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의 성악설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아기가 배가 고픈데 눈앞에 음식이 있다면 자기 입에 먼저 들어가나, 아니면 주변을 먼저 챙기나. 전자다. 이처럼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다. 다만 여기서의 ‘악하다’는 건 나쁜 놈, 못된 놈을 말할 때의 ‘악’과는 조금 다르다. 물론 해병대의 ‘악’과도 다르고.
성악설의 ‘악’은 인간이 본능을 우선하는 것에 대한 ‘표현’으로 이해하는 게 적절하다. 이건 사탐 일타강사 이지영의 설명이기도 하니, 반박은 그쪽으로 부탁한다. 어쨌든 모든 생명체는 당연히 생존본능에 따라 움직이게 돼 있다. 그러니 이기적이다.
다만 성악설의 의의는 인간이 악하다는 걸 증명하는 데 있기보다 ‘그렇게 때문에 사회의 일원으로서 교육받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증명하는 데 있다.
그러니까 인간의 본성이 선이냐 악이냐, 혹은 생명체로서 당연한 본성을 ‘악’이라고 말하는 게 옳으냐 그르냐 같은 논쟁보다는 본성을 거스르는 사회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 그걸 인정하지 못하면 교육이라는 건 그저 ‘틀’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거고, 쭉 자기 본성에 충실한 방향으로 살아갈 것이다.
반대로 내 본성이 그렇다고 인정해야 바뀌려는 노력도 할 수 있다. 스스로 인정해야 동기부여도 생긴다. 애석하게도 ‘노력해봤다’ 정도로는 바뀌지 않는 게 참 많다. ‘늘 노력 중’이어야 조금씩 바뀌는 정도다. 게다가 본성을 거스르려는 노력이기에, 내내 인내와 고통을 수반할 터다. 강한 동기부여 없이는 지속할 수 없는 이유다. 그 정도의 동기부여가 있어야 ‘중 . 꺾 . 마’도 생긴다.
그러니 최근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이 ‘인정하는 능력’인 것 같다. 자신의 부족함과 오류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능력 말이다. 게다가 이 능력이 바로 요즘 주목 받는 ‘메타인지’와 맞닿는 부분도 있다.
재미없는 얘기를 참 길게도 썼지만, 요컨대 ‘인정할 줄 알아야 성장할 수 있다’는 거다. 왜 골프 잡지에, 그것도 맨 앞장부터 철학 얘기를 늘어놓느냐면, 골프를 치는 데에도 통용될 것 같은 개념이라서다.
처음 골프채를 잡은 날을 떠올려 보자. 그러니까 우리가 처음으로 골퍼로 태어난 그 날 말이다.
우리의 스윙은 얼마나 악했던가! ‘모든 골퍼의 본성도 악하다’는 드립을 위한 빌드업이 맞다. 1997년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타이거 우즈는 본인의 스윙 영상을 보고선 승리감에 도취하는 대신 단기적인 성적을 포기하더라도 스윙 교정에 들어가기로 마음먹는다. 실제로 우즈는 그해 9월부터 1999년 2월까지 단 한 번 우승하는 데 그치지만, 1999년 봄부터 14개 대회에서 10승을 올린다. PGA투어 메이저 대회 우승이라는 명징한 결과물이 있음에도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찾아냈고 인정했다.
즉 우즈를 우즈로 만든 건 다름 아닌 메타인지였다. 내 스윙은 골린이의 본성에서 얼마나 멀어졌는가. 골프채라는 걸 처음 잡아본 날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날 이후로 그놈의 자유분방한 머리어깨무릎발무릎발을 옥죄어 ‘올바른’ 길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해보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것 같다. 부족함을 인정한 결과였다. 그런데 어느새, 그간 연차만 쌓여 물구력일 뿐인데, 골프를 꽤 잘 아는 노련한 골퍼라도 된 것처럼 굴고 있었다. 내 스윙이 여전히, 본성대로, 악하다는 걸 최근에 경험해서 이러는 건 아니다. 정말이다.
어쨌거나 다시 성악설로 돌아가서, 결국 남는 건 인정할 수 있느냐다. 인정하는 사람은 선해질 수 있다. 그러고 보니 골프만 그런 게 아니네.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인생사 전반에 다 통용되는 것 같다. 기억하자. 인정해야 나아갈 수 있다.
편집장 박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