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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통 트로트 교과서, “꽃놀이” 가수 문희옥을 만나다.

지이코노미 정길종 기자 | 데뷔 30년이 훌쩍 넘어버린 가수, 정통트로트의 교과서라고 수식어가 붙어있는 가수, 꽃놀이, 평행선 곡으로 시련을 이겨가며 자신을 뒤돌아보며 팬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가고 있는 문희옥씨를 만나기 위해 지난 9월 17일 경기도 김포에 있는 카페를 찾았다.

▲가수 문희옥, 경기도 김포, ‘별가까이’ 카페에서 인터뷰 / 사진촬영: 뉴스더원

햇빛이 밝게 비추는 창가에 앉아 기다리는 내네 80년대 동시대를 살았던 그녀는 브라운관 앞에서만 보았던 그녀는 어떤 모습일까? 잠시 생각하고 있을 즘 문희옥씨가 언니와 함께 나타났다. 꼿꼿한 걸음걸이 밝고 화사해 보였다. 인사를 나누며 그간 사연을 이야기를 들으며 이 험난한 세상을 모르는 어린 소녀와 같은 느낌과 30여 년 연예인 생활했던 가수가 이렇게 순수 만감이 교차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Q. 당시 데뷔가 쉽지 않았을 텐데, 고등학교 시절에
 문광여고 2학년 시절 봄 소풍 때, 반 대항 장기자랑에 친구들이 저를 뽑아줘서 대표로 나가 부른 노래가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라는 노래였어요. 제가 2등을 했고 카세트를 부상으로 받았는데 짝꿍이 헐레벌떡 다가와 “희옥아 교감 선생님이 너 가수 하면 되겠데, 말씀하셨어”. 그 후부터 공부도 안되고 해서 신문사에 근무하고 있는 둘째 언니에게 교감 선생님의 이야기를 했는데, 팔짱을 끼면서 “불러봐” 해서 조용필의 한오백년부터 이선희, 전영록 등 선배 가수들의 노래를 불렀어요. 그 후 언니는 한국일보사에 신대남 국장님을 소개해 국장님은 저에 손을 잡고 ‘사랑만은 않겠어요’, ‘오동잎 ’ 등 70년대 최고의 작곡가 안치행 선생님을 찾아가서 오디션을 받고 1~2년여의 고강도 트레이닝을 받고 19살에 데뷔했습니다.

 

Q. 가수 문희옥에게 청춘은  
생각해보면 없는 것 같아요. 19살에 데뷔를 해서 세상모르는 아이가 처음부터 너무 많은 이목을 받아서 관리받는 사람이 되어 저의 자유 생활이 없어서 청춘이랄게 별로 없었어요. 잠시나마 있다면 서울예대 시절 학과 동기들하고 수업 끝나면 주점에 가서 통기타 가수분들의 노래를 친구들과 떼창으로 노래하곤 했는데, 친구들이 주점 사장님한테 제가 왔다고 이야기하면 사장님께서 나와서 반갑다고 막 악수하고 그러면 친구들이 “사장님 안주 좀 더 주세요.” 친구들을 위해서 노래를 해주면 안주가 막 두 개 세 개씩 나오니까 그런 재미있는 학창시절은 있었어요. 그 외에는 거의 집, 방송, 공연, 행사, 그리고 종교활동 그렇게 살았어요. 씁쓸해요.

 

Q. 최고의 전성기라고 한다면
지금이 최고의 전성기입니다. 그래도 이야기한다면, 데뷔곡 ‘천방지축’을 부렸을 때 같아요. 팔도 사투리 메들리라고 각 지방의 방언을 가사에 넣어서 고향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기획물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방송에서 노래할 때는 표준어를 써야 하니까 팔도 사투리를 만들고 그다음에 ‘빈손’ ‘사랑의 거리’ ‘강남 멋쟁이’ ‘성은 김이요’까지 왕성하게 몇 년간 활동하다가 점점 트로트가 전통에서 댄스, 세미화 되면서 제 자리가 조금씩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죠.

 

Q. ‘트로트의 교과서’ 수식어가 붙었는데 에피소드가 있는지
트로트의 교과서라는 말이 쉬운 호칭은 부담스럽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해요. 노래에서 제일 중요한 게 발음인데 많이 혼나면서 배웠거든요. 고2, 3 때 기본을 선생님에게 탄탄하게 배워서 배운 그대로 적용하고 해석해 부르는 건데 PD 선생님들이 후배들에게 문희옥씨 동영상이나 자료보고 그렇게 연습해, 정석으로 해 이런 말씀들을 많이 하셨데요. 이런 말들이 돌아서 희옥이는 노래를 교과서처럼 한다. 이런 말들이 선배님들 사이에서 회자가 되어 후배들은 또 그걸 본받으려고 하고 그렇게 해서 트로트의 교과서라는 수식어가 붙었는데요. 감사하지만 굉장히 불편하고 힘든 수식어입니다.

 

Q. 트로트 잘 부르는 방법이 있나요.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요. (트로트는 TROT 미국에 한 장르고 리듬) 트로트 리듬이 우리 한국 정서에 참 잘 맞거든요. 정석대로 부르면 돼요. 그 리듬 안에서 막 놀면 돼요. 내 마음대로 박자를 늘렸다. 땡겼다. 하지 말고, 그 리듬 안에서 내 모든 재능을 다 발휘해야 하는 건데, 사실은 제일 어려운 게 트로트예요. 진짜 어려워요. 틀 안에서 멋과 맛을 본인의 음색으로 막 입히면 돼요. 그리고 노래는 연기에요. 사실 이렇게 얘기하는 나도 모르고 듣는 분들도 모를 거예요. 정답 없습니다.

▲‘꽃놀이’ 평행선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갓 문희옥 인터뷰 현장 / 사진촬영: 뉴스더원

Q. 기억속에 제일 남는 공연이 있다면
소련(러시아) 공연이죠. 10여 분의 선생님, 선배님, 친구 등 함께한 공연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故고운봉 선생님, 故남보원·현철선·태진아·설운도 선배님들과 김지혜·주현미 언니, 동갑내기인 친구 김완선 등 함께 최초로 공산국가인 소련 사할린을 갔어요. 당시 제가 ‘강남 멋쟁이’를 불렀을 때였으니까 30년 됐나? 그 추운 곳에서 동포분들이 소련사람들 같은 차림새에 신문 비슷한 봉투에 꽃들을 둘둘 말아 들고 공연 하루 전부터 날을 세운 듯이 공연장에서 우리 한국 동포 가수들을 기다렸었어요. 선배님들이 공연하는데 관객분들이 우시는데 저는 스물하나 이쯤에 전쟁도 잘 모르고 인생의 아픔을 잘 몰랐던 입장에서 노래해서 그런지 공연장이 울음바다이고 감동의 도가니였는데 그분들처럼 저는 생생하게 그 감정을 못 느꼈던 거예요. 시간이 지난 지금 내가 참 의미 있는 곳에 공연을 다녀왔구나, 공산국가에 가서 동포분들 앞에서 내가 노래를 했구나, 그 공연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Q. 몸매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엄마를 닮아서 그래요. 엄마 연세가 팔십오 세인데요. 옛날 분 치고 키가 크시고 얼굴이 작은 데다가 어깨가 좁고, 허리가 위에 있고 힙사이즈가 크고 종아리 발목이 가늘어요. 저희 남매는 2남 3녀인데 저만 우리 엄마 몸매를 닮았어요. 타고난 몸 그대로이기 때문에 제일 먼저 엄마에게 감사하고요. 그다음엔 먹고 싶은 것 조금 줄이는 거? 제가 보통여성의 1.5배를 먹어요. 그런데 희한하게 공연이 있다고 하면 안 먹혀요.

 

그리고 요즈음 모델워킹은 배우고 있어요. 건강관리도 있지만, 가수라는 직업은 이목을 끄는 사람인데 무대에서 ‘문희옥씨를 소개합니다’ 했을 때 노래에 맞춰서 멋지게 무대로 나가고 싶은 생각에 집에서 거울을 앞에 놓고 거실에서 모델들이 머리 위에 책을 올려놓고 걷는 연습을 해서 나갔더니 평이 괜찮아서 시니어 모델분들에게 건강과 무대 매너를 가르치는 유리아 선생님이라고 그분을 찾아가서 힘들게 배운 몇 가지로 무대뿐만 아니라 건강과 몸매관리를 잘하고 있습니다.

 

Q.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소소히 바쁘신 것 같아요.
소속사를 옮기고 마음에 안정을 찾았어요. 제가 뒤돌아보면 팬들에게나 저 자신을 위해 못한 것들이 참으로 많았던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어린 나이에 가수로 데뷔하여 바로 스타덤에 올라 기획사 관리에 의해 스케줄이 맞추어 졌고,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많았으나, 어떻게 하는지도 할지도 몰랐던 것 같아요. 그런데 소속사 더원 이해용 대표님께서 봉사하는 것을 알고 은근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대표님께 상의했더니 함께 찾아간 곳이 경기도 부천에 있는 무료 급식소에서 ‘사랑의 송편 나눔’에 참여했어요.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조금씩 늘려 가보려고 해요. 너무 행복하고 좋았거든요. 저는 받기만 했잖아요. 팬들의 사랑을..

▲ 가수 문희옥, 사)열린낙원 주관, 부천 무료 급식소를 찾아 봉사활동을 ”사랑의 송편나눔“ 현장에서

Q.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신곡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10월에 발표할 예정이고요. 12월에 개인 콘서트 “꽃놀이”라는 타이틀로 기획하고 있습니다. 지금 부르고 있는 곡 ‘꽃놀이’가 가장 문희옥다운 노래라고 주변에서 이야기하고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기에 그렇게 제목을 붙어 봤습니다. 그리고 변신하고 싶었습니다. 전통트로트 가수 문희옥보다는 멀티가수가 되고 싶어졌거든요. 팬들은 눈치를 챘는지 모르지만 “평행선”은 문희옥과 동떨어진 노래예요. 정통과 현대의 기술을 가진 노랜데요. 평행선은 정통기술이 아닌 현대기술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시작으로 저는 다양한 장르의 노래 발라드, 더 나아가 뮤지컬도 도전하고 싶어요. 가수는 노래로 말하잖아요.

 

Q. 문희옥이 생각하는 트로트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변하고 싶지만, 저의 정체성은 정통트로트 가수에요. 우리 한국의 정통트로트를 잘 불러드리는 것이 제가 할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 이미자 선배 뒤를 잇는 정통트로트, 트로트의 교과서라고 수식어가 붙은 제가 잘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손가인, 임영웅, 영탁 등 후배들이 배출되어 나오는 후배들의 손을 제가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원로 정통가요세대와 지금 2021년 현대 트로트세대에 제가 그 가운데 있거든요. 그 가교역할을 해야 할 사명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선후배님들과 손잡고 가교역할을 잘하는 그런 가수로 남고자 합니다. 

 

Q. 독자들과 팬들에게 한마디
독자님들과 팬분들과 저를 아껴주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가 있듯이 저 역시 최근에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낸 시간에 너무나 감사한 분이 계셔서 그분에게 먼저 인사드리는 것이 옮은 것 같아 소개합니다. 저를 위해 밴드 활동하는 분들이 계시는지 몰랐어요. 조카가 어느 날 알려줘서 알았어요. 한 1000분이 넘게 저를 위해 활동하고 있었어요. 성함이 김경호 회장님인데 그분이 단독으로 밴드에 팬클럽을 만들고 한분 한분 들어오신 분들이 꾸준히 저의 노래를 올리시고 제 기사를 올리시고 있었어요. 나중에 연락이 돼서 감사함을 전하고 팬 미팅에서 좋은 만남을 가졌는데 누구나 힘든 시기는 있다. 라고 하며, 문희옥이라는 그 가수 자체가 너무 좋다고 하셨어요. 지금은 1100분으로 해가 갈수록 더 늘어가고 있어서 저 모르게 팬 관리해주시는 김경호 회장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구독자님, 팬분들에게 앞으로 더욱 전진하여 꼭! 보답하는 가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많은 분들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요. 힘내시고요. 풍성하고 건강한 한가위 추석 명절되세요. 말을 맺었다.

 

본 기자가 만나본 문희옥씨는 청아하고 맑은 가수였다. 그녀가 잠시의 시련은 있었으나 예전의 문희옥으로 다시 돌아와 동시대를 살았던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가수로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