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늘 어딘가에 미쳐있는 이들이 바꾼다. 그들이 세상을 그려나간다. 역사를, 세상을 바꾸는 건 언제나 ‘이만하면 된 것 아니냐’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일이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EDITOR 박준영
자료 올댓골프리뷰
사진 이븐롤, 칼스배드골프
가장 큰 독립 퍼터 브랜드, RIFE
게린 라이프는 골프팬들에게는 ‘서희경 퍼터(Rife 2-Bar)’로 유명한 라이프(Rife) 퍼터를 디자인한 개발자이자 발명가다.
게린 라이프는 패트 몰로이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퍼터 전문 브랜드 ‘라이프’를 세운다. 2002년에 개발한 그의 2-Bar 퍼터는 당시 오디세이 투볼 퍼터와 함께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6년 안에 17개국 및 3,000개의 상점에서 매출 1천만 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PGA 점유율이 견인한 결과다. 그가 디자인한 2-Bar 모델을 포함한 40개 이상의 퍼터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100개 이상의 프로 대회에서 우승을 합작했다. 2008년 당시 그가 이끄는 ‘RIFE’는 골프 산업에서 가장 큰 독립 퍼터 브랜드 중 하나였다.
무엇이 달랐을까? 답은 롤 그루브
2008년, 라이프 퍼터는 국내에서는 당시 23세 서희경이 사용하며, 불과 1년여 만에 KLPGA 투어 점유율을 40%까지 넘겼다.
라이프 퍼터의 페이스 면에는 마치 아이언이나 웨지처럼 그루브로 채워져 있다. 수평 홈이 임팩트 순간 볼이 뜨는 걸 잡아주면서 곧바로 롤이 발생하게 만든다. 통상 3~5°의 로프트를 가진 일반적인 퍼터와 달리 라이프 퍼터의 로프트는 1°다.
이미 핸드 포워드가 되어 있는 격이니 백스핀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롤을 만드는 데 최적이다.
퍼터에 진심인 게린 라이프
게린 라이프가 처음 발명한 퍼터 제품은 다름 아닌 오늘 흔히 볼 수 있는 캐비티백 말렛 퍼터 디자인이다. 사실 퍼트 성능을 개선하기보다는 허리를 굽히지 않고도 공을 퍼 올릴 수 있는 데 사용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또 다른 장점이 있었다.
퍼터 헤드 뒤쪽의 무게를 제거하니 자연히 힐-토우와 헤드 위아래 무게 밸런스가 좋아져 공의 구름이 좋아진다는 점이었다. 특허권 등의 문제로 큰 이득을 보지 못했지만, 더 효과적인 퍼터를 찾는 게린 라이프의 열정은 꺼뜨리지 못했다.
그의 열정은 결국 퍼터 페이스에 그루브를 새겨 넣는다는 발상으로 이어졌다. 지금의 이븐롤을 만든 핵심 기술이다.
1996년 최초로 특허 등록된 그의 그루브 기술은 임팩트 시공이 튕겨 나가는 것을 최소화해서 퍼터 페이스 로프트를 더 줄일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임팩트 시 느낌은 더 부드럽고 공은 좀 더 일찍 구르기 시작하며, 방향성도 향상됐다.
다시 처음으로
그러나 이번에도 경제적인 이득을 보지는 못 했다. 성장을 위해서 투자하길 원했던 그에 비해 투자자들은 높은 매출에 비해 비용이 높아 이익률이 저조한 회사를 두고 보지는 못 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지분을 매각하기 시작했고, 2009년에는 회사의 통제권을 완전히 잃는다. 이미 시장에 진입한 라이프라는 이름은 이제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게린’ 퍼터로 재기를 노렸지만,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으로 가뜩이나 불황이었던 시국에 도리는 없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는 자신의 퍼터 그루브 특허를 펼치고 연구를 계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기한 현상을 목격한다. 토우에 맞은 퍼트는 드로우 샷처럼 우측에서 좌측으로 돌아왔고, 힐에 맞은 공은 페이드처럼 좌측에서 우측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소름 돋는 기술로 만든 사기템
“저는 페이스에 그루브를 새겨 넣으면 공에 동일한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루브 중간 부분의 폭이 넓고 힐이나 토우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그루브가 공의 출발선뿐만 아니라 ‘구르는 방향’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저는 이 그루브가 퍼터 디자인의 역사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사업적으로 여러 굴곡을 거치며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잃기까지 한 채 이븐롤 퍼터를 발명한 게린 라이프의 말이다. 요컨대 다소의 미스샷을 하더라도 원하던 방향으로 볼을 굴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이 현상을 ‘기어링’이라고 명명했다. 프로들조차도 항상 퍼터의 스윗스팟을 맞출 수 있는 건 아니다. 따라서 이런 기술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면 그야말로 ‘사기템’이다. 그는 이 현상을 확인한 당시를 ‘소름이 돋았다’고 회상했다.
마·골·스 3년 연속 1위
그는 이후 여러 공식 테스트를 통해 이를 입증했다. 2016년 PGA 쇼를 통해 이 신기술을 세상에 알렸다. 그리고 같은해 세계적인 골프 장비 테스트 전문기관인 ‘마이골프스파이’에서 1위를 차지한 퍼터보다 자사의 이븐롤 퍼터가 더 우수하다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이골프스파이에서 우리의 퍼터를 공식적으로 테스트한다고 했을 때, 저는 파트너인 스티븐에게 ‘우리 기술이 흥하거나 망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 이미 많은 골프 팬들이 아는 것처럼 이븐롤은 ‘마이골프스파이’ 2017년 블레이드 퍼터 부분 1위, 2018년과 2019년 말렛 퍼터 부분 1위로 3년 연속 최고 퍼터의 영예를 안은 퍼터 전문 브랜드가 됐다.
“저희 초기 모델 4개 모두가 기존 1위를 수성하던 퍼터보다 우수하다는 결과가 나오자 우리 사이트는 5분 만에 마비됐습니다.”
페이스 그루브에 미친 사람
혹자는 게린 라이프라는 이가 라이프, 게린, 이븐롤 등 여러 브랜드를 전전하는 걸 보고 ‘사짜 기질이 있는 것 같다’고도 한다.
겉으로 보면 그런 것도 같다. 사업적으로 서툴러 벌어진 일화도 다양하다. 누가 그걸 보고 ‘바보같다’고 해도 게린 라이프는 그 말에 반박하지 않을 것 같다.
대신 게린 라이프의 발견과 발명, 기술과 진심을 그의 사업적 실수와 실패로 평가할 수는 없다. 현재 이븐롤 퍼터의 기술은 전 세계적으로 특허를 취득한 혁신 기술이며, 이미 미국과 한국 시장에서 우상향을 그린 지도 오래다.
카스텐 솔하임의 핑 앤서 이후로 언급될 ‘전환점’이 될 거라는 리뷰까지 인용하며 '뽐뿌질' 하고 싶지는 않다.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지금도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며 눈을 반짝이는 게린 라이프는 1980년대 우연한 기회로 퍼터의 매력에 빠진 이래로 지금까지, 단 한 가지에만 몰두했다.
남기는 것도 없이 퍼터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만 인생을 쏟아부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미친 사람’이라 부른다.
게린 라이프가 정말 ‘방망이 깎던 노인’ 같은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여러 일화를 돌아볼 때 그가 퍼터 개발에 진심인 사람이라는 건 믿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 기술이 세상을 바꾸고 있는 것을 뚜렷한 수치로 지켜보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이만하면 된 것 아니냐’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일이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바로 미친 사람이다. 그 미친 사람이 만든 퍼터, 바로 이븐롤이다.