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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이 정도 수준이었나

 

살면서 오늘처럼 허탈한 적도 없다. 그것도 윤석열, 대한민국의 대통령 때문이다. 3일 밤 늦게 느닷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는 6시간도 채 되지 않아 이를 해제한 코미디를 한 사람이 바로 그다.

아마 지난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오늘 새벽에 깬 사람들은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황당했을 것이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을 대통령이 벌인다는 말인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너무나 부끄럽고 참담하다.

 

어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할 때도 무언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대통령의 얼굴을 보니 흡사 술을 한잔 한 듯한 모습이었다. 맨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마침 MBN에서 방송하던 ‘현역가왕2’ 프로그램을 시청하던 기자는 TV 화면에 ‘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란 자막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지금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상황인가. 무슨 돌발상황이 벌어진 것인가 의심했다. 그러나 어느 채널을 돌려봐도 자세한 내용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다른 방송에선 대부분 자막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SBS에선 이 상황을 긴급으로 편성해 보도하고 있었다.

 

곧이어 윤 대통령의 긴급 담화 장면이 나왔다.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됐고, 입법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 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이 되어야 할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된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

윤 대통령의 목소리는 떨리는 듯 하고 표정은 단호한 것 같았지만 무언가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는 직감이 왔다.

계엄을 선포하면서 계엄사령관이 누구인지, 계엄지역은 어디인지, 계엄 일시는 언제부터인지 도대체가 오리무중이었다. 그러니 계엄 내용, 즉 포고령도 없었다. 뒤죽박죽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국회 상황이 생중계됐다. 정문에서 국회 진입을 막는 경찰과 진입하려는 의원, 보좌진, 시민들까지 엉켜 난리법석이었다. 방송에선 경찰이 신분을 확인하고 난 다음 의원과 보좌진 등은 출입을 허가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여러 사람들이 국회로 들어가는 장면이 보였다.

그러나 얼마 후 헬리콥터 소리가 요란하게 나고 여러 대가 국회 잔디밭에 내렸다. 군 특수부대 요원들이 무장을 하고 본청 안으로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도 있었다.

얼마 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우원식 국회의장 주도로 여야 의원 190명이 모여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했다. 비상계엄이 무력화되는 순간이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77조 5항에는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비상계엄을 선포했나. 법조인, 그것도 검찰총장까지 지낸 그가 이 정도 기본도 챙겨보지 않았단 말인가.

사실 기자는 윤 대통령의 담화 직후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임명되고 뒤이어 포고문 등이 TV화면 자막에 나온 것을 보고, 국회가 제대로 열릴 수 있을까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포고문 내용 첫 번째로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모든 활동 금지”라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순간부터 국회도 제대로 기능을 하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국회는 제대로 차단되지 않고 있었다. 많은 의원들이 국회로 모여들었다. 처음엔 60여명이었으나 나중엔 190명으로 늘어났다. 계엄해제 요구안 가결에는 재적의원 과반수인 151명이 필요하지만 이를 훨씬 넘어섰다. 결국 여야 만장일치로 해제 요구안이 가결됐다. 비상계엄은 이제 무력화되었다. 계엄을 선포한지 155분만이었다.

 

이후 윤 대통령은 다시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그 시간이 새벽 4시께였다.

정말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국민들은 어리둥절하다. 대통령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뜬금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는 또 밤도 새기 전에 해제하는 건 무엇인가.

 

비상계엄을 선포할 때는 그만한 요건과 절차를 갖춰야 한다. 대통령이 기분에 따라 마음대로 할 사안이 결코 아니다. 우리나라 헌법과 계엄법에는 그 내용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헌법 제77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헌법 89조와 계엄법 2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자 할 때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한참 뒤늦게 밝혀진 일이지만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비상 국무회의에는 겨우 정족수만 채웠다고 한다. 참석한 국무위원들이 여러 이유로 비상계엄 선포에 반대했지만 윤 대통령이 워낙 고집해 그 뜻을 꺾을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계엄법 3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때에는 그 이유, 종류, 시행 일시, 시행 지역 및 계엄 사령관을 공고해야 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3일 밤 담화에서 ‘자유 헌정 질서 수호’ 등의 이유를 들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뿐이다.

계엄 이유와 종류(비상계엄)를 밝힌 것이라고 보더라도, 구체적인 시행 일시와 지역이 특정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계엄 사령관은 윤 대통령 담화 때는 공고되지 않았고 추후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계엄 사령관’ 명의로 ‘포고령’을 냈다.

계엄법 5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현역 장성 중에서 국방부 장관이 추천한 사람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계엄 사령관으로 임명해야 한다. 그러나 국무회의 석상에서 과연 계엄사령관에 대한 심의를 했는지는 아직 밝혀진 게 없다.

헌법 77조와 계엄법 4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을 때는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해야 한다.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계엄 선포가 통고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또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헌법 77조 5항에는 “국회가 재적 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계엄 직후 한때 국회의원들의 국회 진입을 막았다. 추후 국회의 계엄 해제와 관련한 의결 과정에서 논란이 될 수 있다. 결국 이날 계엄 선포는 법적 절차와 요건도 갖추지 못한 ‘충동적 결단’이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로 인해 탄핵이 불가피해졌고, 내란죄로 인한 소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이번 사태의 후폭풍이다. 4일 오전부터 그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다. 야당에선 윤 대통령 스스로 사퇴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또 윤 대통령과 국방, 행안장관을 내란죄 고발 및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일각에선 내란죄 등의 명목으로 그를 현행범으로 체포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여당에서도 윤 대통령의 탈당과 내각 총사퇴 등을 거론하고 있다. 용산 대통령실에선 비서실장을 비롯해 수석비서관 등이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4일 오전 정식 개장한 주식시장도 흔들리고 있다. 개장 초부터 코스피와 코스닥이 2% 안팎 하락 장세로 출발했다. 환율도 밤새 뛰고 있다. 금융과 외환시장이 요동친다.

외국에서도 대한민국을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 난데없는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소동으로 대한민국은 한순간 구렁텅이에 빠졌다. 여러 나라에서 대한민국을 여행하는 자국민에게 주의를 하라는 경보를 발령했다. 우리의 대외 신인도는 물론이고 그간 쌓아온 국가 호감도는 크게 훼손될 수 밖에 없다. 

국민들도 밤새 잠을 설쳤다.

이제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어리석은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대한민국이 우습게 됐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국민들이 정신을 바짝 차릴 수 밖에 없다.

각자 자리에서 맡은 바 책임과 역할을 다하자. 그게 나라를 지키는 첫걸음이다.

 

김대진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