들은 골퍼가 접근하면 먼저 도망간다.
하지만 독사, 살무사, 쇠살무사, 까치살무사와 같이 독이 강한 뱀들은 가까운 거리라도 잘 도망가지 않고 공격성을 띠기 때문에 피하거나 자리를 뜨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골프장에서는 뱀이 자주 출현하는 곳에 위험 푯말을 설치해두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지만 않아도 위험이 확 줄어든다.
가을철에는 공이 페어웨이를 이탈하면 찾기를 포기하는 게 현명하다. 걸레는 빨아도 걸레고 독사는 작아도 독사다. 소탐대실이다. 분실구로 처리된 아까운 공 하나를 찾기 위해 숲속을 헤매다 보면 결국 독사의 먹잇감이 될 확률은 올라간다. 숲속으로 날아간 골프공을 “통닭 한 마리 값”이라면서 끝까지 찾고야 마는 한국인 특유의 공에 대한 집착 따위 이번 가을부터 버리자.
부득이하게 뱀의 서식지로 의심되거나 깊은 러프에서 공을 찾을 때는 발밑을 잘 살피도록 한다. 이때 가능하면 아이언 골프채로 풀 속을 헤집는 게 좀 더 낫다. 골프화는 발목까지 덮인 것을 착용하고 두꺼운 양말을 신는 게 좋다.
두꺼운 스패츠를 착용하거나 발목이 긴 안전화와 길고 두꺼운 양말을 신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뱀들은 방울 소리에 도망간다고 하니 신발에 방울을 다는 방법도 좋은 아이디어다.
뱀 물림 사고, 속도가 생명
동반자가 뱀에게 물렸다면 응급처치 속도가 곧 생명이다. 골퍼 자신 또는 동반자가 뱀에게 공격받았다면 최대한 뱀의 공격 거리에서 벗어나 응급처치를 한다. 뱀의 종류를 안다면 치료 때 도움은 되지만 굳이 뱀의 종류를 알 필요는 없다.
①제일 먼저 안정이 우선이다. 당황한 동반자를 심리적으로 안정시킨다. 흥분하면 혈액순환이 빨라져 독이 체내에 더 빨리 퍼질 수 있다. 움직여도 독이 더 빨리 퍼질 수 있기에 동반자를 뛰게 하는 등 이동시키지 않는다.
②즉시 현장 처치를 한다. 가을 뱀은 구강 안에 수많은 세균이 있다. 물린 부위를 (캐디의 응급약) 씻고 얇은 멸균 드레싱으로 덮는다. 상처 부위를 압박하고 상처 부위가 심장보다 낮게 위치하는 게 좋다. 지혈은 물린 상처보다 5㎝ 정도 윗부분을 묶어서 정맥을 차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때 지혈대는 3㎝ 이상의 폭의 크기를 쓰고, 시간을 기록하면 더 좋다. 단, 너무 강하게 조이면 동맥혈관의 혈류 흐름을 막아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응급처치로는 권장하지 않는다.
응급실에서는 환자에게 뱀독의 독성을 중화하는 항체가 들어간 항뱀독소(해독제)를 투여하는 게 일반적이다. 사고 후 3시간 이내에 항뱀독소를 투여해야 뱀 독성으로 인한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③가까운 병원으로 이송, 항독처치를 받는다. 현장 응급처치를 하였더라도 매우 위험한 상태이기 때문에 빠르게 119에 연락하여 병원으로 이송한다. 대부분의 골프장은 산중에 위치하기 때문에 119를 기다리다 보면 골든타임을 놓치기 때문에 골프장 차량으로 최대한 빠르게 병원으로 이송한다. 이때 병원에 사전연락하여 준비하도록 하면 더 좋다.
땅꾼 고용하는 골프장들
경기도 소재 B 골프장은 최근 전문적으로 뱀을 잡는 ‘땅꾼’을 고용했다. 갑자기 이렇게 많이 뱀이 증가한 이유로는 뱀 포획을 법으로 금지해 뱀 식용이 줄어들면서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멸종 위기종에 해당하는 뱀을 포획하거나, 불법으로 포획한 뱀을 사용해 만든 음식과 가공품을 취득하고 보관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결국, 이렇게 증가한 뱀들이 수풀이 우거진 러프 구역뿐 아니라 페어웨이, 심지어 골프 카트가 다니는 길, 그린에까지 나타나면서 골퍼들의 항의가 늘어나 대부분 골프장은 뱀 기피제 및 뱀 퇴치기까지 설치하면서 뱀으로 인한 안전사고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실제로 뱀과 직접 부딪치는 골퍼의 주의가 더욱 요망된다.
소방청, 벌 쏘임 사고 주의보 발령
소방청은 지난 7월부터 ‘벌 쏘임 사고 주의보’를 발령했다. 올해 벌 쏘임으로 사망자가 3명이나 발생했다. 지난달 강원도 횡성에서 어깨 부위를 벌에 쏘인 50대 여성이 숨졌고, 같은 달 28일에는 전남 고흥에서 60대 남성이 지붕 처마 보수작업 중 벌에 쏘여 사망했다. 2017년부터 5년 동안 벌에 쏘여 응급실은 찾은 사람은 5천450여 명으로 응급실은 찾은 뒤 입원까지 한 환자는 151명이었다. 이 중 24명이 숨졌는데 사망자 15명은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숨졌다(자료, 질병관리청).
특히 말벌에 쏘였을 때 호흡 불안은 물론 심한 경우 의식 저하로 사망하기도 한다. 벌침이 피부에 남아 있지 않아도 맹독성이 있어서 노약자의 경우 쇼크로 인해 심장마비로 사망할 수도 있다. 말벌의 독성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과민성 쇼크’가 발생하면 1시간 이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얼마 전 경남의 ○○골프장에서 제초 작업하던 인부가 벌에 쏘였다. 단순 호흡곤란 증세라 별생각 없이 휴식을 취했는데, 이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뒤늦게 구급대가 도착했을 땐 이미 맥박이 없었고, 심폐소생술 후 즉시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골프장은 적절한 응급처치를 하지 않은 대가로 무려 1억 7천만 원을 변상하게 됐다.
벌에 쏘였을 때 응급처치
벌에 쏘인 자리를 비눗물로 깨끗하게 씻은 후 상처 부위의 옷과 장신구를 제거하고, 신용카드 등을 사용해 신속히 벌침을 제거한다.
벌침을 제거했으면 얼음찜질을 하고 통증과 부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진통소염제나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른 후 그늘에서 안정을 취한다. 응급약품이 없으면 찬물 찜질이나 식초를 사용해도 된다.
통증을 진정시키기 위해 아스피린 등 진통제를 경기 도우미에게 요청하여 복용한다. 알레르기 반응 등이 나타나면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한다. 심할 때는 스테로이드 연고를 발라 부종과 가려움증을 가라앉힌다.
벌 쏘임, 이렇게 예방한다
벌은 향에 민감하다. 골프장에서 향기가 진한 향수와 화장품 사용은 피한다. 화려한 색상(노랑>파랑>빨강>흰색)의 의류도 피하는 게 좋다. 벌은 매끄러운 천에는 잘 달려들지 않지만 거친 결로 짜인 옷에는 잘 달려든다.
사탕이나, 청량음료와 같은 단 음식물도 벌을 끌어당긴다. 벌이 가까이 날아오면 손이나 팔로 쫓지 말고, 몸을 낮추거나 움직임을 작게 한다. 골프복도 긴 소매 상의와 긴바지를 착용하도록 한다.
목 긴 골프화에 장갑, 양말 등으로 피부 노출도 최소화하고, 풀 위에 옷을 벗어두거나 눕지 않도록 한다. 벌집을 건드리거나 접촉으로 인해 벌이 공격을 하면 머리 부위를 감싸고 신속하게 20m 이상 떨어진 곳으로 피한다.
‘아나필락시스’ 반응에도 주의
벌독 알레르기가 있는 골퍼가 벌에 쏘이면 히스타민이 과도하게 분비된다. 이때 혈액이 과도하게 빠져나오면서 혈압이 낮아지고 몸이 붓게 된다. 부작용이 심해지면 쇼크가 올 수 있는데 이를 ‘아나필락시스 반응’이라 한다.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리며 구토와 설사, 호흡곤란, 전신발작, 의식장애 등이 나타난다. 쇼크를 동반하면 의식을 잃을 수 있기에 바로 119에 신고 후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아나필락시스는 치료를 받더라도 후유증이 남을 수 있으며 앞으로 이런 비슷한 경험을 겪는다면 똑같은 증상으로 더 많은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쓰쓰가무시 균 감염된 유충 물림사고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C 씨(58세) 9월 말 경기도 ○○ 골프장에 라운드 다녀온 후 따끔거리고 가려운데 모기에 물린 것과는 다른 느낌으로 밤잠을 설쳤다.
분실구를 찾기 위해 풀 속을 헤치다가 벌레에 물린 것은 확실한데, 모기 정도로만 기억하고 무심하게 넘긴 것이 원인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가려움증에 오한, 고열을 넘어 기침, 구토, 근육통 증상까지 시작되자 병원을 찾았다가 ‘쓰쓰가무시병 균에 감염된 털 진드기 유충’에 물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별일 아니라고 치부하다가 일을 키운 것이다. 심한 경우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기에 증상 발현 시 즉시 병원 치료를 받는 게 좋다.
쓰쓰가무시병은 세균을 가지고 있는 진드기의 유충이 사람을 물 때 발생하는 급성 열성 질환으로 털 진드기 유충은 사람이 호흡하는 냄새를 감지해 피부에 붙어 흡혈하는 과정에서 유충에 있던 오리 엔티아 쓰쓰가무시병 균에 감염되는 것이다.
1~3주간 잠복기를 거쳐 오한, 고열, 두통 등 초기 증상이 나타난다. 이후 기침, 구토, 근육통, 복통, 인후통 등이 발현되고, 전신에 걸친 발진과 함께 물린 부위에 전형적인 ‘부스럼딱지(피부병을 앓아 생긴 딱지)’가 생긴다. 버려두면 전신에 걸쳐 발진이 일어나고 심한 경우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
단순 감기라고 치부해 버려두면 큰일을 치를 수 있다. 합병증이 없고, 중증이 아니라면 별도 치료를 하지 않더라도 수일간 고열이 지속하다가 회복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심한 경우 뇌수막염, 장기부전, 패혈증, 호흡부전, 의식 저하 등으로 이어져 사망하기도 한다.
쓰쓰가무시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털 진드기 유충에 물리지 않는 게 최우선이다. 라운드 전 철저히 준비한다. 라운드 시 긴소매, 긴 양말 등으로 피부 노출을 최소화하고, 진드기 기피제 등을 휴대하며, 꼭 사용하도록 한다. 라운드 도중 벌레에 물렸다면 라운드 후에라도 즉시 전문의에게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