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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수로 만나는 세계명화] 반 데르 헬스트 〈뮌스터 평화조약기념 암스테르담 시민수비대 연회〉

혼을 담은 손으로 수놓은 ‘혼자수’ 이용주 작가가 원작가가 표현 못 한, 숨겨지고 변화하는 빛을 담아 원작과 같은 규격의 혼자수로 작업한 세계명화의 이야기를 전한다.

 

바르톨로메우스 반 데르 헬스트는 누구인가

 

네덜란드의 화가로 1613년 네덜란드 하를럼에서 출생, 1670년 57세로 암스테르담에서 사망했다.

 

어린 나이에 암스테르담에 정주해 니콜라스 피케노이의 제자가 되었으며, 그곳의 지배계급이나 길드의 집단 초상화를 그리는 초상화가로 젊은 나이에도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그의 초상화 작품은 맑고 부드러운 색채와 뛰어난 빛의 명암 표현이 조화로워 당시 암스테르담 주요 인사들의 초상화를 모두 도맡아 그렸다.

 

다른 예술가와의 협업도 활발했다. 해양 및 풍경 화가인 루돌프 바쿠이젠, 동물 화가 얀 침례 위닉스와 함께 〈양과 염소와 함께 있는 양치기 소년〉을 작업했는데, 이 작품 속에서 그는 양치기 소년을 그렸다. 그 외 몇 점의 성화와 신화적 주제, 장르화도 그렸다.

 

2차 세계대전 약탈로 화제

그의 작품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약탈당해 화제가 됐던 작품들이 더러 있다.

 

독일군이 암스테르담 점령 시 〈죽음의 어린 소년〉을 약탈했다가 전쟁 후 네덜란드 정부에 반환했고, 1943년 프랑스의 슐로스 가문에서 약탈당한 수백 점의 작품 중 하나인 그의 작품 〈남자의 초상〉은 연합군이 되찾아 돌려주기 전에 1945년 뮌헨의 연합군 집결지에서 도둑들이 훔치기도 했는데, 특히 이 작품은 비엔나의 경매장에 다시 매물로 나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가톨릭이 지배하던 중세

이 작품을 소개하기 이전에 관련된 역사를 먼저 소개한다. 유럽에서 5세기부터 15세기까지를 중세라고 한다. 중세는 가톨릭이 지배하는 시대였다. 당시 유럽의 일부는 국가마다 왕은 있었으나 지방 영주들을 중심으로 하는 봉건제가 공존했기에 권력이 분산되어 강력한 왕이 되기 힘들었고, 지금처럼 영토 중심의 국가개념이 없었다.

 

실제로 이들 국가를 지배한 건 강력한 힘을 가진 교황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은 교황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가상국가’였다.

 

‘30년 전쟁’을 아시나요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전 지역에 걸쳐 다수의 국가가 참전해 많은 병력과 화력이 동원되며 30년(1618~1648)간 쉬지 않고 전쟁이 지속된 ‘30년 전쟁’도 이러한 배경에서 벌어졌다. 교황이 ‘진짜 왕’이 되고자 독일과 인근 지역에서 세력을 넓혀나가자 이들로부터 독립하고자 했던 신흥종교인 프로테스탄트(개신교) 독일 제후와 선제후 사이의 전쟁이 ‘30년 전쟁’이었다.

 

최초의 국제조약 ‘베스트팔렌’

1648년 독일 북서부의 두 도시 뮌스터와 오스나뷔르크에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 3세와 프랑스, 스웨덴 대표가 ‘베스트팔렌 조약’을 맺었다.

 

전쟁에 관여한 전 유럽의 왕국과 제후국, 공작령 대표들이 참여해 5년에 걸친 협상 끝에 이룬 조약이다. 특히 ‘최초의 국제조약’이자 ‘영토를 위주로 한 국가’라는 개념이 정립된 계기가 됐다는 의의를 지닌다.

 

이 조약을 맺음으로써 최후의 종교전쟁이자 최초의 근대적 영토전쟁이 끝이 났다. 신성로마제국의 주축이었던 합스부르크 왕가와 스페인도 신성로마제국과 함께 몰락했다. 전쟁터였던 독일 지역은 인구 대다수를 잃고 분열했다. 대신 프랑스와 스웨덴이 강성해졌고, 스위스와 네덜란드는 독립했다.

 

 

최초의 근대적 영토전쟁 ‘종전의 현장’

바로 이 작품이 1648년 6월 18일, 암스테르담의 ‘석궁 시민수비대 본부’에서 ‘30년 전쟁’을 끝낸 평화조약의 체결을 축하하는, 유쾌한 ‘뮌스터 평화 기념행사’의 순간을 기록한 그림이다.

 

그림 중앙에 깃발과 큰 북이 그려져 있다. 큰북에 걸린 종이에는 얀 보스(Jan Vos)의 시가 적혀있다.

 

 

경비대 본부의 밖은 그림 가운데 열린 창문을 통해 보이는데, 맑은 날씨 속에 건물과 나무와 숲이 보인다.

 

 

오른쪽 뒤편 쇠 창 옆에 한 여성이 칠면조 파이를 가지고 수비대원 사이를 헤치고 나오고 있다. 몇몇 인물은 정면을 보고 있는데, 상기된 분위기가 그림 속에서 잘 드러난다.

 

 

1600년대의 인증샷, 집단 초상화

이 작품은 25명의 인물을 먼저 각각 그린 후 하나의 화면에 다시 모아 옮겨 완성한 작품이다. 그런 만큼 상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집단 초상화로 볼 수 있다.

 

카메라가 없던 당시에는 특정 사건이나 행사를 기록하고, 모임의 일원임을 증명·기념하기 위해 집단 초상화가 많이 제작됐다. 특히 집단 초상화에서 등장인물들의 소품과 복장, 표정 등에서 보이는 정교하고도 사실적인 표현은 유화의 발명과 사용법의 확산으로 가능하게 됐다.

 

 

헬스트의 출세작 중 하나

한편 이 작품은 반 데르 헬스트의 출세작 두 작품 중 하나다. 그가 이 작품을 그릴 무렵에는 이미 암스테르담에서 따를 자가 없을 정도의 유명 화가였다.

 

당시에는 드물게 로테르담 등 네덜란드의 타 도시에서도 초상화 주문을 받았다고 전해지니, 그야말로 전국구 화가였다는 증거가 아닌가.

 

현재 그의 작품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 루브르뿐만 아니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도 소장되어 있다. 1636년 23세 나이로 안나 뒤 피어와 결혼하여 세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아들인 로드윅은 아버지에게 사사 받아 화가가 됐다.

 


 혼자수 이용주
비단실로 수놓아 작품을 표현하는 작가. 

 

회화는 순간의 빛을 화폭에 담은 것이다. 이용주는 회화에 변하고 숨겨진 빛을 담아 미술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정통자수를 현대와 접목해 가장 한국적이고 자긍심 생기는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가 표현한 명화는 원작가가 작품에 표현 못 한, 순간순간 변하는 빛을 한 화폭 속에 표현해 새로운 창작물로 인정받는다. 14명의 전·현직 대통령과 세계적 유명인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했고, 찾아왔고, 초대전을 열어주었다. 2023년 UAE 정부로부터 골든 비자를 수여 받았다.

 

1974년 처음 자수를 배우고 근 30년 동안 작업한 많은 작품들을 담을 ‘그릇’을 구하고 있다. 천장과 벽을 변하는 작품으로 채우고 조명으로 연출한 세계 최초, 최고의 뮤지엄 카페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