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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 최초 ‘브랜틀리 스콧상’ 수상한 국내 남성 발기부전 치료의 개척자이자 산 역사 최형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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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시아인 최초 ‘브랜틀리 스콧상’ 수상한

             국내 남성 발기부전 치료의 개척자이자 산 역사

             최형기 박사


최형기(76) 박사. 그는 우리나라 남성 발기부전 치료의 개척자이자 산 역사다. 발기부전이란 용어도 생소하던 1983년부터 지금까지 38년간 발기부전 치료에 전념해 온 전문가다. 그는 그동안 1천여 명이 넘는 발기부전 환자들을 수술해 그들에게 새 삶을 열어준 주인공이다. 발기부전 환자가 수술을 받으면 완전히 새로운 청춘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들에게 최 박사는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그 공로로 2013년 아시아인 최초로 ‘브랜틀리 스콧(Brantley Scott)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미국 비뇨기학회의 발기부전 분야 최고상으로 3조각 보형물을 발명해 발기부전 수술의 원조가 된 브랜틀리 스콧 박사를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발기부전 분야 세계 최고 영예의 상이다. 골프로 치면 골프선수가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입성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최 박사는 1984년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재직할 때 국내 최초로 ‘성기능 장애 클리닉’을 개설했고 수술적 성치료를 통해 국내 성의학 분야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가 성치료 체험기를 정리한 ‘性功해야 성공한다’는 책자는 1996년 초판이 나온 뒤 2015년 3판이 나올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책자의 영문판 ‘Sexual triumph for a success in life’는 아들인 최현민 박사와 공저로 출간해 현재 세계 최대 전자 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을 통해 전 세계로 판매 중이다. 
최 박사의 아들 최현민(42) 원장도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최 원장은 아버지와 연세대 의대 동문으로 비뇨기과를 전공하고 있다. 지금은 연세대 의대 교수직에서 퇴직한 아버지와 함께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최형기 성공비뇨기과’를 운영하고 있다.

취재 김대진 편집국장 사진 조도현 기자 일부 최형기 박사 제공

 

 

최 박사는 1983년 연세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굴곡형 보형물로 첫 발기부전 수술에 성공했다. 1984년엔 대학병원에 처음으로 ‘성기능 장애 클리닉’을 개설하고 국내 성의학 분야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남성 발기부전 치료 기술은 세계 정상급이다. 
최형기 박사는 “여자 골프처럼 우리나라의 기술이 톱 클래스다. 세계적인 상(賞)도 수상하고 미국과 일본에서도 환자들이 찾아온다. 다른 곳에선 수술할 수 없는 환자들이 온다.”고 했다.
10년 전부터 발기부전으로 미국의 여러 유명 대학병원에서 수 차례 수술을 받고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한 아랍인 환자가 최 박사를 찾아와 결국 기적적으로 수술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발기부전 환자는 증상에 따라 단계별로 치료를 한다.

 


먹는 약이나 주사로 해결할 수 없으면 수술을 한다. 예전엔 전신 마취나 척추 마취를 하고 수술을 했다. 초기엔 남성의 성기에 단순한 인공 보형물을 넣었다. 그러나 이 보형물이 불편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굴곡형 보형물이다.
1980년대 초중반만 해도 우리나라는 유교 사상 영향으로 발기부전을 수술로 치료하는 것에 심한 거부감이 있었다. 환자들이 발기부전을 병으로 생각하지 않아 병원에 가지를 않았다. 
최 박사는 이때 연세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굴곡형 보형물로 첫 발기부전 수술에 성공했다. 이어 그는 ‘성기능 장애 클리닉’을 개설하고 국내 성의학 분야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의사들과 지식을 교류하며 1989년 11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제2회 아·태 성의학 학술대회를 주도해 국내 성의학 분야가 활성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90년대 들어 세조각 팽창형 보형물이 개발됐다. 최 박사는 당시 해외 초청으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홍콩 등에서 발기부전 시범 수술을 하는 등 새 수술법을 각지에 전파했다. 
1998년 미국 화이자에서 비아그라가 나온 뒤 수술적 치료는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발기부전에 대한 인식이 바뀌며 저변이 확대돼 수술적 치료는 다시 조금씩 증가했다,
세조각 팽창형 보형물을 10년 이상 쓰는 환자들이 나오면서 고장 사례도 나타났다. 최 박사는 2001년 미국 비뇨기과학회지에 이를 보고했다.

 

그는 2007년 11월 서울 강남 세브란스 병원에서 열린 아·태 성의학 학술대회 수술 워크숍에서 4명의 환자에게 라이브 서저리(Live Surgery : 수술 과정을 생중계하는 것)를 시행해 아시아 각국 의사와 일반인들에게 처음으로 수술 현장을 생생하게 선보였다. 
이 무렵만 해도 수술은 대부분 전신 마취나 척추 마취를 해야만 했고 4, 5일간 입원 치료를 했다.

 

2010년 대학교수를 그만 두고 개인 병원을 개원했다. 남성 클리닉을 찾는 환자들을 배려한 결단이었다. 

 

2010년 들어 최 박사는 30여년간의 교수 생활을 접고 개인 병원을 열었다.
“남성 클리닉을 찾는 환자들은 남모르는 고민을 몇 년간 하다 힘들게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대학병원에서는 각 과의 협진 체계 때문에 오히려 환자들이 불편해 하는 경우도 많다. 필자는 실제로 대학병원에 몸담으면서 VIIP(Very Important Impotent Person) 클리닉을 담당했지만 이마저도 불편해하는 환자들이 많았다.

이런 문제점들을 조용히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클리닉을 한번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개업을 결심했다.”
그가 직접 쓴 ‘性功해야 성공한다’는 성치료 체험기 2011년 개정판 책머리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그가 개인병원으로 선택한 입지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이었다. 그는 수술 위주로 클리닉을 운영하려고 수술실을 대학병원 못지않게 큰 규모로 만들었다. 병원 이름은 환자들이 편하게 방문해 치료받아 만족을 느껴 행복을 가정을 이루고, 직장에서 성공하기 바란다는 뜻에서 ‘성공 클리닉’이라고 지었다. 이후 그는 병원을 지금의 삼성동으로 옮기고 병원 이름도 ‘최형기 성공비뇨기과’로 바꿨다.

 

아들 최현민 박사가 합류해 2013년 국소 마취 방법을 통한 세조각 보형물 삽입술을 연구·개발에 성공했다. 발기부전 수술을 국소 마취로 1시간 안에 끝내고 당일 퇴원시키는 기술로 지금까지 수백 건의 수술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최 박사는 2016년 전립선암 수술 후 발기부전과 요실금이 함께 찾아온 25명의 환자 가운데 72%에서 세조각 팽창형 보형물 삽입으로 두 증상이 동시 치료된 것을 관찰해 이를 세계남성건강학회지에 보고했다. 
2010년 이후 개인병원에선 많은 환자가 프라이버시 문제로 당일 퇴원을 원했다. 또 심혈관계 위험성이 높은 고령 환자도 늘어나 전신 마취나 척추 마취보다 국소 마취가 절실했다. 이때 전문의 과정과 군 복무를 마친 최현민 박사가 성공비뇨기과에 합류하면서 국소 마취 방법을 통한 세조각 보형물 삽입술을 연구·개발하기 시작했다.
2013년 11월부터 진통제와 리도카인 마취법으로 꼬리뼈, 음부 신경, 서혜부(鼠蹊部:아랫배와 접한 넓적다리의 주변) 및 음경 마취 방법 등을 연구해 마침내 모든 수술을 국소 마취로 1시간 안에 끝내고 당일 퇴원시키는 기술을 완성했다.

 


이후 수백 건의 수술을 모두 문제없이 당일 퇴원 일정으로 성공했다. 수술이 중단되거나 마취제를 전신 마취나 척추 마취로 바꾼 예는 하나도 없었다.
이제 성공비뇨기과는 최현민 박사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최 박사는 “국소 마취 세조각 팽창형 수술은 발기 조직을 그대로 유지하며 프라이버시를 유지하고 1시간 안에 수술을 끝내고 안전하게 당일 퇴원하는 게 가능하다”면서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뒤거나 당뇨 심혈관계 질환이 있는 고령 환자들이 발기부전 약물 요법에 만족하지 못할 때 함부로 약용량을 늘릴 때가 있다. 이는 매우 위험하며 오히려 약물보다 수술적 치료가 훨씬 더 안전하다.”고 했다. 
그는 “골프 치는 사람들이 재미 있다. 수술하고 2, 3일 후에 라운드를 원한다. 수술 후 힘을 빼고 치니까 더 잘 되더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대개 건강 관리를 잘 한다. 건강이 보장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술만 먹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말했다.
 

지금은 아들 최현민 박사와 함께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최형기 성공비뇨기과’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최현민 원장이 주로 수술을 하고 최 박사는 곁에서 감수하고 확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최형기 박사는 자신의 뒤를 이어가고 있는 아들 최현민 원장이 자랑스럽다. 인터뷰에서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최 박사는 “최현민 박사가 (내 뒤를) 따라온 게 보람이고 고맙다. 내가 가진 모든 걸 전수해주고 있다. 이제 내 실력을 추월했다.”면서 “(아들이) 모든 역할을 다하고 있다. 기술과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고 대견스러워했다. 
최 원장은 순전히 자신의 결정으로 비뇨기과를 선택했다. 아버지의 권유는 없었다. 아버지로선 오히려 이 길이 힘든 길이라 아들이 다른 길을 가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스스로 선택한 길은 존중해 줄 수 밖에 없었다.
최 원장은 왜 아버지가 걸어간 길을 선택했을까.
“초등학생 때 아버지의 교수연구실에 가면 아버지에게 치료를 받았던 환자들이 감사 편지를 많이 보내왔어요. 그걸 보면서 ‘이게 참 보람 있는 분야구나’라고 느겼죠. 그래서 비뇨기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최현민 박사의 얘기다.

 


아버지와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최 원장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버지가 명성이 있어 전국에서 문제가 있다는 분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다양한 케이스를 보고 공부할 기회가 많죠. (아버지가) 개업한 지 11년째인데 수술도 같이 하고, 그동안 경험을 많이 쌓았어요. 특히 여러 환자들을 보면서 많이 배웠죠. 자신감도 얻었고요. 아버지가 늘 옆에서 같이 봐주니까 든든하고 도움이 되죠”
최형기 박사는 “지금은 최현민 원장이 주로 수술을 하고 나는 곁에서 보고 감수하고 확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가끔 아버지 최 박사가 직접 수술을 해주기를 바라는 환자들도 있다고 했다. 그럴 때면 그는 “‘둘이 같이 하는 것이니 마음 편히 놓으시라’고 얘기해주면서 안심시킨다.”고 했다.
최 박사는 “10, 20년 지난 환자들이 지금도 나를 찾는다. 나이든 환자들은 젊은 의사들에게 쉽게 믿음이 안간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경험도 중요하지만 젊음의 패기와 열의가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민족이 손재주가 있다. 미국 메이요병원 의사가 ‘선생님이 있어서 대한민국 사람들은 행복하겠다’고 했다.”면서 “우리 정부에서 이런 고급 기술을 해외에 알리면 외국에서도 손님들이 많이 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인터뷰를 하던 7월 2일에도 외국에서 손님이 왔다갔다고 귀띔했다. 
최 박사는 “발기부전 수술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다. 발기부전을 치료하지 않으면 사업을 해서 돈을 버는 게 의미가 없다. 발기부전을 치료하면 인생이 즐겁고 자신감이 생긴다.”고 했다.

 

 

최 박사는 부친과 아들까지 3대가 세브란스 출신이다. 그것도 의사에 비뇨기과까지 같다. 

 

최형기 박사의 부친 최인태 씨도 의사였다. 세브란스 의전을 나와 서울 중구 필동에서 피부비뇨기과를 개업했었다. 테니스를 좋아했던 그는 수련의 시절 전공 선택을 앞두고 두 가지를 고려했다. 외과의사 분야에 테니스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을 것. 이를 충족할 수 있는 게 바로 비뇨기과였다. 그는 부친이 경기고·세브란스 의전 시절 테니스 선수였다는 걸 후일에야 알게 됐다.
결국 최인태, 최형기, 최현민 3대는 세브란스 출신에 테니스를 좋아하고 비뇨기과를 전공하는 공통 분모를 갖게 됐다. 
최 박사는 “핏속을 흐르는 비뇨기과 전문의의 DNA를 느낄 때가 있다”고 했다. 2009년 그는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국내외 비뇨기과 전문의 60여명을 상대로 ‘라이브 서저리’를 했다. “수술을 시작하려는데 현민이가 제1조수로 내 앞에 딱 서는 거예요.” 당시 현민 씨는 수석 전공의였다. 그는 “(아들의) 놀랍도록 성장하는 손기술을 볼 때 분명 피는 못 속인다‘는 생각을 하고 한다”고 했다. 

 

성기능 장애는 최신의 여러 가지 좋은 치료법들이 많이 개발돼 모든 고민들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최 박사가 성 치료 체험기 책을 내고 유튜브 방송을 하는 것도 바로 이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다.

 

성기능장애는 우리 몸의 여느 곳에 생기는 다른 병들과 마찬가지로 세월 따라 나타나는 병이지만 환자들은 주위 친구나 부모에게도 말하기 어려워 혼자 벙어리 냉가슴만 앓게 된다.
게다가 최근엔 스트레스와 당뇨, 고혈압, 비만 등 성인병의 증가로 발기부전 환자가 점점 늘고 있다. 국내에도 200만 명 이상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당장 아프거나 생명에 지장이 없는 병이라 그들은 당장 병원을 찾지 않는다.
특히 얼굴이 알려진 유명 인사들은 대학병원에 개인 신상이 노출되는 탓에 병원에 가기를 더욱 꺼린다. 그래서 이런 프라이버시(Privacy) 문제 때문에 국내 기술이 훨씬 우수한 것도 잘 모르고 외국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성기능 분야의 환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바로 프라이버시 유지다. 

 


성기능 장애는 최신의 여러 가지 좋은 치료법들이 많이 개발돼 모든 고민들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최 박사가 ‘성공해야 성공한다’는 책을 내게 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최 박사는 이 책에서 “성(性)에 공(功)을 드리는 일이야말로 강한 남성으로 성공(成功)하는 인생을 이끄는 최상의 원동력”이라고 단언한다. 이 책은 30여년간 98% 성공률의 임상 실화가 담긴 최고의 성의학서다. 
이 책은 첫 출간 이후 3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다. 그 인기에 힘입어 영문판도 판매중이다.
최 박사는 지난 2018년 12월부터 ‘남성성기능TV-성공(性功): 성에 공을 드리자!’란 이름으로 최현민 원장과 함께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50회 정도 방송이 나갔다. 이 방송을 보면 남성 성기능 장애와 발기부전 수술 등 여러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고 했다.

 

 

최 박사는 테니스와 골프, 바둑에도 능하다. 테니스는 한때 전국 대회에서 입상할만한 수준급 실력이었다. 골프도 전국교수골프대회 단체전에서 연거푸 우승했다. 바둑은 아마 5단이다. 최현민 원장도 테니스와 골프를 좋아한다.

 

최형기 박사는 테니스와 골프, 바둑에도 일가견이 있다. 테니스는 전국의사대회에서 우승도 하고 준우승도 했다. 전국사회인테니스대회 결승에 네 번 나가 한 차례 우승도 했다. 한때 전국 랭킹 3위에 오를만큼 고수이기도 했다. 
그는 “대학교수가 테니스 결승까지 간 사람은 나 외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앞서 레지던트 시절 인천에서 열린 경기도종별선수권대회 단식 종목에 나가 대학생 챔피언을 누르고 결승에 진출한 적도 있다. 결승에선 기권을 하고 준우승을 했다. 

 


골프도 대단했다. 1980년대 연세대 대표선수로 전국대학교수골프대회 단체전에 나가 세 번이나 우승했다. 
그는 “당시 고대 체육학과 박영민 교수가 대학교수골프대회를 만들어 시합에 나와달라고 권유해 참가했다. 양지CC에서 열린 1회 대회 때 200명 정도 선수들이 참가했다. 나는 연대 치과대학 손흥규 교수, 상과대학 한성신 교수와 함께 참여해 우승했다. 그때 축구선수 출신 참가자가 혼자 79타를 쳐 개인전 1위를 했다. 그 후에도 충남 도고에서 열린 대회 등에서 두 차례 더 우승했다.”면서 “골프를 해도 집중이 잘 된다. 대회에 나가면 더 잘 된다. 스코어가 더 잘 나온다.”고 했다.
최 박사는 “그저께도 친구가 웰링턴CC에 초대했지만 못갔다. 그러나 골프에 대한 향수가 있다. 특히 멘탈 컨트롤에 관심이 많다. 골프는 멘탈 관리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바둑 아마 5단이다. 요즘도 거의 매일 바둑을 둔다.
프로 9단 이창호와 4점을 두고 바둑을 둔 적도 있다. 이창호에겐 건강에 좋고 롱런할 수 있다면서 테니스를 해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그는 바둑TV ‘명사초청 대국’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바둑과 골프는 재미가 있어 오래 간다. 프로 기사들과도 많이 어울렸다. 비가 오면 바둑을 두고 날이 좋으면 테니스를 먼저 치고 바둑을 두러 간다.”고 했다.
그는 수술과 골프, 테니스, 바둑 네 가지를 모두 하느라 늘 바쁘다. 심심할 새가 없다.
최현민 원장도 테니스를 좋아한다. 골프는 작년부터 시작해 1년반 정도 됐다. 지금은 한창 재미를 느낄만큼 됐다.
최 원장은 “골프는 예민한 운동이라 어렵다. 특히 일관성 유지가 힘들다. 에러가 나면 스코어 관리가 제대로 안된다. 실수 없이 해야 된다는 게 중요하다. 드라이버 샷은 그런대로 자신이 있는데 퍼팅이 잘 안된다. 그래도 80대 타수는 몇 번 기록했다.”고 귀띔했다.

 


최형기 박사 프로필

 

-연세대 의대 졸, 의학박사
-연세대 의대 비뇨기과 명예교수
-미국 클리브랜드 클리닉에서 미세수술 및 임포텐츠 분야 연구
-국내 최초로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서 ‘성기능 장애 클리닉 개설
-아·태지역 성의학자들과 국제적인 교류로 아·태 임포텐츠학회 창립 멤버로 활약
-서울 아시아 성학회 조직위원장 역임
-국내 최초 Sexology학회 성공적 개최, 5대 회장 역임
-대한테니스협회 의무의사 및 베테랑 테니스연맹 부회장
-미국비뇨기과학회 및 외과학술원 정회원
-대한남성과학회 회장 역임
-대한민국 의학 한림원 정회원
-아시아 유일 발기부전 분야 의학상인 브랜틀리 스콧상 수상


최현민 박사 프로필

 

-연대 의대 석·박사
-연대 의대 비뇨기과 외래 조교수
-비뇨기과 전문의 취득
-국립 소록도병원 비뇨기과 과장 역임
-안성 도립의료원 피부비뇨기과 과장 역임
-인도네시아 발리 세계비뇨기과학회 연자발표 등

-'성공비뇨기과' 대표원장 및 유튜브 '남성 성기능TV'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