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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수마 왕이 하루 50잔 마시던 초크라틀 “1591년, 케찰코아틀은 뭘 했을까”

권력자의 정력음식, 몬테수마 왕의 초콜릿

지이코노미 박준영 기자 | 몬테수마 왕이 하루 50잔을 마시면서 궁중의 여인들을 잠재웠다는 ‘전설의’ 정력 음식, 초콜릿 이야기를 소개한다.

 

자료 <왕과 대통령 101인의 정력 요리 이야기(이부춘, 넥서스)>제주초콜릿박물관

 

초콜릿의 기원
초콜릿에 각성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신혼여행을 떠나는 커플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이들도 많다. 뜨거운 첫날 밤을 기원하는 마음이다. 물론 현실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넉 다운되는 일이 더 많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과거 미국에서는 초콜릿 음료가 잠이 잘 오게 한다고 믿었던 적이 있다. 미국 <이그재미너>지는 ‘매일 밤 한 잔의 따끈한 초콜릿을 마시면 잠이 잘 온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초콜릿에는 카페인과 비슷한 성분이 있어 자연스레 기분이 들뜬다’고 전하고 있다.

 

초콜릿을 즐겨 마시던 인물 중 하나가 천하의 바람둥이 ‘카사노바’였다는 걸 아는 우리로서는 웃을 일이다.


초콜릿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직 만나본 적 없다. 어쩌면 전 세계인이 공통적으로 사랑하는 간식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초콜릿은 아즈텍 제국에서만 즐기던 ‘신들의 음식’이었다.


그러던 초콜릿을 세계에 전파한 인물이 있다. 스페인의 탐험가, 에르난 코르테스다. 그가 초콜릿을 세상에 알리게 된 데에는 상당히 ‘공교로운’ 예언이 작용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아즈텍의 신, 케찰코아틀
멕시코의 기원이 된 아즈텍족(A.D 1200~1521)은 붕괴된 톨텍 문명의 전승자 밑에서 하인이나 노예로 일하다 발전된 문명이었다.

 

지배 계급과 지식 계층은 마야족의 세련된 문화를 받아들였고, 전쟁의 시대에 멕시코 중앙부까지 침투했던 학문적·문화적 요소까지도 흡수했는데, 특히 중요하게 여긴 건 카카오 열매를 중심으로 한 마야족의 중상주의였다.


아즈텍족은 과거 톨텍족의 왕 케찰코아틀을 신으로 숭배하고 있었는데 ‘케찰코아틀이 백성들에게 카카오나무를 주고, 카카오를 재배하는 방법도 가르쳐 줬다’는 신화가 전해지고 있었다. 아즈텍족은 케찰코아틀이 카카오나무를 전해준 것을 잊지 않고, ‘깃털 단 뱀’을 의미하는 ‘보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신으로 숭배했다.


아즈텍은 카카오로 초콜릿을 만들어 마셨다. 지금처럼 설탕을 넣지 않아 매우 쓴 맛이었다. 흙으로 된 가마에 불을 피워 카카오를 건조시킨 뒤, 열매를 두 조각으로 나눠 분말을 만들고, 호리병 박이나 잔에 붓고 물에 섞어 마시거나 고추(후추)를 넣어 한꺼번에 섞어 마셨다.

 

 

 

아즈텍족은 피로회복과 지사제로도 초콜릿을 마셨고, 상처나 화상, 치질을 치료하는 연고의 재료로도 썼다. 말린 열매는 화폐로도 사용했는데 호박은 카카오 열매 4개, 큰 토마토는 1개, 토끼는 10개, 노예 1명은 100개의 가치로 교환하는 등 카카오는 아즈텍의 상업의 중심이었다.


아즈텍의 예언
그런 아즈텍족에게 예로부터 전해지는 케찰코아틀과 관련된 예언이 있었다. 그 예언은 다음과 같았다.


‘1519년 4월 21일, 혜성이 나타나고, 지진이 일어나며, 카카오의 신 케찰코아틀이 돌아올 것이다.’


너무 디테일한 예언이라 오히려 의심스러워 보이지만, 당연히 당시 아즈텍인들에게는 절대적인 예언이었으리라.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예언 속의 바로 그 해, 1519년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가 아즈텍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으로 들어온 것이다.

 

1519년 아즈텍 제국에 입성한 스페인군의 지휘관, 페르디난트 코르테스(에르난의 동생)는 이 도시의 모습에 경탄하여 이렇게 적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넓은 제방길에 당도해 ‘이스타파라파’로 전진했다. 그리고 호수 위에 떠 있는 마을과 연변에 늘어선 거대한 촌락의 둑길이 곧장 평지로 멕시코와 통하는 걸 알고는 그 광경이 마치 ‘아마디스의 이야기에 나오는 몽상의 세계와도 같다’고 제각기 말했다.
커다란 탑과 신전, 갖가지 건물들이 수면 위에 우뚝 솟아 있었는데 모두 석조건물이었고, 병사들 중에는 ‘진정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하는 자도 있었다. 그들이 신을 모르는 몽매한 민족이며, 다른 문명인들과 단절된 상태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처럼 훌륭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놀랍다.”


스페인이 한창 ‘잘 나가던’ 시절의 귀족이 이렇게 표현했다면, 그 위용이 얼마나 됐을지 짐작할 만하다.

 

폭군 코르테스
스페인의 가난한 귀족 출신인 코르테스는 품행이 불량해 살라망카 대학에서 쫓겨나고, 19세에 신대륙으로 건너간다. 벨라스케스의 쿠바 원정에 참여해 쿠바를 통치했지만, 원주민들을 너무 잔혹하게 다루는 통에 쿠바 인구가 급감했을 정도였다.


이 일로 새로운 식민지 개척을 해야만 했던 코르테스는 1519년 550명의 병사, 16마리의 말, 14문의 대포를 싣고 유카탄 반도에 상륙했다.


긴가민가하던 신화적 예언이 실현됐다고 생각했을 때 그 희열이 얼마나 대단했을까. 코르테스의 흰 피부와 수염을 본 몬테수마 왕은 전설 속의 보탄(케찰코아틀)이 돌아왔다고 확신해버리고 만다.

 

황금 술잔도 카카오도 탐난다
예언에 따르면 케찰코아틀이 신의 소유물(카카오)을 인간에게 준 죄로 쫓겨가면서 약속한 1591년에 테노치티틀란으로 입성한 에르난 코르테스는 ‘카카오를 내려준 신’ 자체였다. 당연히 그들은 정복자인 코르테스에게 초콜릿 음료인 ‘초크라틀(쇼콜라틀)’이 든 황금 술잔을 바친다.

 

심지어 몬테수마 왕은 “이 음료를 하루에 50잔씩 마신다. 그래야만 숱한 궁중 여인들을 재울 수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전해준다. 코르테스가 눈이 돌아가지 않을 리 없었다.


실제로 고추나 후추를 넣어 먹는 것이었기에 맵고 쓴 맛이었지만, 탐험가들의 지친 심신을 순식간에 회복시켜줬기에 유럽인으로서는 강력한 효과의 커피 정도로 여겼겠지만, 그 관심은 지대했으리라.

 

누워서 초콜릿 먹기
코르테스는 아즈텍 제국의 지배 하에 불만을 품고 있는 부족을 끌어들여 테스코코 호수 위에 서 있는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현재의 멕시코시티)을 점령했다.

 

코르테스와 쿠바 원정을 함께 했던 벨라스케스는 이 같은 코르테스의 독단적 행동에 분노해 교전을 벌이는데, 이때 아즈텍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시에 주둔 중이던 스페인군을 섬멸하기도 했지만, 코르테스는 1521년 재차 수도를 공략해 그곳을 완전히 파괴하고, 폐허 위에 새로운 에스파냐 식민지를 세운 뒤 총감이 됐다.


생각지도 않았던 예언 덕에 손쉽게 아즈텍 제국을 정복한 코르테스는 1526년 본국으로 돌아가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에게 “카카오 씨앗은 귀해서 화폐로 통용되고, 마시면 피로회복에 특효가 있다”고 보고 했다.

 

 

이를 계기로 ‘신들의 음식’ 카카오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카카오의 재배와 초콜릿 제조방법을 100년 동안이나 비밀로 감췄고, 1660년대 중반에서야 초콜릿은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가게 됐다.

 

멕시코의 몬테수마 왕이 하루에 50잔씩이나 마셨다는 ‘초크라틀’이라는 음료는 코르테스의 침략으로 세계에 알려졌고, 오늘날의 초콜릿은 그 유래와 반대로 사랑의 힘을 발휘하는 상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