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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자추상화 지호 김정택 이사장

“꿈도 미래도 없던 시골 소년” 문자추상화 작가의 삶 이야기

지이코노미 정길종기자 = 미국의회도서관, 독일괴테연구소, 모스크바대학박물관, 러시아 동양미술관 등 세계 40개국을 방문한 한국미술국제교류협회 이사장, “꿈도 미래도 없던 시골 소년” 문자추상화의 거장이자 작가의 삶 이야기 ‘우리는 살면서 생각대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까? 라고 말하는 지호 김정택 이사장을 용산구 삼각지역 부근 작업실인 에서 만났다.

 


▲김정택작가의 “마음 우주와 블랙홀” 작품

 

꿈도 없고 미래도 없는 시골 소년은 먹거리가 없어 망태기를 메고 학교 다녀야 했고 동생들을 데리고 이산 저산 다니며 풀뿌리를 모아 솥 씻는 솔(브러시)을 만들어 생계를 연명해야 했던 소년이 세계 40여 국가 중 중요 국가들을 4·5회 방문하고 모스크바대학 총장 초대 모스코바 박물관 유라시아 학술회의강의 및 전시, 중국 공예예술대 특강, 미국의회 도서관 작품 전시 소장, 독일 괴테연구소 초대전 등 세계의 ‘문자추상화’ 작가로 거장이 되어 “고희에 들어 우주와 마음의 대화 시집을” 내면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소년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를 따라 풀뿌리를 모아 여덟 식구가 살아야 했던 동지섣달 그믐밤 감기로 병을 앓던 아버지는 먹거리가 없어 서울에 간 형이 오면 돈 준다고 쌀을 꾸어 연명하는 처지에 아버지는 운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의 제사를 잘 치르겠다고 어머니와 함께 상주시장에 따라간 소년은 고향 사람이 식당을 내서 ‘서울에 보내 달라고 했다고’ 눈시울을 적시며 어머니는 말을 꺼냈다고 한다.

 


▲한국미술국제교류협회 이사장 겸 작가인 김정택, 작업실에서

 

서울에 상경한 소년은 주방에서 그릇을 닦으며 요리를 배우고 다른 사람보다 손이 빨라 칼질과 그릇 닦는 등 식당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주인은 밖으로 내보내 호객행위를 시켰고 요리를 배우지 못할 바에는 일터를 옮긴다는 생각에 새 보금자리를 찾았다.

 

그곳은 광화문 소재 장호식당(경양식)으로 이직을 했다. 식당 사장님 고향은 개성이고 주방에 일하는 사람은 4명 홀에 여종업원이 3명 중에 전북 이리에서 상경한 양귀비라는 별명을 가진 소녀는 소년의 빨래까지 챙겨주는 등 사장님의 배려로 힘들었지만, 나름 행복한 일자리로 옮겼다.

 

식당은 손님이 많아 12시부터 3시까지 그릇을 닦고 뒤돌아보면 산처럼 쌓여있었다. 덩치가 작은 소년은 어른들도 힘들어 일주일을 못 넘기고 그만두곤 했던 곳에서 키가 작아 두부 모판을 놓고 그릇을 닦고 고생하면서 기술을 배워 주방장이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일을하게 되어 월급 4000원을 받게 된다.

 

시간이 흘러 조그마한 도장 점포에 아저씨가 도장 파는 것을 보고 초등학교 시절에 지우게 와 도토리로 도장을 팠던 기억이 생각나서 도장을 배우면 공부도 하고 좋겠다. 라는 생각에 한 사람 들어가면 꽉 차는 점포에 들어가서 ‘아저씨 도장을 배울 수 없을까요?’라고 여쭈었다. 아저씨는 점포를 넓히게 되면 그때 보자고 했다.

 

그 이후 쉬는 날에는 가끔 찾았다. 어느 날 도장 점포는 넓혀져 있었고 도장을 배우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도장을 팔 수 있겠냐고 물었고, 할 수 있다고 했고 1년간 월급은 없고 밥은 먹여주고 잠은 점포에서 자는 것이다.라는 조건을 걸었다.

 

소년은 하겠다고 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서울 가서 돈 벌어 집안을 살리겠다고 왔는데 돈 한 푼 부쳐 줄 수 없는 형편이 되자 고민 끝에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어머니는 우리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이다. 식당 주인은 일 잘한다고 장가도 보내준다는 말과 함께 요리도 잘 가르쳐 줬다. 고생 끝에 주방장이 하는 자리에서 일하는데 이런 일을 그만두고 모아둔 돈도 없이 오르지 공부와 기술을 배우기 위해 힘겹고 어려운 길을 선택한다.

 

인장에서 조각 서예 전각으로…도장 배우는 기술은 칼 잡는 법, 칼 가는 법, 도장 파는 글씨(전서)를 읽히는 것 고무도장을 하려면 붓글씨를 배우는 것 등이다. 칼 잡는 법을 배우면서부터 막도장을 새기고, 군번 도장 주문이 많았다. 하루 밥값은 100원, 막도장은 30원 칼 잡는 법만 배우고 바로 새겼단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군번 도장을 배워 100원을 받아 밥값은 했다고 한다.

 

점포는 용산 육군본부 앞이라 군인들은 새벽부터 와서 아침에 바쁠 때가 많았고, 9대 독자인 주인아저씨는 소아마비로 있던 장남이 죽고 매일 술로 마음을 달래다가 소년이 도장 기술이 익숙했을 때 즈음 주사에 쇼크로 세상을 떠나버렸고 이에 흔들리지 않고 소년은 배우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고 태권도, 조각학원, 영어학원 등을 다니며 배우는 일에 온 마음을 다해 일하여 화장실 가고 밥 먹는 시간 외에 잠시도 쉬지 않고 노력했다고 했다.

 

이때 우연한 기회에 만난 인장협회 박순교 용산지회장께서 한학자이고 초서에 대가이신 송강 金保鉉(김보현)선생을 소개해 오늘날 ‘지호’라는 아호와 문자추상화를 할 수 있도록 학문을 깨우쳐 준 스승이다.

 

스승님의 자택은 시흥이다. 용산에서 출발하면 시간이 너무 걸려 주로 혼자 연습하고 스승에게는 운필이 잘 안 되는 부분을 배운다든가 학문을 배우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 스승님은 한학자라서 한시를 공부하라고 많이 가르쳐 주셨지만, 당시에는 한시에 5언 절구, 7언 절구 율시를 짓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작품을 만들고 해석을 하다 보니, 시도 지을 수 있게 되었고, 그가 만든 작품 중에 하느님의 4속성 사랑(사람) 공의(사자) 지혜(독수리) 능력(소)를 전각으로 그림 글씨로 1년의 연구 끝에 첫 작품을 만들게 된다.

 


▲일본 동경 국제미술대전 대상 수상후, 개막식 참여

 

그해 인장 공모대전에서 전각은 동상, 인각은 은상 등을 수상하였다, 그런데 KBS PD가 도장 관련 방송(행운의 스튜디오)에서 하는데 여러 사람이 추천해서 왔다며 이미 출연진 두 사람은 결정해 놓았고 선생과 두 분만 더 결정하면 되는데 도장과 관련된 내용은 선생님 몫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프로그램 중 도장을 빨리 파는 것이 있다고 하여 MBC에서는 ‘빨리 도장 방송프로에 나가 욕만 먹었다고 하니 그것은 잠깐 보여주는 것이고 어떤 도장이 좋고 나쁜지 재료는 무엇이고 작품 설명하라고 해서 사랑, 공의, 지혜, 능력이라는 글자를 뜻에 맞게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을 방송에서 설명했다.

 

여호와의 4속성에 소를 백만우 화백의 소 그림으로 능력이라는 글자로 소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 그림으로 글자를 만드는 것이 잘 안 풀려서 1년 걸쳐 완성된 것을 서양화가 백만우 화백과 이야기 하다가 유인을 의뢰받게 된다.

 

그는 88올림픽 때 88 호랑이로 삼천리금수강산을 그려 기네스북에 오른 작가다. 그 그림에 유인 낙관 도장 의뢰가 들어와 4개월 고민 끝에 문자로 대한민국 지도로 산. 강. 항구. 고속도로를 넣어 ‘문자추상화’라는 타이틀을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이로 인해 일본 국제대전 미전에 출품하여 수작 상을 받게 되고 다음 해에는 특별상을 받게 되어 백만우 화백과 함께 외국은 처음인 ‘지호 김장택 작가’는 일본 교토 전시장에 발을 딛게 된다. 도장쟁이가 일본에서 상을 받고 다시 기회가 만들어져 대만 국립대학 초청전시 대만의 최고 작가들과 함께 교류를 나누는 등 한국화의 주수일 인천대학장을 비롯한 유명 작가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게 되면서 세계로 웅지를 트는 기회가 만들어진다.

 

기억에 남은 작품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시회 때문에 호주를 갔다. 오면서 비행기 안에서 이번엔 어떤 작품을 만들까? 라는 생각에 영생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1년에 고민 끝에 만들어진 작품이 영생이다. 이 작품을 통해 일본에 출품하여 특별상을 받게 되고, 이 일로 독일 괴테연구소 전시에 가게 되었다.

 

독일에서 전시하기 전 독일호텔에서 작품에 들어있는 성경 구절을 적어서 작품에 써놓았는데 독일 할머니가 작품을 구매하겠다. 하며 김 작가에게 독일에서도 이 비슷한 내용을 담은 작가가 나중에 크게 되었다고 하는 말에 힘을 얹고 독일 괴테연구소와 괴테문화원 개인전을 초대전에 참석할 기회가 만들어졌으며, 아내와 동반하여 첫 유럽전시회 겸 여행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독일괴테연구소, 소장과 한국대표 작가들과 함께

 

그 후 백만우 화백 사무실에서, 이형옥 회장을 만나, 김진선 장군과 북방권교류협의회 정해훈 사무총장과 함께 몽골 정부초대 전시동반과 몽골 국방장관 만찬에 참석해서 예술이란 이렇구나, 처음으로 실감케 됐고, 그다음 해 몽골 정부의 초대로 사람+사람+사람=한사람 작품이 몽골 TV 나왔다. 그리고 베트남정부 초청전시회, 인도정부 초대전 등 세계를 다니면서 국제전시전을 해보겠다는 생각에 첫발을 디딘 곳이 중국 서안 서예전이다.

 


▲2008 중국올림픽 국제미술대전, 한·중 대표들과 함께

 

전시회는 박찬봉 회장의 서예대전에 운영위원장을 맡아서 진행했다. 그곳에서 작가들과 송강 김보현 선생님 가까운 분들의 작품을 모아 처음으로 국제전에 국제위원장으로 한. 중 서화교류전을 했다. 김선원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을 단장으로 하여 중국 서안의 서예협회 두중신 주석, 종명선 부주석 만패승 선생 등 서안의 저명서예가들과 휘호 전도하여 전시회는 성공리에 마치게 됐다.

 

이렇게 시작한 것이 발전되어 2000년에 브리아티아 대통령 초대전에 국제위원장으로 참가해서 문화상을 받는다. 이때 대통령이 초대했다는 소식에 마음은 들떠 있었고 정말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까? 말들이 많았다. 그래서 한 팀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우리 팀은 남아서 대통령을 만나고자 기다림 속에 자동차는 유유히 바이칼호수를 거쳐 대통령궁에서 대통령을 만나 15분 동안 대담하고 사진을 찍는 행운과 선물을 나누었다.

 


▲한국미술국제대전, 윤영달 회장(크라운·해태그룹)겸 대회장과 작가들과 함께

 

그즈음에 미술인들이 독단적으로 협회를 만들자는 제안에 서울시 “한국미술국제교류협회”를 이건양 회장을 필두로 이사장 김선원, 정상원, 이가범, 정충락, 김정택 발기인이 되어 2002년에 예술의 전당에서 월드컵 기념 국제전시회가 삼정호텔에서 성대하게 거행하게 되었다.

 

이에 공감하는 분들의 협조로 중국. 러시아공화국 브리아티아. 독일. 프랑스. 베트남, 몽골 등 각 나라에서 온 작가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고 국제전에 초대받아 40개국의 나라에서 초대전 겸 여행을 하게 된다.

 


▲한·프랑스 50주년 기념, 에띠엔느 드코상 미술관에서 프랑스문화원장, 한인회장과 김선원 단장과 함께

 

이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과 유럽 쪽으로 진출해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노크하는 과정에  김승훈 사무총장 주선으로 펜자주지사 초청으로 백만우 회장과 함께 러시아를 방문길이 열렸다. 주지사는 일본 문화진흥회에서 주는 아카데미상을 받게 되어 러시아 모스코바 방송과 펜자주 방송에서 상 받는 장면과 우리들의 일정을 소개했고 아동 미술부터 중고등 일반부까지 교육하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며 국립대 총장을 만나 상패 전달식과 기념사진을 찍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레닌의 고향 울리야노프스키협회장 초대받아 15시간의 기차를 타고 방문하여 레닌박물관과 레닌이 태어난 고향을 찾아 두 편의 시를 짓는 행운도 가졌다고 했다.

 

어느 해 자신이 뉴욕 한인미술협회장 최대식이라고 했다. 이렇게 인연이 되어 미국 워싱턴 전시가 되고 미국 국회도서관에 소장 작품전을 하는 기회가 열린다. 위싱턴에서 한글 서예를 하는 권명원 선생이 앤 아룬델 총장초대전을 주선해 전시회를 마치고 미국의회도서관을 갔다.

 

그곳에서 명함을 주면서 이야기 끝에 제가 책을 쓴 것이 있는데 도서관에 보내도 되냐는 말에 작품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과 작품을 기증하면 할 수 있다는 말에 1년의 연구 끝에 작품 기증식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주미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 4인 이한우, 라핀스키, 김정택, 권명원, 초대전이 남진수 원장 초대로 열리게 됐다.

 


▲미국의회 도서관, 미국, 한국 작가들과 함께

 

김정택 작가는 문자추상화의 이론과 실기를 전적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두 권의 서적을 발행한다. 이어 힐빙학회에서 한글 형상도 발표하고 박헌렬 회장은 모스크바대학 학술회의 주선해서 문자추상화와 한글 형상도를 발표하여 모스크바대학 박물관 박사들과 유라시아 교수들의 좋은 반응에 박물관 관장은 언제라도 전시할 수 기회를 부여했다.

 

첫 강의는 강원대학을 시작으로 중국 산동 공예예술대학 반노생 총장 초대로 “문자추상화의 계척자”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반 총장은 중국 문연부주석으로 시, 서, 화 골동품 모든 면에서 통달한 인물이다. 대학 박물관 3, 4층에 소장품은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것에 비해 10/1도 안 된다고 했다고 전하며 강의는 지금도 다니고 있다고 했다.

 

김정택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살면서 생각대로 이룰 수 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했을 때 일을 기다리지 말고 찾아가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 그러면 기회는 주어진다. 라고 말하는 그의 삶과 과거, “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능력도 없는데 위에 계신 높은 분께서 도와주시는 것 같아요” 하며 두려움을 이기고 도전하고 노력하고 준비하라는 이야기로 마지막을 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