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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자이저’ 장하나의 잔혹한 시절

지이코노미 박준영 기자 | 요즘 우리가 잊고 있는 이름이 하나 있다. 장하나다. 2021년만 해도 장하나는 설령 우승이 없더라도 꾸준히 Top10 명단에 자리를 잡는 선수였다. 최다 Top10 진입, 10년 연속 우승, 누적상금 첫 50억 원 돌파라는 타이틀을 가진 KLPGA의 간판이었다.

 

당시 약 7년간 KLPGA 대회장을 취재해오던 본지 사진기자는 늘 “KLPGA투어에서 가장 밝고 화끈한 선수”로 장하나를 꼽곤 했다. 그는 “장하나는 언제 인사를 건네도, 카메라를 들이대도 항상 활기차게 반응해준 선수였다”고 했다. ‘하나자이저’라고 불릴 만큼 에너제틱한 선수가 장하나다. 본연의 성격이기도 했겠지만, 에디터에게는 그동안 쌓은 성과와 관록에서 나오는 ‘여유’로 느껴졌다.

 

 

부진의 시작은 스윙 교체
2021년 장하나는 1984년부터 2021년까지 KLPGA투어 선수를 통틀어 ‘생애 통산 상금 획득’ 부문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었다. 2021시즌 직전의 통계를 보면 장하나는 누적상금 4,753,910,046원으로 2위 고진영(약 33억 원)과 14억 1,784만 1,463원 차이를 벌리고 있었다.


개막전인 ‘롯데렌터카 여자오픈’과 ‘넥센 세인트나인 마스터즈’에서 연속 준우승을 하며 시동을 걸었다. 같은 해 6월, 장하나는 총상금 8억 원의 ‘KLPGA투어 롯데오픈’에서 연장 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했고, KLPGA 사상 첫 통산 상금 50억 원 돌파라는 금자탑을 세우기에 이른다. KLPGA투어 통산 14승째였다.


2022년 4월 ‘넥센·세인트나인 마스터스’에서 장하나는 유해란(16언더파), 권서연(15언더파)에 이어 14언더파로 박결과 함께 공동 3위에 올랐다. 2022시즌에도 장하나의 위상은 식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그게 2022시즌 장하나의 최고 성적이자, 마지막 Top10 진입이었다. 장하나는 이 당시 시즌 중이었음에도 “스윙을 바꾸는 실험에 나섰다”고 고백했다.

 


“우승했을 때도 부상은 있었다. 10년 넘게 함께한 짐짝 같은 것. 부상 때문에 성적이 나지 않은 건 아니다.”

 

장하나는 팔목과 발목 통증을 고질병으로 갖고 있었다. 때론 절뚝거리며 라운드를 도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가 스윙을 바꾸려 했던 건 부상 때문만은 아니다.


“그간 골프가 지루했다”고 고백한 장하나는 “부상이 있더라도 최대한 충격이 덜한, 보다 쉬운 골프를 추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시즌 중이라는 점이었다. 시즌 중에 스윙을 바꾸는 일은 아마추어들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장하나의 ‘시각’은 조금 달랐다.

 

“골프 한두 해만 더 뛰고 그만둘 게 아니니 바꾸기로 했다면 당장 실행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시각이 아니라 ‘시야’가 달랐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장하나다운 화끈함이기도 했다. 그렇게 2022시즌 부진이 시작됐다. 골프라는 게 최상위권에 올랐다가도 언제든 급전직하할 수 있는 종목이지만, 부진이 길어지면 무게감이 달라진다.

 


시즌 중 스윙 교체, 후회하지 않는다
장하나는 그동안 업라이트 한 스윙을 했다. 페이드를 구사했는데, 이게 몸에 무리가 됐다. 플랫한 스윙으로 변화를 줬고, 드로우 구질을 지향하기로 했다, 다만 샷이 완벽하게 구사되지 않아 성적에 어려움을 겪었다.

 

“성적은 처참했지만,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 개선될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스윙을 익히고 완성해나가는 과정도 소중한 자산이다. 무엇보다 이제 거의 완성 단계다.

 

2023시즌에는 본연의 파워풀하고 드라마틱한 경기 그리고 세리머니를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몸이 근질근질하다(웃음).”


2022시즌이 종료되고 “30대에 들어서며 호된 신고식을 치른 것 같다”는 장하나는 “대신 많이 배운 시간이 됐다. 남은 30대를 즐겁게 보낼 밑바탕이 될 것”이라고 했었다. 그 어려웠던 2022시즌 뒤에도 장하나는 밝았고, 희망을 말했다.

 

 

바닥인 줄 알았더니 지하실이 있었다
그렇게 2023시즌이 시작됐다. 장하나는 28개 대회에 참가했지만, 컷 통과는 2회에 그쳤다. 나머지 26개 대회 중 컷 탈락은 17회였고 나머지 9회는 기권이었다.

 

2022년 마지막 경기이자 2023시즌 첫 경기인 ‘PLK퍼시픽링스코리아 챕피언십 with SBS Golf(2022년 12월)’에서는 9오버파로 컷 탈락을 했다. 당시 ‘은퇴설’에 대해 “연습할 때보다 실전에서 변화를 만들어 내는 데 호기심이 있다. 그걸 실천했고 거기에는 위험부담이 따른다. 그래서 성적이 안 좋았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어차피 본격적인 개막전을 치르기 전까지는 동계훈련도 있고, 남은 기간도 길었다. 프로 선수, 그것도 정점을 찍어본 프로가 이 정도의 부진을 겪고도 밝을 수 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었다.

 

2023년 4월, KLPGA투어가 본격적으로 개막했다. 국내 개막전 ‘롯데렌터카 여자 오픈’에서 장하나는 1R 7오버파로 기권했다. 이어진 ‘메디힐·한국일보 챔피언십(4/13)’에서는 1·2R 합산 21오버파. 그렇게 장하나는 5월까지 컷 탈락 혹은 기권의 연속인 지옥 같은 시절을 버텨갔다.

 

다행히 5월 17일 열린 ‘2023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는 공동 56위로 올 시즌 첫 상금을 수령했다. 컷 오프가 없는 대회이고, 상금액수도 3,195,000원으로 크지 않았지만 비교적 일찍 물꼬를 틀 수 있을 것 같았다.

 

6개월이 지났다. 최종전인 ‘SK쉴더스·SK텔레콤 챔피언십 2023’에서 장하나는 2023시즌 처음으로 스트로크 룰 대회 컷 통과에 성공한다. 악천후로 축소 운영된 이 대회에서 장하나는 올해 처음으로 3라운드 무빙데이 경기를 치렀다.

 

결과는 3라운드 합계 34오버파. 상금 260만 원. 누적상금 50억 원을 역대 최초로 돌파한 장하나가 올해 벌어들인 상금은 5,795,000원이다. 그렇게 장하나의 2023시즌이 끝났다.

 

이 선수가 이런 선수가 아닌데

장하나의 올 시즌 기록은 상금 5,795,000(123위), 평균 타수 80.7317(120위), 드라이브 비거리 203.9643(120위), 페어웨이 안착률 52.3897(119위), 그린 적중률 29.1328(120위).

 

 

특이한 타이틀도 하나 있다. 평균 퍼트수 1위(28.8049).

 

라운드 수 자체가 적고, 숏 게임보다는 롱 게임에서 부진을 겪고 있으니 레귤러 온을 하는 경우가 적어지고, 짧은 어프로치를 하게 되니 퍼트 수가 적어진 결과로 분석할 수 있다.


전년도 평균 퍼트수 1위가 우승이 없었을 뿐 꾸준한 활약을 보였던 박현경이었던 걸 생각하면, 다른 부문에서 최하위를 기록하는 장하나가 평균 퍼트수 1위를 했다는 아이러니는 묘하게 가슴이 아프다. 그만큼 롱 게임의 부진이 심각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장하나는 2016년 LPGA 진출로 국내 단 2개 대회에 참가해 28,955,000원을 벌었던 것과 데뷔 시즌인 2011년 98,514,765원을 벌었던 것을 제외하면, 부진이 시작되던 2022년에도 1억 원 넘는 상금을 벌었다. 지난 2년간의 지독한 슬럼프를 그의 전성기와 비교하는 건 할 짓이 못 된다고 느껴지지만, 자꾸 그의 영광의 시절이 떠오르는 건 그가 그만큼 임팩트있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경기를 끝내고 좌절감에 연습장을 가면, 너무나 정상적으로 잘 치고 감을 되찾았다. 다시 대회에 나가면 또 실망하고. 좌절과 희망의 연속이었고, 그래서 더 힘들었다.”


2022년 부진에도 웃어 보였던 장하나는 2023시즌을 마친 뒤에는 “힘들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장하나도 2년 전 선수 생활 더 오래 하겠다는 마음으로 스윙을 바꾼 것이 패착이었다고 인정했다.


“돌이켜보면 그게 욕심이었다. 올해까지 23년 골프를 했는데 익숙함의 소중함을 잊고 새롭게 도전했던 게 발목을 잡았던 것 같다.”


장하나는 다시 과거의 스윙폼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중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말처럼 쉽지가 않다. 주변에선 “폼 바꾼지 얼마나 됐다고 20년 가까이 했던 스윙으로 왜 돌아가지 못하냐”고 한다.


“골프 지긋지긋하다”
장하나는 “골프 지긋지긋하다. 이제 시즌이 끝났으니 좀 쉬고 싶다.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다”면서도 “오프 시즌 계획을 다 세워놨다”고 했다. 그는 1월 8일 베트남으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그는 “지금이라도 이 세계를 떠날 수 있다. 그래도 한번은 부활하고 떠나고 싶다”며 “장하나 이름(값)이 있지, 한번은 일어서고 갈 것”이라고 다짐을 밝혔다.


타이거 우즈가 커리어를 쌓는 동안 7번이나 스윙을 바꿨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도 시즌 초 한 대회에서 우승한 다음 스윙을 바꾸기로 했고, 약 1년간 우승을 하지 못했다. 본지 기술고문인 양이원 프로는 “프로선수라도 페이드에서 드로우로 구질을 바꾼다면 완전히 적응하는 데 최소 1년은 걸린다”고 설명했다. 대신 타이거 우즈는 1년 뒤부터 다시 7승, 8승을 올리며 바꾼 스윙에 적응한 모습을 선보였다.


타이거 우즈에게 그만한 시간이 들었다면 장하나의 실험은 아직 끝낼 때가 아닌지도 모른다고 하면 너무 가혹한 말이 될까.


2004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타이거 우즈는 어린이 클리닉에서 당시 초등학교 6학년생이던 장하나의 260야드에 달하는 드라이버 샷을 보고 “가르칠 것이 없는 선수”라며 감탄했다. 그런 선수가 만 31세까지 20년 가까이 ‘선수’로서 활동한 뒤 밝힌 속내가 “골프 지긋지긋하다”라니, 그 활력 넘치던 선수가 말이다.


남들이 뭐라든
장하나는 2년 전 자신의 각오와 도전을 결국 ‘패착’이었다고 인정했다. 그간의 부진이 그의 ‘고집’을 꺾은 것일까. 혹 주변의 기대감이나 대회 때마다 내리꽂히는 시선이 그를 꺾은 것은 아닐까. 누구보다 의연했던 장하나이기에 그런 걱정마저 든다.

 

그는 프로이기에 각오도, 도전도, 고집도, 인정도, 반성도 오로지 자기 몫이다. 그가 2년 전 가졌던 마음이 뭐고, 지금 가진 마음이 뭐든 오롯이 자기 안에서 나온 것이기를 바란다. 그게 KLPGA투어의 여러 타이틀을 가진 장하나라는 이름 석 자에 걸맞다.


골프의 레전드, 진 사라센도 무려 9년이나 슬럼프를 겪었다. 9년 뒤 그는 직접 개발한 최초의 샌드웨지와 타고난 장타력으로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고, 특유의 입담과 재치로 노년까지 방송인으로서 골프팬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장하나는 이제 2년이다. “한번은 일어서고 갈 것”이라는 장하나의 코멘트를 잊지 않고 기다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